마음이 아파 몸이 아픈 사람, 시인 김용택

장엄하게 푸르러서 서러운 오월, 김용택 만나 잘 놀다 오다

등록 2007.06.01 16:17수정 2007.06.01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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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버스가 좋은 이유


전주에서 김용택 시인이 근무하는 덕치 초등학교로 가기 위하여 순창 가는 버스를 탔다. 덕치에 오려면 임실로 가지 말고 순창 가는 버스를 타고 강진에서 내려 택시를 타라고 했던 시인의 말을 나는 깜빡 잊고 강진을 지나쳐 버렸다.

버스는 직행이라 강진에서 한번 쉬고 곧바로 순창읍까지 가버린다. 그걸 잊었다. 강진에서 내려야 한다는 것을 깜빡 잊어버리고 버스가 순창으로 가는 도중 덕치면 소재지와 덕치초등학교가 휙 지나갔다. 그때서야 나는 강진에서 내려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할 수 없이 순창읍 터미널에 내려 강진가는 버스를 타려고 하다가 혹시나 하고 차부에서 일하는 아저씨한테 덕치 가는 버스도 있느냐고 물었더니 바로 지금 있단다. 그 버스가 없었으면 큰일날 뻔했다. 큰일이라고 해봐야 실은 더 되짚어가는 시간과 택시요금 정도의 돈이 들어가는 일이겠지만.

하여간 내가 강진서 안 내리고 덕치 가는 임실 군내 버스를 탄 일은 결과적으로 좋은 일이었다. 버스는 깐닥깐닥 온갖 시골 마을 입구에 사람들을 다 내려주었다. 덕분에 나도 다시 한번 순창과 덕치, 그 아름다운 전원풍경을 한가롭게 되새김질 할 수 있었다. 시골 군내 버스가 좋은 이유는 많지만 그중에 가장 좋은 것은 아무 데나 세워 달라는 데서 세워주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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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금선

아이에게 뭔 일 생기면 마음이 아파 곧 몸이 아파버리는 사람


학교로 들어서자마자 저기 운동장 너머에 선생님 김용택이 가녀리고 창백한 한 아이와 함께 앉아 있다. 운동장에는 열명이 될까 말까한 강아지 새끼들만한 아이들이 공을 차고 있다. 아이들은 임실 덕치초등학교 2학년 1반, 시인 김용택 선생님(이하 김용택) 반 아이들이다.

나는 시인이자 초등학교 선생님인 김용택을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마음 속에서는 그가 '오빠'로 자리하고 있다. 그것도 내 살가운 친정 오라비인 것만 같다. 지금은 돌아가신 김남주 시인에게도 나는 김용택에게 갖는 것과 같은 왠지 피붙이인 것만 같은 정을 느꼈었다.


내가 그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김용택에게도 있었던 것일까. 실제로 김남주 시인이 돌아가셨을 때 김용택은 그 충격으로 근 두 달을 앓아누웠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는 자연적 혈연만 있는 게 아니고 사회적 혈연이라는 것도 있다. 어떤 땐 그 사회적 혈연이 자연적 혈연보다 더 가깝고 애잔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나는 이제 김용택이 아프면 왠지 나도 아플 것만 같다.

공을 차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선생님 옆에 꼭 붙어 있는 아이. 아이는 며칠 전에 서울에서 전학을 왔다. 김용택이 가장 안 그랬으면 하는 일이 또 일어난 것이다. 김용택이 출근해서 보니 아이가 할아버지와 함께 교실에 턱하니 앉아 있었다. 이것이 뭔 일인가 싶어 김용택은 속이 다 덜덜 떨려왔다고 했다. 그 떨리는 속으로 도저히 그날 수업을 못할 것 같아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들은 시인의 마음 여린 아내는 또 눈물바람을 하고.

김용택을 보면 세상에는 마음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마음 여린 사람과 무감각한 사람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김용택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 2학년 1반(한 반뿐이긴 하지만) 아이들 중 누구 하나에게라도 뭔 일이 생기면 마음이 아파서 곧 몸이 아파버리는 사람이다. 그뿐인가. 나무 한 그루가 잘려 나가도, 꽃잎이 짓밟혀도, 흘러야 할 물이 제대로 흐르지 못하는 것을 보고도 그는 마음 아파서 곧 몸 아파 버리는 사람인 것을.

그는 아파서 싸운다. 우리의 김용택 시인에게서 세상 사람들은 '섬진강' 곁에 사는 '마음 순한' 선생님만을 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서 '전사'를 본다. 김용택이 너무나 사랑했던 사람 김남주 이래로 보게 되는 시인 전사다. 김남주가 그랬듯 김용택은 날마다 싸운다. 시골 땅을 어떡하든 개발해서 이익을 남겨먹을 궁리만 하는 사람들과 싸우고 어린 아이들을 눈물나게 하는 온갖 구조와 비양심과 싸운다.

