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서영철 87년 연세대 총학생회장, 양종곤, 방효창 87년 항공대 학생회장.강윤중
- 학생운동에 뛰어든 계기가 있나.
(양종곤씨) "모범생이라서(웃음) 선배들이 포섭을 안 했지만, 그래도 계기는 있었어요. 80년 광주학살 사진을 우연히 보게 되면서 큰 충격을 받은 것이죠. 또 단국대는 그때만 해도 시위가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인데, 제가 아는 친구가 이화여대를 다녔는데 어느 날 광주학살 관련 유인물을 주면서 설명을 하는 거예요.그 친구가 지적으로 우월해보이면서 자존심도 좀 상하고 그러면서 더 관심을 가지게 됐지요. 어렸을 때는 그런 것도 영향을 끼치잖아요. 그러다 한완상 교수의 '민중과 지식인', '해방 전후사의 인식', '백기완 선생 산문집' 등을 접하면서 동시대 젊은이들만큼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는 정도에서 1학년을 보냈어요. 돌이켜보면 역시 저희 세대의 운동에 대한 관심은 '80년 5월 광주'에서 시작했어요."
- 87년도에 총학생회장 활동은 집회·시위의 연속이었는데.
(양종곤씨) "단국대는 학내문제도 심각해서 반독재 시위하랴 학내문제로 시위하랴 참 바빴지요. 또 다른 측면에서 봐도 학생운동의 활성화를 위해서 학내문제가 주요 과제였고 그것이 대중적 학생운동에 대한 고민과 맞닿아 있기도 했습니다. 전대협 출신 정치인들에 대한 평가를 떠나서 전대협 출신들이 대중적 정치인이 많은 이유 중에 하나가 학교에서 대중적 훈련을 많이 거친 것도 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학도호국단을 해체하고 총학생회를 만든 과정, 학내문제에 눈을 돌려 학생복지위원회 등을 만든 과정, 복학생협의회를 만든 과정에서 대중적 훈련이 됐다는 것이죠. 87년 단국대 총학생회 출범식에 당시 한양대 총학생회장 김병식, 시립대 총학생회장 정지환 등이 왔어요. 당시 서대협(서울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을 만들 때였거든요. 서대협 초창기 멤버들이 김병식, 정지환, 서울대 총학생회장 이남주, 이대 총학생회장 임미애 등이었어요. 참 많은 이들이 대학 학생회 활성화와 87년 반독재 대항쟁에 힘썼던 시절이었죠."
- 서대협은 어떻게 건설됐나.
"당시에 동서남북 지구별로도 모임이 있었는데 서부지구가 잘 모였어요. 남부지구 서울대는 건대사태 이후 조직이 많이 와해됐고, 중앙대는 단과대학생회연합으로 있었고, 숭실대는 최진섭 총학생회장이 있었고…. 그렇게 5월 8일 출범식을 했어요. 전대협보다 먼저 출범했죠. 당시 고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이인영이 의장을 했고 23개 대학이 참여했죠. 출범식날 아침에 회의를 했는데, 18개 대학 총학생회장 중 이인영이 14표, 이남주가(현 성공회대 중국어과 교수)가 4표가 나왔던 기억이 나요."
- 전대협은 언제 출범했나.
(전대협 1기 회원들) "전대협은 한참 뒤인 8월 19일 출범했죠. 각 지역단위 대학생대표자협의회가 먼저 꾸려지고 그 다음에 전국 조직이 생긴 것이죠. 87년 6월 대항쟁을 사실상 전대협이 이끌긴 했는데 그때는 전대협이라는 조직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전대협의 사전 조직인 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가 있었던 것입니다.
