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생일 덕에 찾은 대명포구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에 위치한 '대명포구'

등록 2007.06.07 17:01수정 2007.06.07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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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이 빠져나간 포구, 아직은 한산합니다.
바닷물이 빠져나간 포구, 아직은 한산합니다.방상철
나무에서 막 돋아난 푸릇푸릇한 이파리들이 내 새끼손가락 보다 작았던 때가 바로 어제 같은데, 바쁜 나날을 보내고서 이제야 한숨 돌리니 그들은 어느새 내 손바닥 크기만큼 커져 있었다. 굳이 달력을 보지 않아도 오전부터 강렬하게 내려 쬐는 햇살 탓에 계절을 실감하게 된다. 아! 벌써 여름이라니! 시간 참 빠르다.

"너도 이제 '선크림' 좀 바르고 다녀라! 남자도 피부에 신경 써야지, 금방 주름 생긴다."


어머니는 아이와 햇볕에서 놀고 있는 나에게 달려오시며, 선크림을 내 손에 들려주곤 어서 바르라고 야단이시다.

"이렇게 금방 늙을 줄 누가 알았나! 이 엄마도 젊음이 평생 갈 줄 알았다. 그런데 벌써 늙어 버렸구나!"

나는 선크림을 손에 든 채로 어머니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뒤에서 갯벌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얼굴도 바라보았다. 세월은 참 무서운 것이로구나! 어느새 두 분이 저렇게 늙으셨나? 오늘따라 부모님 얼굴에 주름이 더 많아 보인다.

아버지, 어머니! 항상 건강하세요.
아버지, 어머니! 항상 건강하세요.방상철
바닷물이 빠져나간 포구는 참 썰렁했다. 단지 어선 몇 척만이 갯벌에 누워 포구를 지키고 있을 뿐, 지금 이곳의 유일한 주인은 갈매기들이다. 물과 갯벌의 경계에서 부지런히 먹이를 구하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어서 배들이 들어오길 기다렸다.

배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물의 경계에서 먹이잡이에 열중인 갈매기 떼, 너희들이 이곳 주인이다.
배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물의 경계에서 먹이잡이에 열중인 갈매기 떼, 너희들이 이곳 주인이다.방상철
지난달 20일, 우리 가족이 부모님을 따라 이곳 대명포구에 온건 순전히 '아내의 생일' 덕이다. 어제 아버지 전화가 유난히 반갑더니 결국 며느리가 좋아하는 회를 푸짐하게 먹여주겠노라고 장담을 하시고 우리를 이리고 끌고 오셨다.


"어제 미역국이라도 먹었냐?"
"아뇨. 어젠 못 먹고 오늘 아침에 아범이 끓여줘서 먹었어요."

차안에서 나눈 며느리와 시아버지의 대화에서 난 얼굴이 붉어졌다. 올해 아내는 자신의 생일을 위해 미역국을 직접 끓이지 않았다. 아니, 미역국만이 아니라 다른 어떤 음식도 만들지 않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내가 말로만 했던 '장담'을 피식 웃으며, 직접 자신의 생일 음식을 만들었었는데 올해는 그러지 않았다.


"미역국은 내가 끓여 줄게!"

결혼하고 10년 동안 아내 생일 전날 내가 했던 말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행동으로 옮긴 적 없는 나만의 '장담'이었다. 결국 생일이 다 지나가는 한밤중에 아내는 선물로 미역국을 끓여달라고 했다. 나는 아주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전에 미역을 물에 담가 불리고, 아침 일찍 일어나 들기름에 그 미역을 볶았다. 그리고 물을 부어 팔팔 끓이기 시작했다. 아내가 깨기 전에 모든 일을 마치려고 서둘렀다. 어제 밤중에 아내가 미역국 끓이는 방법을 설명했을 때까진 자신이 없었는데, 하고보니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아침에 아내는 국 한 대접을 깨끗하게 비웠다. 하지만 내가 먹어 봐도 뭔가 빠진 듯 맨송맨송한데, 내색을 안 하니 미안하고 고마웠다. 생일날 아침에 이렇게 해주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다.