우리의 순하디 순한 '섬진강 시인' '용택이 오빠'는 왜 이렇게 날마다 아파하고 속으로 피 흘리고 조용히 살고 싶어도 조용히 살지 못하고 싸워야만 하는가. 그래서 그의 아내로 하여금 '김용택 각시노릇' 하기 힘들게 하는가.

총체적으로 '아작'나고 있는 우리나라 농촌

병아리 같은 가는 손을 지닌 현아. 현아가 김용택을 울리고 있다. 한없이 천진난만하고 한없이 자상하고 한없이 인정 많은 '촌놈' 김용택의 목소리가 절로 높아진다.

"한마디로 이 아이들 부모가 1.5세여. 고향 떠나 도시 가서 물질적 정신적 기반이 없어 뿌리를 못 내리고 방황해. 몸은 어른이 되어서 아이를 낳았어도 키울 수가 없어. 그래서 애들을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로 보내는 거야."

우리나라 농촌에 소위 '조손' 가정이 거의 '대세'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김용택의 전언이 아니더라도 지금 이 나라 농촌은 '난리도 아니라'고 한다. 거의 재난 수준이라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어디를 누가 어떻게 해야 무엇이 제대로 될 것인가.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도 자꾸자꾸 묻게 된다. 학교에도 급식이 나오지만 뭔가 특별히 맛있는 것을 먹이고 싶다고 다슬기탕 집으로 왔다.

식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는 베트남에서 시집 온 새댁이다. 이 나라 처녀들은 도대체 다들 어디로 가버렸을까. 나라 안 처녀들은 나라에서 버린 시골로는 말 그대로 '절대로' 시집오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눈 밝은 사람이라면 김용택이 쓴 시편들, 김용택의 아이들이 쓴 글들에서 다만 아름다운 시골정서와 천진한 아이들 세계만을 보지는 않을 것이다. 그 시와 글들에서 이 나라 농촌이 흘리는 피울음을 발견한다면 그는 정직한 사람이다. 시쳇말로 총체적으로 '아작'이 나고 있는 우리나라 농촌의 현재와 미래가 그 글들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나는 사실 지금 김용택 시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는 있지만 좀 숨이 차다. 그에 대해서 뭐라고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내겐 참 벅찬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막상 그를 보고 온 뒤에야 나는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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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금선

김용택, 좋아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

김용택이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이력서 식으로만 기술하자면, 1948년 전북 임실 덕치면 진메마을에서 출생하여 순창농림고등학교를 나와 선생시험을 봐서 초등학교 선생을 시작해 1982년 '섬진강1'이라는 시를 세상에 발표하면서부터 세상 사람들한테 시인소리도 들으면서 살게 되었고, 지금도 자신이 다녔던 덕치초등학교에서 선생을 하면서 자신이 가르쳤던 아이들의(물론 지금은 어른이 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시를 쓰면서, 세상에 화를 내면서, 세상을 사랑하면서, 세상을 원망하면서, 세상을 말도 못하게 불쌍하게 생각하면서, 아파하면서, 즐거워하면서,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분명한 게 아니라 진짜 그렇다. 그런데도 나는 그를 말하기가 벅차다. 이것은 순전히 필자 개인의 감정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김용택이라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한,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다. 세상에 김용택 같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고 누구를 좋아한단 말인가?

나는 지금까지 내가 읽은 산문 중에 김용택의 산문 만큼 재미지게 읽은 산문이 없다. 시인들이 쓰는 산문들을 나는 그리 재미있게, 속도감 있게, 실감나게 읽지 못했다. 그러나 김용택의 산문들은 글에 그려지는 상황이 선명하다. 입말이 살아 있다. 산문에 꽹과리 치는 장면이 나오면 그날의 정황이 환히 떠오른다. 그의 글은 많은 부분, 아니 거의가 다 글이라기보다 그림에 가깝다. 그의 모든 글에서 나는 저절로 떠오르는 그림을 본다.

1948년생이니 이제 김용택 나이 육십.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나이다. 실제로 그를 직접 보면, 특히 덕치초등학교 2학년 1반 아이들하고 덕치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축구하고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누가 2학년이고 누가 6학년(육십)인지 구별하기가 매우 힘들다.

더구나 그는 전주의 안모 시인, 김모 소설가와 나란히 '반코트가 롱코트'되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다. 고만고만한 아이들 틈 속에 조금 더 큰 60 먹은 사람이 그 특유의 소리로 웃기라도 하면 참 기가 막힌다(?).

근 15년여 전에도 나는 그를 보러 덕치초등학교에 간 적이 있다. 그때도 그는 처음 보는 내게 "선옥아"라고 불러줬다. 누가, 더군다나 처음 보는 사람이 그렇게 다정하게, 그렇게 정이 뚝뚝 듣게 댓바람에 이름을 불러준 사람은 내 인생에 아마 김용택이 유일하리라. 시골의 정 많은 사람들이 항용 그렇듯이 그는 늘 보자마자, "밥 묵었냐?"라고 묻는다. 늘 밥 묵으러 가자고 한다.