6월 대항쟁 때는 매일 매일 격렬한 투쟁의 연속이어서 아무래도 조직 논의를 하지 못했고, 이한열 열사 장례식 때 전국 총학생회장들이 모이면서 본격적으로 조직 논의가 시작됐어요. 7월 5일 연세대 회의실에서 처음 모였어요. 그래서 8월 19일 충남대에서 출범식을 했습니다. 전국에서 모여야 하니까 이남 한 가운데가 좋겠다 싶어 대전에서 했죠. 전대협이 모인 또 하나의 계기는 당시 공주 지역 등에 엄청난 폭우가 내려 수해복구 활동을 전국 대학생들이 다 같이 한 것도 계기가 됐어요."
(양종곤씨) "전 그때 감옥에 있어서 잘 몰라요."(웃음)
- 87년 6월은 무척 바빴을 것 같은데.
(양종곤씨) "학교문제로 싸우랴 반독재 투쟁하랴 바빴죠. 6·10항쟁, 6·15 광화문 집회가 있었는데, 학교에서 집회하고 참여하러 가다 덜컥 잡혔어요. 여러 명이 함께 가는 것이 더 위험할 것 같아 혼자 가려고 후문을 통해 시내로 가려다 세탁소 앞에서 용산경찰서 형사들한테 잡혔지요. 그래서 6.29선언을 감옥에서 들었어요. 집시·폭력으로 옥살이를 하다가 11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나왔죠."
(전대협 1기 회원들) "당시 총학생회장들이 하나 둘씩 연행돼 구속됐는데 긴장을 조금만 풀면 잡히더라고요. 87년 6월을 이야기하면 우리 삶에서 가장 빛나던 시절 중의 하나였다고 할까요. 조국의 민주주의를 앞당겼다는 큰 긍지와 보람이 있지요. 그해 6월과 박종철․이한열 열사가 있었기에 지금의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과 복지, 화해와 평화가 가능했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잖아요."
- 양종곤씨는 유학생활을 8년 했는데, 비자는 잘 나왔나.
(양종곤씨) "겨우 나왔죠. 서울경찰청 신원조회에서 걸려서 안 나왔다가 외삼촌이 신원보증을 해줘 겨우 비자가 나왔죠. 제 죄목이 집시·폭력이어서 그렇지 만약 반미나 국가보안법이었으면 비자도 안 나올 뻔했죠. 지금도 예전에 반미운동 했다고 미국 비자가 안 나오는 사람들 많잖아요."
(전대협 1기 회원들) "87년 한신대학교 총학생회 기획부장이던 심상호씨가 대표적인 경우죠. 88년 미문화원 점거시도로 구속됐는데 아직 미국 비자가 안 나와요. '소렌토'라는 외식업체 사장인데 친미를 하고 싶어도 반미로 계속 낙인찍어 불이익을 주니까 계속 반미하며 살죠."(웃음)
"몇몇 사람들 전대협동우회 이용, 정계진출 근거지 활용 사실"
- 전대협 정신은 잘 계승되고 있다고 보나.
(전대협 1기 회원들) "솔직히 가슴 아픈 얘기지만 약간 변절된 부분도 있죠. 몇몇 사람이 전대협동우회를 이용한 것도 사실이고. 동우회가 방패막이 돼 정치적 진출의 근거지로 활용된 것을 묵인한 일도 있었죠. 논란이 많았어요. 전대협 정신이 훼손됐다는 후배들 지적도 있었고, 최근에는 전대협 정신과 일부 구성원들의 정치적 진출을 구별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죠.
3년 전 전문환(89년 서강대 총학생회장·평양 축전 준비위원장) 회장 때부터는 회장부터 정계 진출 뜻이 없는 사람이 하자는 얘기가 됐죠. 지금도 20주년이라고 전대협동우회를 활성화시키는 데 고민이 있어요. 다만 올해는 6월 항쟁 20주년, 전대협 출범 20주년이니까 계승사업을 통해 풀자고 얘기하고 있죠. 20주년이라는 의미가 매우 크기 때문에…. 이 사업을 하면서 전대협 네트워크도 활성화해보자는 뜻입니다."
- 네트워크를 복원하는 게 왜 중요하나.
