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를 처음 탈 때의 승차권이라 보관했다.최육상
고속열차는 씽씽~ 잘도 달렸다. 꿈의 속도 300km라더니 속도표시판에는 꾸준히 시속 290km 안팎의 숫자가 오르내렸다. 고속열차는 거짓말처럼 서울을 떠난 지 2시간 40분만에 부산역에 도착했다.
나는 업무를 보는 중간 중간 민 지부장에게 수차례 전화통화를 시도했다. 민 지부장은 회의와 업무 때문에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며 늦은 저녁에서야 전화를 걸어왔다. 그 때는 거꾸로 내가 업무상 술을 마시고 있었기에 긴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부산에서의 일은 다음 날 저녁에서야 끝났고, 결국 나는 승무원들의 이야기를 기사로 쓰지 못했다.
이것은 지난 2005년 12월 28일, 처음으로 접했던 KTX와 승무원들에 얽힌 이야기이다.
그 날 이후, 승무원들은 내 이메일로 투쟁소식이 담긴 보도자료를 보내기 시작했다. 더욱이 지난 2006년 3월 1일 파업을 시작한 뒤로 그녀들은 문화제, 촛불집회, 항의방문, 점거농성, 단식농성 등을 통해 여러 신문기사와 방송뉴스에 등장했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단 한 번도 그녀들의 소식을 기사로 쓰지 못했다. 이미 많은 기자들이 기사를 쓰고 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그녀들의 첫 집회를 취재하고서 쓰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이었다. 삭발을 하고 단식을 하는 그녀들에게 미안하고 염치가 없어서였다.
KTX 여승무원 "우리는 계속 일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