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계를 만나, 꿈에 빠지다

순수와 자유로운 상상이 넘쳐나는 '르네 마그리트' 전시회

등록 2007.06.07 11:21수정 2007.06.07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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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트의 초대 ⓒ 이다롱

바람은 쌀쌀하지만 햇살은 눈부셨던 2월, 나는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서울 시립 미술관을 향해 걸어갔다. 아름다운 돌담길이 멈추는 순간 새로운 세계의 문이 열렸다. ‘르네 마그리트’의 세계는 자유와 시와 사랑이 춤추고 있었다. ‘르네 마그리트’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던 서울 시립 미술관은 자유로운 상상으로 일렁이며 나에게 손짓했다.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들은 미술관 2층에 자리하고 있었고 전시작들은 10가지 테마로 구성되어 있었다. ①조제트와 그의 친구들 ②초현실주의 시기 ③광고와 장식미술 ④인상주의 시기 ⑤바슈 시기 ⑥초현실주의 화풍으로의 복귀 ⑦1930년대 회화의 복제 ⑧말년의 작업 ⑨아마추어 영화감독으로서의 마그리트 ⑩사진작가 듀일 마이클의 사진. 이상 10가지 테마이다. 순서대로 감상해도 되고 자유롭게 작품들 사이를 누빌 수도 있다.

전시회에서 내가 제일 먼저 본 그림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비싸다고 하는 <보이지 않는 선수>였다. 공중에는 거북이가 헤엄치고 있고, 아래에는 두 사람이 야구를 하는 그림이었는데 이 그림을 보는 순간 나는 정말 꿈 속 한가운데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은 현실에 틀이 박혀버린 사람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그림에 불과할 것이다. 나도 그림을 처음 봤을 때 마음으로 그림을 느끼려고 하지 않고 먼저 머리로 해석하려는 나를 발견하고 조금 슬퍼졌다.

하지만 마그리트의 세계에 초대받은 이상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 마음껏 느끼고 감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거북이가 하늘을 헤엄치고 컵에 한 가득 구름이 담겨져 있으며 나무는 거꾸로 서 있는 신비한 곳, 바로 마그리트의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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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의 모습 ⓒ 이다롱

르네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자로 일상적인 사유가 깨질 때 발생하는 신비한 체험을 화폭에 담았는데, 그의 그림에서는 일상적인 사물의 결합을 통한 놀라움과 비범함이 드러난다.

그는 사물의 수단적인 가치만이 인정받는 일상생활에서의 사물의 오용과 학대에서 사물을 구제하려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림을 감상하는 이들의 사물을 보는 시각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현대 미술의 모더니즘적 시각을 볼 수 있다. 마그리트는 1925년경부터 그만의 독특한 초현실주의 세계를 개척하게 되는데, <보이지 않는 선수> 이외에도 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얼굴 없는 사람들이 춤을 추고 나무들은 거꾸로 서 있었다. 그 중에서 유독 관심이 가는 작품은 흐물거리는 모양의 흰색 물체 안에 검은 글씨가 쓰여 있는 그림이었다. 제목은 <말을 가진 유기체>. 제목과 딱 맞는 그림이었다. 그리고 마그리트가 언어적 표현에도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마그리트는 유명해지기 전에 가구와 벽지 디자이너로 생계를 유지했었는데 화가로 명성을 얻은 이후에도 종종 광고와 장식미술 작품을 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벨기에 섬유 노동자센터를 위한 포스터> 같은 작품도 볼 수 있었다. 단순히 광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그림에 가득 담겨 있는 듯 했다.

걸음을 옮기다 보니 아주 매력적인 그림이 발길을 붙잡았다. 섬에 푸른 잎들이 가득한데 그 입들은 모두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은 새의 모양을 한 그림이었다. 신비하고 아름다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보물섬>이라는 이름의 이 작품은 ‘잎’의 이미지에서 ‘새’의 모습을 그려내는 이미지 중첩의 방법을 보이고 있었는데 나는 정말 보물을 발견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또 여성의 부드러운 신체 곡선이 자연스럽게 파란 하늘과 하나가 되는 듯한 <검은 마술>도 아주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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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에서 우리를 맞이했던 <신뢰> ⓒ 이다롱

1948년 마그리트는 야수주의를 대항하여 강한 터치와 화려한 색채로 가득한 그림들을 그렸는데, 이러한 화법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다. 야수주의의 특징적인 화법을 이용해 오히려 야수주의를 풍자하는 작업이었다. 이 시기를 ‘바슈 시기’라고 부른다. 정말 르네 마그리트라는 이름이 없었다면 다른 작가의 그림이라고 생각할 만큼 기존의 화풍과 많이 달랐다.

작품 중에서 <굶주림>이라는 작품이 강하게 인상이 남았다. 마치 사람들이 서로 서로 잡아먹는 것만 같은 거친 이빨과 어두운 표정이 돋보이는 그림이었는데 굶주림이라는 제목과 함께 인간성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을 줘서 가슴이 아팠다.

마그리트는 인상주의 시기와 바슈 시기를 지나 다시 초현실주의 화풍으로 복귀한다. 그가 밝힌 이유는 아내 조제트가 이전의 화풍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내를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포근하게 전해져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붉은 모델>이라는 그림에 나타난 구두는 발목 부분은 신발이지만 아래 부분은 사람의 발이다.

절대 신을 수 없는 구두라서 실용성은 없겠지만 흙바닥에 사뿐히 내려앉은 듯한 발이 아름다웠다. 생명을 가지고 있는 구두가 아닐까 잠시 생각해 봤다. 또 매우 커다란 글자 모양 바위들이 촘촘히 쌓여 있고 그 돌들 앞에 아주 작은 사람들이 서 있는 <대화의 기술>도 인상적이었다.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의 거대한 벽 앞에 서 있는 인간들.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한 멋진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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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안 마이클이 찍은 르네 마그리트의 모습 ⓒ 르네 마그리트전 공식 홈페이지

마그리트는 언제나 ‘화가’라는 말 대신 ‘생각하는 사람’으로 불리기를 원했다고 한다. 그는 존재와 세계에 대해 끝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또 그것을 그림을 통해 시각적으로 나타내고자 했고 그의 그림에는 이러한 마그리트의 철학적 회화관이 담겨져 있다. “마그리트의 회화는 생각을 눈에 보이게 한다”는 ‘수지 개블릭’의 말처럼 그의 그림에서는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을 수 있었다.

전시회에서 아이들이 여럿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아이들은 마그리트의 그림을 친근하게 바라보면서 도슨트에게 무슨 뜻이냐며 질문했다. 아이들의 물음은 어른들의 그것과 달리 매우 순수했다.

도슨트의 설명을 듣는 아이들에게 마그리트의 그림은 낯설지 않았다. 반짝 반짝 빛나는 눈은 어느새 마그리트와 만나고 있었다. 나는 그 감격스러운 광경을 보면서 마그리트의 세계와 아이들의 세계가 같다는 것을 느꼈다.

자유와 시와 사랑을 철학의 바탕으로 삼았던 르네 마그리트. 그의 그림 속에서 보낸 하루는 아이 같은 반짝이는 순수함을 많이 잃어버린 나조차도 꿈과 순수함에 푹 젖어 있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르네 마그리트 #전시회 #초현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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