마침내 물살을 가르며 고깃배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포구가 갑자기 바빠졌습니다.
마침내 물살을 가르며 고깃배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포구가 갑자기 바빠졌습니다.방상철
멀리서 배가 한두 척 들어오기 시작했다. 부두에 사람들이 몰리고, 물고기를 싣기 위한 트럭들이 배 가까이 꽁지를 밀어 넣었다. 배 한 척에서 나온 고기는 그 종류도 가지각색이었다.

광어, 우럭은 잘 아는 물고기라 한눈에 들어오고, 삼식이라고 불리는 못생긴 물고기와 밴댕이, 병어, 꽃게 따위가 트럭에 가득 실렸다. 저 꽃게는 지금 한창 금값이라고 옆에 있던 아줌마들이 야단을 떨어댄다.

배가 부두에 닿자 사람들의 일손이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배가 부두에 닿자 사람들의 일손이 바쁘게 움직였습니다.방상철

그 와중에 아버지는 땅에 떨어진 ‘쏙’을 한 마리 주웠네요. 근데 그냥 가져가도 되나?
그 와중에 아버지는 땅에 떨어진 ‘쏙’을 한 마리 주웠네요. 근데 그냥 가져가도 되나?방상철
이곳 대명포구는 김포와 강화를 잊는 초지대교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입구에는 횟집들이 성업 중이고 포구 앞쪽으로 어시장이 길게 형성 돼있다. 지금 막 잡아 온 생선들이 그대로 어시장으로 들어가 손님을 맞는다고 하니, 그 싱싱함이야 두말할 거리가 없다.

또한 아버지 말씀으론 이곳 상인들이 다 자기 고깃배를 운영하고 있어서 그만큼 다른 곳보다 더 싸게 회를 살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생선을 실은 트럭들이 부두에서 급하게 빠져나가자 우리도 그곳을 벗어나 어시장으로 들어갔다. 상인들이 벌려놓은 좌판 위 생선들의 값은 정말 저렴했다. 보통 10마리 넘게 쌓아 놓은 생선들도 만원을 넘지 않았다.

싱싱한 횟감을 사기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리시는 아버지
싱싱한 횟감을 사기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리시는 아버지방상철

미리 떠놓은 횟감들. 상인들이 일일이 회를 다 떠주지는 않습니다. 횟집에서 떠주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그저 사기만 하면 됩니다.
미리 떠놓은 횟감들. 상인들이 일일이 회를 다 떠주지는 않습니다. 횟집에서 떠주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그저 사기만 하면 됩니다.방상철
어시장을 한바퀴 다 돌아본 후에야 우리는 비로소 횟감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제 생선회를 먹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 된 것이다. 슬슬 시장기도 돌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방법에서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어시장에서 회를 떠서 포구 근처에 자리를 펴고 먹느냐? 아니면 산 놈을 그대로 사가지고 횟집으로 들어가 자릿세와 양념값, 매운탕 끓이는 비용을 들이고 먹느냐? 물론 싸게 먹으려면 전자가, 편하게 먹으려면 후자가 적당하다.

아버지는 전자를 택하려고 하셨다. 그래야 회 값 이외로 따로 드는 돈이 없어, 이곳에 온 보람이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아버지의 손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후자를 택해야했다. 오후로 갈수록 강렬해지는 햇살을 피할 공간이 포구 근처에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생각보다 돈이 두 배로 들어간 아버지의 억울해 하던 표정이 지금도 잊히질 않는다. 나중에 날이 선선해지면 쌈이며, 양념이며 기타 등등을 싸들고 다시 이곳에 와야 될 것 같다. 그날은 푸짐하게 회를 떠 포구에서 비릿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먹으리라.

"아버지! 그래도 회는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대명포구 #횟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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