(전대협 1기 회원들) "전대협 시대정신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얘깁니다. 그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더 찾아보자는 뜻입니다. 한국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서 온 몸을 던졌던 세대들이 무사안일하게 사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한국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조그만 힘이라도 되자는 것이죠.
전대협 세대들은 여전히 건강한 시대정신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전대협 세대 하면 몇몇 정치인들을 생각하는데 그 분들도 소중한 벗들이지만 중요한 것은 80년대 내내 민주주의와 인권, 민중과 서민을 위해 함께 한 많은 사람들이거든요. 이 분들이 사회 곳곳에서 열심히 살고 있고, 한국 사회의 저력이고 새로운 발전의 동력이라고 생각해요. 이들이 네트워크 된다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죠."
- 전대협의 시대정신은 뭐라고 보나.
(전대협 1기 회원들) "뭐니 뭐니 해도 불의에 대항하는 정신 아닐까요. 예나 지금이나 이념이 아니라, 마음을 관통하는 것은 상식이나 정의가 통하는 사회, 말 안 되는 일들을 고쳐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초기 노 대통령이 말했던 상식과 비슷한 면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대통령의 상식이 달라진 듯하고. 상식이 자의적인 판단이 돼서는 안 됩니다. 상식이라는 것도 결국 세대나 시대 공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각자가 이야기하는 상식이 다를 수 있지만, 사회과학적 기초 지식 위에 있는 상식이어야겠죠.
우리는 정치조직도 아니고 정치세력을 지향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때 열심히 운동했던 사람들이 지금도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학계, 기업, 정치, 주부, 시민단체 등 다양한 계층과 다양한 스펙트럼 위에서 분야별 네트워크의 새로운 정형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봐요.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이나 올바른 대안을 만들어내는, 상생하는 네트워크 같은 것이에요. 그러다 보면 우리 사회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가게 하는 사회적 영향력도 생길 수 있겠죠."
- 전대협 정신을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전대협 1기 회원들) "전대협 세대 중에는 열린우리당 친노그룹도 있고, 비노도 있고, 민주노동당 지지자들도 있습니다. 많이 달라진 면이 있죠. 하지만 시대의 과제나 현안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게 있습니다. 시대의 과제나 현안에 대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보는 것이 그것이죠. 지금은 구체적으로 얘기하기 좀 어려움이 있는데 각자 위치와 조건이 있어서 그래요. 실제 일은 당국자나 관련 단체들이 하고 우리는 거기에 동참하는 역할 정도 할 수 있는 것이죠.
20년 전에 6월 항쟁을 이끌어서 승리의 역사를 만들었는데,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상당부분 퇴보하고 있는 것, 사람들이 경제적인 부분에 매몰돼 있는 것은 슬픈 일이죠. 그래서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되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향후 20년 동안 우리 민족의 생존이 어떻게 가능할건지, 앞날은 어떨 건지, 어떤 비전을 제시할 건지 지금부터 더 치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봅니다. 386이 권력을 잡았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기자들의 소설입니다. 지금부터 20년 동안 사회의 주도세력이 된다는 것이 차라리 사실이겠죠.
그런 면에서 우리 세대가 합리적으로 국민들에게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정치는 정치를, 사회는 사회를, 경영은 경영을 제대로 하는 것. 그렇게 각자의 처지에서 바람직한 방향을 가려 하는 것. 이를 위한 네트워크가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채근하기 위해서요."
- 지금 전대협 세대가 분노하는 것은 무엇인가.
(전대협 1기 회원들) "예전처럼 싸우고 싶은 것, 열 받고 그런 것은 많이 줄어들었어요. 그래도 비판할게 있어요. 우리가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살고 있어요. 정치, 경제, 사회 모두 발전하고 다양해졌어요. 그런데 가장 뒤떨어진 부분은 어디일까요? 정치가 가장 뒤떨어졌다고 생각해요. 권력을 잡았건, 안 잡았건 전대협 세대들의 일부가 중심무대에 있는 것은 사실이어서 많은 욕을 먹고 있는 것이죠.
