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만 톤이나 깎아낸 돌들은 다 어디 있을까?

[인도 네팔여행 ⑤]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문화유산 엘로라 석굴사원

등록 2007.06.14 14:23수정 2007.06.14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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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인도 아우랑가바드의 엘로라 석굴사원군. ⓒ 조태용

아우랑가바드에 도착한 우리는 우선 방부터 구했다. 배낭여행의 50%는 방이 결정한다. 어떤 방에 묵느냐에 따라 편안한 휴식은 물론 새로운 여행자를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우랑가바드에 하나뿐이 유스호스텔로 가기로 했다. 버스 승강장에서 유스호스텔 가는 요금을 다른 릭샤왈라(운전기사)들은 모두 20루피나 50루피를 외치는데 수염을 멋지게 기른 단 한 사람만 10루피를 부른다.

그래서 그 오토릭샤에 올라탔는데, 그 사람은 10루피는 미끼였다. 자기가 엘로라까지 저렴한 가격에 가이드를 해주겠다면 유혹하는 것이다. 이 사람 저 사람이 한국어로 추천한 내용의 노트까지 꺼내 이야기한다. 인도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일종의 추천서다. 우리는 결국 그 사람의 권유와 더위에 지쳐 오토릭샤를 타고 엘로라에 가기로 했다. 오토릭샤는 데칸고원의 도로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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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사원은 무더운 더위를 피해 수행할 수 있다. ⓒ 조태용

엘로라에 도착해 우리를 맞이한 것은 다름 아닌 더위였다. 넓은 평원에 그늘 하나 없는 이곳에 있는 엘로라 석굴 사원은 왜 이 사람들이 석굴 사원을 만들었는지 단숨에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다. 당연히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더위' 때문이다. 석굴 사원 안으로 들어가면 시원하니까 말이다.

엘로라의 석굴 사원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석굴 사원 입장료는 카일라스신전을 제외하고 무료다. 엘로라에는 6세기경에 세워진 불교 사원과 7세기 중반의 힌두교 사원이 33개가 나란히 존재한다. 그리고 자인교 사원까지 함께 공존한다. 즉 힌두교, 불교, 자인교 석굴이 모두 한곳에 모여 있는 '사원의 종합세트'라고 할 수 있다.

세 개의 종교 사원이 공존하는 곳 '엘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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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로라에는 33개의 불교, 힌두교, 자인교의 사원이 함께 공존한다. ⓒ 조태용

불교 사원 옆에 힌두교 사원과 자인교 사원을 함께 두는 그들의 포용력이 놀라울 뿐이다. 아니면 석굴을 만들어 보니 너무 힘들어 옆에 사원을 부수는 것이 아까웠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들의 포용력 덕분에 엘로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 장소에 세 개의 종교 사원이 공존하는 곳이 되었고, 결국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그래서 낯선 이방인들을 그러모아 후손들에게 일자리를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이것이 그들이 모신 신들이 내린 축복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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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라스 사원은 100년동안 1000명의 노동자가 22만톤의 돌을 깎아 만들었다고 한다. ⓒ 조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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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 위에는 4마리의 사자가 상이 있는데 모두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사방을 주시하고 있다. 누구든 신전을 모욕하면 용서하지 않겠다는 강열한 의지처럼 보인다. ⓒ 조태용

엘로라의 석굴사원은 산을 벽에서부터 깎아 안으로 들어가는 것,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동굴을 파는 것처럼 만든 것인데, 유일하게 입장료를 받는 카일라스(시바신이 산다는 티베트에 있는 성산) 사원은 위에서부터 파고 내려오는 방법을 이용했다고 한다.

칼일라스 사원 뒤쪽 산 위로 올라가 보면 산과 신전의 끝 부분이 거의 일치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사원은 3층 건물 높이 이상 되는데도 사다리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파고 내려가니 사다리가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 웅장한 규모와 세밀한 조각을 보고 있자면 그들의 놀라운 기술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산 위에서 아래의 모든 조각과 배열을 입체적으로 구상하고 계획해 치밀하게 만들어낸 그들의 솜씨는 세계 문화유산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였다.

이 사원은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 1000명의 노동자가 22만 톤의 바위를 깎아낸 땀의 결과로 바위 하나를 깎아 만든 세계 최대의 건축물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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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라스사원 위에 산에 올라가면 멀리 데칸고원의 끝없이 펼쳐진 평원이 보인다. ⓒ 조태용

카일라스 사원을 깎아 낸 바위 위로 올라가면 멀리 데칸고원의 황량하고 끝없는 평원이 보인다. 시원한 바람이 아닌 묵직한 더위가 담긴 바람이 불어온다. 사원을 만들기 위해 일하는 석공들의 땀방울이 만든 위대한 유산 앞에 짧은 삶을 살고 끝나는 우리의 삶은 얼마나 허망한 한순간임을 깨닫게 된다.

신전 위에는 4마리의 사자가 상이 있는데 모두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사방을 주시하고 있다. 누구든 신전을 모욕하면 용서하지 않겠다는 강열한 의지처럼 보인다.

엘로라에서 본 것은 그 많은 석굴들과 조각들이 아니었다

사실 엘로라에서 본 것은 그 많은 석굴들과 조각들이 아니었던 것 같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 무엇인가를 보기 위해 엘로라에 왔지만 엘로라를 떠나면서 엘로라를 보고 느낀 점은 왠지 모를 쓸쓸함과 더위뿐이었다.

릭샤왈라는 아우랑가바드로 돌아가는 길에서 우리를 잠시 비단을 판매하는 상점에 내려주었다. 일행은 비단상점에 들어가 구경을 하는 동안 나는 밖에서 염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는 소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도 이 아이의 조상 중 누군가는 엘로라의 불교 사원과 힌두교사원, 자인교의 사원을 만든 노동자였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에 따라 융성한 종교가 다르니 그들의 조상도 시대에 따라 다른 석굴 사원을 만들었어야 할 것이다.

석굴 사원에서 인류의 행복, 또는 개인의 구복을 위해 기도했을 많은 수도승들의 노력과는 무관하게 어린 꼬마는 염소를 몰면 하루를 마감한다. 아이는 나를 보더니 환한 웃음으로 인사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가야하는 길을 향해 다시 염소를 몰고 황량한 들판으로 돌아갔다.

나는 엘로라의 석굴 사원보다 아이의 모습이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굴은 내가 죽은 이후에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아이의 눈빛은 매일매일 달라질 것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 그들이 변하지 않는 돌로 불교 사원을 지은 지 1세기도 지나지 않아 힌두교가 다시 번성한 것처럼 말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오직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 존재할 뿐이다.

엘로라의 또다시 어둠이 내린다. 그나저나 22만 톤이나 깎아낸 돌들은 다 어디 있는 것일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농산물 직거래 장터 참거래 농민장터(www.farmmate.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농산물 직거래 장터 참거래 농민장터(www.farmmate.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인도 네팔여행 #엘로라 #석굴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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