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한미FTA 관심 없습니다

대학가 한미FTA 관련 행사·대자보에 무관심

등록 2007.06.14 10:42수정 2007.06.14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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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앞에 일본이 달려갑니다.
앞에 중국이 달려갑니다.
우리 앞에 세계가 달려갑니다.
이곳의 세계최대의 시장, 미국
우리는 이 시장을 넘어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더 큰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우리의 선택, 한미FTA
이제, 세계 앞에 더 큰 대한민국이 달려갑니다"


- 국정홍보처 -


2006년 벽두부터 '사회양극화'와 '한미FTA 체결'을 주된 목표로 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이 있고 난 후, TV를 통해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던 광고들이 있다. 국정홍보처의 이름으로 방송된 몇 개의 광고들은 그 시기를 조금씩 달리하면서 끊임없이 한미FTA의 필요성에 대해 호소했다.

하나의 광고 기간이 만료되면 또 다른 광고가 나와 "우리는 가능성의 민족"이기에 한미FTA 타결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란 메시지를 전한다. 급기야는 광개토대왕과 장보고까지 등장하여 "우리 민족"에 흐르고 있다는 '뜨거운 도전의 피' 운운하면서 "한미자유무역협정은 우리가 경제 강국으로 도약할 새로운 기회"임을 역설한다.

언제나 진취적 마인드와 애국심이 불끈불끈 솟아날 것만 같은 분위기의 배경음악과 태극기가 펄럭이며 끝이 나는 엔딩 장면은 가히 민족적 감성을 자극해주기에 충분하다.

광개토대왕이 군사들을 이끌고 'UNITED STATES'로 달려가는 화면과 함께 몇천억 달러의 수출이 기대된다는 메시지가 뜨지만 그것이 어떻게 산출된 액수인지, 누구로부터 얻게 되는, 누가 얻게 되는 수익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잊을 만할 즈음 또다시 마주치게 된 지하철 승강장 천장에 매달린 전광판에서는 "한미FTA, 더 큰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가 선택한 길입니다"라고 은연중에 동의를 강요한다. 여기서 '우리'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너무나도 쉽게 '국익' 혹은, 국가 '전체'의 이익이라는 말로 파병이 정당화되고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이 정당화되고 있지만. 정작 생사가 좌지우지될 수 있는 당사자들은 그 선택 과정에 참여해 본 적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는 별 연관이 없으리라는 막연한 생각에, 혹은 '먹고 사는 일에 바빠' 국정에 대해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일부 앞선 세대들은 자신의 자식들과 그 자식의 자식들이 살아갈 미래를 위해 일터에서, 거리에서 그리고 자기가 속한 공간에서 각기 한미FTA에 반대하는 저항의 움직임을 만들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다가올 사회의 주역이 될 젊은이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 잘 먹고 잘 살려면 직장이 있어야 하는데, 취업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라서 '정치'를 논할 여유가 그/녀들에게는 없는 것이다.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앞에 설치된 게시판에 "한미FTA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세요?"라는 대자보가 붙어있다. 설문에 대한 학생들의 참여가 매우 저조하다.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앞에 설치된 게시판에 "한미FTA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세요?"라는 대자보가 붙어있다. 설문에 대한 학생들의 참여가 매우 저조하다.최재인
지난 5월과 6월 사이, 고려대에서만 한미FTA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주최하는 강연회와 토론회가 수차례 열렸지만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학생들의 이동이 가장 잦은 중앙도서관 앞 게시판에 "한미FTA,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설문 형태의 대자보가 붙었지만 그것 역시 학생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게시 시한이 지나 철거될 때까지도 대자보 설문에 붙어 있는 스티커는 채 100개도 되지 않았다. 대학생들에게 특히 중요한 비정규직 양산과 청년실업, 교육개방 같은 의제들은 스티커에서조차 외면받았다.

지난 4월 2일 타결 이후 정부를 비롯한 한미FTA 추진세력들은 기세등등하게 기만적인 여론몰이를 계속하고 있지만, 1년 넘게 전사회적으로 일어났던 한미FTA 반대 흐름은 한 노동자의 죽음을 통한 절규에도 조금씩 잠잠해지고 있다. 대학에서 언제 한번이라도 반FTA 정서가 크게 불타 올랐던 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백으로 가득했던 대자보가 일주일만에 철거된 뒤 비어 있는 게시판을 보고 있으려니 드는 생각이 있다.

'도마' 위에 올라보기도 전에 냄비 속에 '풍덩'하고 던져진 찌갯거리 같구나.
#한미FTA #대학생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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