기업쪽에 386세대들, 6월 항쟁세대들은 부장, 차장들로 기업의 중심에 서 있어요.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어요. 세대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죠. 양극화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일정수준에 올라서 밑바닥에 있는 분들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제도나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부족했다고 생각해요. 열심히 살아왔고 사람 좋고 열정도 넘치는 6월 항쟁 세대 정치인들이 더 인정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은 양극화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는 등 그들을 지지했던 국민이나 청년학도들을 실망시킨 면이 있기 때문인 것이죠."
"열 사람이 한 걸음, 전대협 세대의 특징"
- 전대협 출신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이 많은 것 같은데.
(전대협 1기 회원들) "비판을 인정하지만 보통의 시민단체들의 양적 평가지표에는 동의하기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오영식, 임종석은 재선이고, 나머지는 다 초선인데 법안 발의하기가 쉽지 않고 국회에서 적응하고 소통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장 공격받는 것 중의 하나가 '전대협 출신들은 용기 있게 쓴소리에 앞장설 줄 알았다'는 것인데 동감하는 부분이 있어요.
하지만 전대협 세대의 특징 중의 하나입니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는 열 사람의 한걸음을 지향했던. 그래서 누가 튀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합의를 이뤄서 같이 가자는 의식이 내포됐어요. 모든 사람이 합의가 돼야 결정하고 행동하는데 익숙해진 것이죠. 그래서 비판과 애정이 공존해요. 솔직히 이라크파병, 북핵, 국보법철폐에서 얼마나 최선을 다 했나 가슴 아프기도 해요. 그래도 신뢰하는 동료들이었기 때문에 대놓고 이야기 못하는 면도 있습니다."
- 전대협 세대의 사상이나 신념 같은 것이 있나.
(전대협 1기 회원들) "옛날엔 자주·민주·통일이라고 이야기 했겠지요. 지금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그런 지향이나 구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온갖 억압과 독재를 뚫고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것. 그래서 지금도 우리 사회가 좀 더 새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낡은 것들을 몰아내고 갈 길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것을 갈망하고 불의에 맞서 싸우려 하는 정신이 전대협의 사상이나 신념 아닐까요."
- 양종곤씨 경영학자로서 포부가 있다면.
"장하성 펀드는 문제가 많다고 생각해요. 기업지배구조 개선이나 기업 투명성 증진 등 좋은 지향이 있긴 하지만 왜 외국자본을 끌어들여 해야 할까요? 진정한 의미에서 사회책임투자펀드를 했으면 해요. 문제 많은 외국 자본의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서민들의 돈을 모아서 회사를 잘 골라서 투자해 수익을 남기는 '서민복지펀드' 같은 것이죠. 서민들이 조그만 돈을 모아서 투자해 수익이 되고, 이익금은 서민복지에도 투자하고…. 정말 도전해보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같은 경우는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하루 4교대로 6시간 근무와 주4일 근무를 만들어 노동자들에게 최대한 휴식과 자기계발의 기회를 줘 결국 생산력 1위를 만들잖아요. 눈여겨봐야할 경영이라고 생각해요. 20대80의 양극화 사회에서 돈 없는 서민들도 돈을 벌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노동자들도 자기 계발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전대협 정신에 대해서 이야기 해왔는데, 지금 불의는 서민들이 양극화와 빈곤화로 고통 받는 것이고 여기에 맞서 다양한 형태로 싸워야겠죠."
덧붙이는 글 |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와 통일을 위해 쓰려져간 모든 넋들을 깊이 애도합니다. 지금만큼의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과 복지가 바로 님들때문에 가능했음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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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서민들과 함께 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 시민입니다. 현재 참여연대(www.peoplepower21.org) 실무자로 '민생희망본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또 대학생들과 다양한 강좌 프로그램도 종종 진행하고 있습니다. 실력은 부족하지만 '희망의 되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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