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전 개성 영통사에서는 '영통사 복원 3주년 기념법회'가 열렸다.오마이뉴스 구영식
지난 8일 오전, 조용하던 산사가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개성 영통사의 복원 3주년을 기념하는 법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남측과 북측 불자를 비롯해 700여명의 인사들이 참석했다.
이날 법회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승려들도 참석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삭발을 하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나 남측 참석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내가 북측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관계자에게 "왜 북측 스님들은 머리를 깎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럴 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원래 천태종을 창시한 대각국사 의천이 승려는 꼭 머리를 깎아야 한다는 규정을 두지 않았다. 상당히 개방적이었던 것이다."
개방을 '조절'하고 있는 북측이 은근히 개방을 '합리화'하는 모습이 모순처럼 느껴졌다.
영통사는 천태종의 성지... '성지순례'는 계속 될까
개성 송악산 자락에 위치한 영통사는 고려 현종 18년인 1027년에 창건되었다. 대각국사 의천은 이 곳에서 천태종을 개창했고, 이 곳에서 열반에 들었다. 영통사는 천태종의 성지인 셈이다.
영통사는 불교를 장려했던 고려 왕실과 깊은 관계를 맺었다. 인종을 비롯한 여러 왕들이 자주 이곳에 들러 향을 피워 올렸고, 이렇게 인연을 맺은 왕들의 얼굴그림(진영, 眞影)은 진영각에 모셔졌다. 하지만 영통사는 16세기 무렵 화재로 소실됐다.
다행히 지난 98년부터 북한과 일본 학자들이 3년여에 걸쳐 발굴작업을 벌였고, 이후 북한 역사학계에서 영통사 복원을 위한 설계도를 완성했다. 이어 지난 2002년 11월부터 남측의 천태종과 북측의 조선경제협력위원회가 복원사업을 시작했고, 2005년 10월 복원을 완료했다.
6만여㎡ 규모의 부지에 29채의 전각이 복원됐고, 절 앞에는 북한의 국보(제36호)인 '영통사 대각국사비'가 세워졌다. 영통사가 화재로 소실된 지 500여년 만의 일이다.
이날 열린 '영통사 복원 3주년 기념법회'는 상당히 의미있는 행사였다. 북측이 사실상 '개성관광 불가'를 통보한 가운데 열린 행사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달랐다. 게다가 수익성을 좇는 관광사업이 아니라 종교적 차원의 순수한 남북교류사업이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더욱 값졌다.
주최측은 "단순 관광이 아닌 최초의 대규모 순수 남북문화교류사업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깊다"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특히 "새로운 대북사업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난관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즉 앞으로도 계속 '성지순례'를 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있다(딸림기사 참조). 이와 관련, 리창덕 민화협 협력부장은 성지순례를 계속 허용할 뜻이 있음을 내비쳤다.
"성지순례는 관광사업이 아니라 남축 불교도들의 신앙생활이다. 남측에서 이것을 관광사업과 결부시켜 복잡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천태종과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는 오는 18일(500명)과 23일(1000명)에도 영통사에서 기념법회를 열고 선죽교 등 개성시내 고려유적지를 돌아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