그놈의 환장할 정 때문에...

그는 왜 늘 세상 돌아가는 꼴에 속상해 하는가. 아파서 위장병까지 나곤 하는가. 그것은 그가 정이 많기 때문이리라. 그놈의 환장할 정 때문에 그는 오늘도 조용한 동네를 가로지르는 무시무시한 시멘트 도로에 분노하고 시멘트 도로 밑에 사는 늙고 가난한 사람들이 불쌍해 눈물 흘리고 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이놈의 무정한 세상에 그도 무정해 버리면 속편하게 살 수도 있을 터인데 그놈의 정 때문에….

덕치초등학교 2학년 1반 교실에 가면, 놀라운 풍경이 펼쳐져 있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본 교실 풍경 중 그 교실만큼 아름다운 교실을 본 적이 없다. 그 교실에 사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만큼 사람 마음을 하염없이 좋게 해주는 그림을 본 적이 없다. 그림을 잘 그리기도 참 잘 그렸다. 그림이 하도 욕심나 훔치고 싶을 만큼 잘 그렸다. 그림지도를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무조건 찐허게 칠해라"라고만 한단다. 나는 그가 학교를 그만두더라도 그 교실만큼은 영구 보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김용택은 시만 썼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들게 살았을 것 같다. 시만 썼으면 어쩌면 그 여린 성정에서 나오는 강함으로 더 많이 망가졌을 것도 같다. 그가 쓴 산문 중에 '불타는 감나무'라는 것이 있다. 그 글에는 그가 한창 젊었던 시절(그리고 물론 그는 지금도 누구 못지않게 젊다!), 말하자면 1970년대의 '논두렁 깡패' 시절 그가 살았던, '출구없는 청춘'들의 전라도 농촌판이 고스란히 그려져 있다.

일명 '논두렁 깡패' 중의 일원이었던 그. 농촌드라마들을 보면 농촌사람들은 다 뭔가 좀 모자라고 웃기기만 하는 사람들로 그려지기 십상이지만, 사실 그 시대나 이 시대나 밤새껏 술 마시고 맥없는 감나무라도 불태워야만 하는 고뇌가, 그 우수가, 농촌이라고 왜 없겠는가.

그러나 그에게는 또 고뇌와 우수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순창읍 내에서 자취하며 쌀을 모아 팔아 영화를 보던 감수성 예민한 소년 김용택, 오리를 키우다 쫄딱 망해먹고 모자란 차비를 들고 무조건 대전행 기차를 타고 친척집에 갔다가 거기서도 또 영화관을 갔댔지.

바로 그것이다. 그에게는 대책 없다 싶을 정도의 낙천성이 있다. 그 낙천성이란, 다름 아닌 흙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의 심성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낙천성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고 보면 영락없이 그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닮은 그 낭랑한, 사람을 단박에 무장해제시키고도 남을 힘을 가진 그 웃음소리 또한 그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낙천성에서 나오는 소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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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금선

장엄하게 푸르러서 서러운 오월, 김용택 만나 잘 놀았다

그를 만나고 오는 날은 늘 그런 생각이 든다. '김용택 만나 잘 놀았다'라는. 그냥저냥 시간 보냈어도 어쩐지 뿌듯하게 논 것 같은 그런 만남.

전주터미널까지 데려다 주는 길에도 그는 한없이, 걱정 많은 친정 큰 오라비처럼 말하고 또 말한다. 그러다가 문득문득 스쳐 지나가는 풍경에 대한 감탄사를 잊지 않는다. 잊어버렸다가도 그가 말하니까 깜짝 놀라 바라보게 되는 봄날의 산천에는 꿈결인 듯 산벚꽃이 지는 속에, 점차로 연한 초록이 물들고 있었다.

"선옥아, 저기 좀 봐라이, 하따아, 장엄허다, 장엄혀."

그의 명랑한 듯, 무심한 듯, 그러나 안타까운 맘이 뚝뚝 묻어나는 말 속에서 나는, 저 산천의 장엄을 너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의 말로 들었다.

그가 끊어준 차표를 들고 버스에 올라 상경하는 길. 점심을 섬닷하게(서운하게?) 먹어서 어쩌끄나, 해쌓던 그의 말이 새삼스레 내 가슴을 울려왔다. 창 밖을 보니, 거기 장엄하고, 푸른 오월이 펼쳐져 있었다. 그의 식으로 표현하자면 장엄하게 푸르러서 서러운 오월이다.

덧붙이는 글 | 이 원고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인권>잡지 5,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필자 공선옥님은 소설가로 2005년 우리 시대의 가난이 남긴 상처를 그린 작품 「유랑가족」을 펴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원고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인권>잡지 5,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필자 공선옥님은 소설가로 2005년 우리 시대의 가난이 남긴 상처를 그린 작품 「유랑가족」을 펴냈습니다.
#김용택 #덕치초등학교 #조손 가정 #농촌 #섬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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