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병준 작가홍지연
"(취향이) 소녀 쪽이어서 상처 이야기로 갈 수도 있고, 상처 쪽을 좋아하니까 소년 보다는 소녀 이야기에 더 다가가는 것일 수도 있고. 무엇이 시작인지는 모르겠는데 그 두 개가 서로 같이 가고 있어요."
작품 속 주인공이 거의가 소녀인 것에 대해 변병준은 이렇게 말한다. 한창 준비중인 단편 <동화>(冬火) 역시 소녀가 주인공. 이 '한겨울에 난 불'은 대구지하철참사를 소재로 윤인완 작가가 스토리를 썼다. <영챔프 플러스>에 실린 후, 단행본(<데자부2>)으로 묶여 나올 예정이다. 대략 1년만의 작품이다. 뜸했던 만큼 변 작가의 표정도 조금은 쑥스럽다.
앞 보다는 뒤를 돌아보는 성격 탓인지 변병준의 만화 속 인물들도 하나같이 과거에 얽매어 있다. 각자의 생채기들에 점령당한 인물들은 그 자체로 슬픔 혹은 비참함을 드러낸다. "다 읽고 났을 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그저 캐릭터의 감정 하나가 남기를 바랍니다."
그는 왜 이렇게 상처에 대해 골몰하는 것일까.
"고난당하는 사람을 좋아해요. (사람이) 언제 감정이 격해지는가하면 고난 받을 때거든요. 여자친구가 전화로 헤어지자고 하는데 그 얘기를 꼭 만나서 듣고 싶은 느낌 아세요? 고통스러울 것을 알면서도 기어이 만나야 하죠."
속고 속이고 짓밟히고, 끝내 부서지는 인물들. 그는 허무하고 속절없는 구원에 기대기보다, 거짓된 희망에 속기 보다는 차라리 '만만치 않은' 세상살이에 고통스러워하는 인물들을 덤덤히 그린다. 그게 더 진짜 삶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청년'이나 '청춘'이라는 말보다 '소년', '소녀'라는 말을 더 좋아하는 것도 그 안에 담긴 무책임한 희망의 느낌이 싫어서일 게다.
지극히 현실적인 배경이지만 현실이 아닌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 변병준 그림의 큰 장점이다. 탁월한 터치로 구성한 화면은 인물은 물론 배경까지 천천히 훑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펜 대신 붓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의 그림은 더욱 큰 매력을 발하게 됐다.
그는 무척 사진을 많이 찍는데 <달려라, 봉구야!>의 바닷가와 같은 풍부한 배경도 사실 그의 이런 수집광적인 면모에서 탄생했다. 사람이든 장소든 한두 번이 지나 익숙해지면 반드시 사진으로 남기고, 그 방대한 자료로 이야기를 시작한다고.
진짜로 잘하고 싶은 것은 스타일, 연출이다. 반복된 자기만의 패턴에 갇히지 않고 독자를 천천히 끌어당기는 '변병준식 스타일'이 갖고 싶은 것.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것은 사실 연출하고 싶다는 거잖아요. 가급적이면 오랫동안 독자를 잡아두고 싶어요. 앞으로 쭉쭉 넘어가지 못하게 하는 만화, 정말 빨리 넘기는 만화보다는 천천히 계속해서 오래 볼 수 있는 작품을 그리고 싶어요."
"만화가 주는 엄숙함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