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가 자신의 전용 말을 관리하고 있다. 미국 시골에서 말을 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문종성
일요일 아침, 맑은 하늘 아래로 뉴햄프셔 주(州)를 질주하며 좌우를 살펴보았다. 지나가다 교회가 보이면 들어가 예배를 드릴 참이었다. 마침 작은 마을에 두 곳의 교회가 보였고, 좀 더 가까이에 있는 교회에 들어갔다. 예배는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작은 교회에는 100여명 정도가 되는 성도가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귀에 익숙한 성가대의 중후한 찬양은 이곳을 찾은 나에게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주었다. 비록 여행자의 입장이지만 헌금에는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참여한다.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다.
작은 교회라 자리가 꽉 차 있기에 뒤에서 서서 예배를 드렸다. 옆에는 릭(Rick)이라는 친구가 역시 나와 같이 서 있었다. 그는 신실하게 보였고, 아마도 이번 주에 자리를 안내하는 봉사를 맡은 것 같았다.
"지금은 헌금 시간이에요…. 오, 그런데 자전거 순례라구요? 와우~ 대단한 걸요?… 음, 지금 설교 시간이구요….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 걸렸어요?… 화장실은 왼쪽 문을 열고 들어가 계단을 내려가면 우편에 있을 겁니다…. 무척 힘들 거 같은데."
릭은 내가 예배의 흐름을 놓치지 않게끔 순서마다 친절하게 해설을 덧붙여주었다. 동시에 자전거 여행에 대한 궁금증도 물어왔다. 예배 시간에 우린 종종 엄숙한 잡담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교회인 줄 알았던 곳이 자세히 보니 성당이다.
안경을 쓰지 않아 잘 안 보였는데 미간을 찌푸려 인상을 쓰고 초점을 맞추어 보니 십자가에 예수님이 매달려 있는 것이다. 어쩐지 목사님이 화려한 의상에 각종 성물을 들어가며 예배를 진행시킨다 했다. 크게 개의친 않는다. 환경보다 내 마음이 중요한 거라 생각한다.
미사 중간에 갑자기 사람들이 앞으로 줄을 서서 나갔다. 나 역시 마크와 함께 맨 마지막으로 목사님이 아닌 신부님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가 건네주는 포도주와 떡을 말린 성체(聖體)를 먹었다. 신자들은 성호를 긋고 기도하며 그 자리를 떠났지만 나는 개신교도이기 때문에 무릎 꿇은 그 자리에서 두 손 모아 기도하고 나왔다.
'신실하신 주님, 부디 저의 자전거 여행과 이들의 삶 모두가 평안하길 소원합니다.'
시골 마을에 낯선 동양청년이 자전거 져지를 입고 미사를 드리니 신기한 듯 다들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 보인다. 나 역시 그들의 미소에 생기 있게 화답하며 자리를 빠져나왔다.
예배 후엔 커피 타임이라고 해서 교회 뒤뜰에 음식을 차려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릭의 권유로 함께 그곳에 가서 그들과 음식을 함께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여유로움이 참 좋다. 여러 음식이 뷔페 형식으로 나열되어 있는데 난 여행 중인 처지에 비타민이 부족할 것 같아 과일을 눈치 보지 않고 잔뜩 섭취했다.
특히 파인애플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 중의 하나라 잔뜩 접시에 올려두고 한입 가득 오물오물거리며 맛있게 먹으니 사람들이 재밌어라 한다. 대신 취향에 따라 케이크와 쿠키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음료도 마찬가지다. 난 커피나 차를 잘 마시지 않는다. 차 마시는 것을 즐기고, 커피가 꼭 필요하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난 주스와 탄산음료를 너무 좋아한다.
그래서 티 타임(Tea Time)을 가질 때에도 다들 머그잔에 커피를 탈 때 나만 유리잔에 시원한 주스가 들어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덕분에 젊은 나이에 적지 않은 치과 신세를 지기도 했으니 이게 다 세상이치에 흐트러짐 없는 인과응보다. 어쨌거나 나의 접시는 다른 사람의 몇 배는 됨직하니 그득 차여 있었다.
'체면은 건강의 적이다'라는 어느 어른의 조언이 여행을 거듭하면서 어느새 나의 몸에 체득되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눈웃음으로 인사를 나누었지만 릭이 소개시켜주고 다시 소개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데리고 와서 인사시켜 주니 얼마 지나지 않아 거의 모든 사람들과 개별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그들은 자기네들끼리 이야길 나누면서 이미 내 정보를 파악한 다음에도 여행 중에 지나며 만났던 여느 다른 이들과 똑같은 질문을 되풀이했고 나도 그에 상응하는 똑같은 대답을 해야 했지만 기분은 화창한 날씨만큼이나 무척 좋았다.
"여행 중에 주님의 축복이 당신과 함께하기를 진심으로 빌어요. 많이 드세요."
"건강을 위해 기도할게요. 건강이 최우선이죠."
"당신은 아마 안전한 여행을 하게 될 겁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니까요."
햇살로 구겨진 인상 속에서도 비단처럼 마음을 쭉 펼쳐 있는 진심 어린 반가움으로 낯선 동양 청년을 환영해 주고 있었으니까!
"이 봐. 갈렙. 커피타임 후에 우리 집에 잠깐 가자구."
사람들과의 긴 인사를 천년 묵은 고목나무처럼 기다려 준 릭은 미사를 드린 아들과 함께 나에게 자기 집에 갈 것을 권유했다. 그래서 도착한 그의 집에는 부인과 개 두 마리가 함께 있었다.
그는 먼저 나를 창고에 데려가더니 냉장고에서 주스를 무려 9병이나 꺼내주었다. 이 지역 일대의 특산물이라 할 수 있는 크랜베리(cranberry) 주스는 물론, 오렌지와 토마토 주스까지 챙겨 준다.
게다가 다시 주방에 와서는 햄과 땅콩버터와 딸기잼이 들어간 각기 다른 두 개의 샌드위치를 손수 만들어 주고, 체력을 위해 초코바와 간식거리들을 챙겨준다. 거기에 가는 길에 혹시 필요한 거 있을 때 보태 쓰라며 건네준 30달러까지. 나를 깜짝 감동시킨 완벽한 섬김이었다(길에서 받은 도네이션은 나중에 극빈국 재후원을 위해 쓰지 않고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