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나앉게 된 조총련 중앙본부

일본법원 627억엔 변제 명령... 확정 전 압류조치도 가능

등록 2007.06.18 21:23수정 2007.06.18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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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찰이 17일 도쿄 시내 재일조선인 총연합회(조총련) 건물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다.
일본 경찰이 17일 도쿄 시내 재일조선인 총연합회(조총련) 건물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다.연합뉴스-로이터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중앙본부가 결국 길거리로 나앉게 됐다.

일본 도쿄지방법원은 18일 정리회수기구가 총련을 상대로 낸 627억엔(약 4700억원) 채무지급 청구 소송에서 원고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전액 변제하도록 총련 측에 명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법원은 특히 판결이 확정되기 전이라도 압류 조치를 실시할 수 있도록 '가집행 선언'을 덧붙였다.

이에 따라 정리회수기구는 총련 중앙본부가 들어있는 도쿄 치요다구(千代田)구의 '조선중앙회관'(토지 2390㎡, 지상 10층 지하 2층 건물) 등을 강제로 처분할 수 있게 됐다. 그 동안의 경위나 현재 일본 사회의 분위기로 볼 때 곧 '조선중앙회관'에 대한 경매절차에 착수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소송은 파산한 총련계 신용조합들의 채권을 회수한 정리회수기구가 지난 2005년 실질적 채무자인 총련에 대해 채무상환을 요구하면서 제기했다. 총련 측은 채무관계를 인정하면서도 지불 시기를 최대한 늦춰보려고 노력했으나, 악화일로를 치달아온 일본 내 대북 여론 때문에 여의치 않았다.

특히 중앙본부가 들어있는 '조선중앙회관'은 총련 측으로서는 어떻게든 지켜내고 싶은 '마지막 보루'였지만 일본정부는 '원칙적 법 집행'을 내세우며 전혀 융통성을 보이지 않았다. 법원의 627억엔 변제 명령 판결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충분히 예견됐던 일.

차압 피하기 위해 매각 시도했으나…

이날 판결은 총련이 최근 '조선중앙회관'에 대한 차압을 피하기 위해 등기상 매각을 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총련과 매매계약을 체결한 회사는 총련을 감시하는 입장에 있었던 오가타 시게타케 전 공안조사청 장관이 대표로 있는 투자자문회사 '하베스트 투자고문'. 지난달 말 35억 엔에 사들이기로 하고 이미 소유권 등기까지 마쳤다.


그러나 아직 매각대금 결제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지난 주 한 신문에 이 사실이 보도되면서 일은 틀어지기 시작했다. 이 계약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자금을 넣기로 했던 투자자들이 난색을 표명, 대금 지불이 어렵게 된 것. 결국 '하베스트 투자고문' 측은 인수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아베 신조 총리까지 나서 오가타 전 장관을 비난하면서 거래를 무산시키기 위해 전방위 압박을 가했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첫 보도가 나간 다음날인 지난 13일 밤 오가타 전 장관의 자택과 사무실을 전격 압수 수색했고, 14일에는 총련 측 법정 대리인인 쓰치야 고켄 전 일본변호사연맹 회장 자택과 사무실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도쿄지검은 '하베스트 투자고문'이 매각대금도 지불하기 전에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한 것은 위법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압수수색은 위법의 증거를 찾아내는 것 보다는 계약 자체를 무산시키기 위한 압박의 성격이 짙었다.

문제의 본질은 일본 정부가 총련 60년 역사의 상징인 '조선중앙회관'에서 총련 중앙본부를 어떻게든 쫓아내려는 데 있다. 이번 계약은 매각대금을 지불한 뒤 우호적인 재 임대 계약을 통해 총련 중앙본부가 '조선중앙회관'을 계속 사용하게 해주는 데 목적이 있다고 본 것이다. 총련을 도와주려는 어떤 시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지난 3월 3일 도쿄 히비야 공원 야외음악당에서는 조총련 약 5천여명이 일본 정부를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었다.
지난 3월 3일 도쿄 히비야 공원 야외음악당에서는 조총련 약 5천여명이 일본 정부를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었다.박철현

전직 공안장관 "재일조선인 권리옹호 거점... 존속이 일본 국익에 도움"

도쿄 중심가 요지에 위치한 '조선중앙회관'은 일본 우익들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다. 이 건물은 도쿄 신주쿠에 있던 총련 중앙본부가 1960년 우익의 방화테러로 불타면서 당시 교포들이 십시일반으로 자금을 모아 세웠다.

그 만큼 총련계 교포들에게는 애환이 서린 장소이며, 총련 스스로는 일본과 국교가 없는 북한의 '대사관 기능'을 겸한다고 말해왔다. 총련 중앙본부가 이 건물에서 나간다면 그만큼의 상징적 의미가 있다.

일본 정부도 오랜 세월 '대사관 기능'을 암묵적으로 인정해 이 건물에 대한 토지세와 재산세 등 고정자산세를 면제해왔다. 그러나 우익인사 이시히라 신타로가 도쿄도지사가 되고, 북한과의 관계가 점점 악화되면서 2003년부터 도쿄도는 고정자산세를 부과하고, 이를 거부하면 차압조치를 취해왔다.

오가타 전 장관은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앙본부의 토지와 건물은 재일 조선인 권리옹호의 거점이다"라고 강조했다. 과거 총련을 감시하는 정부기관의 책임자로서, 그 실정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입장에서 존재 의의를 강조한 것이다.

그는 "일본에는 북한과의 국교정상화를 바라는 사람도 있다"면서 "대사관 기능이 있는 중앙본부가 존속하는 것은 일본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며 이 문제를 대국적 견지에서 바라볼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태는 오가타 전 장관의 의도와는 반대로 흘러왔다. 반대세력이 의도적으로 흘린 것으로 보이는 보도 때문에 계약은 결국 무산됐다. 오가카 전 장관은 "투자자들의 자금을 모아 매각대금을 치르려고 했으나 보도를 보고 불안해진 투자자들이 난색을 표명 자금이 모이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다른 거점들도 압류될 위기… 본부 이전 순조롭지 않을 듯

이어 18일 도쿄지방법원의 결정이 내려지면서 총련 중앙본부는 앞으로 극적인 상황반전이 없는 한 지금의 보금자리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게 됐다. 총련 측은 외곽의 싼 건물로 이전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이마저 순조롭지는 못할 전망이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도쿄, 오사카 등 주요 도시의 총련 지방본부와 학교 등 29개 시설 가운데 9개 시설이 정리회수기구에 압류 또는 가압류된 것으로 확인됐다. 신문이 총련 시설들의 등기부를 조사한 결과 지난 15일 현재 도쿄도, 서도쿄, 지바현, 아이치현, 사가현, 오사카부의 각 본부가 압류된 상태였다. 또 미야기현 본부, 아이치현 조선중고급학교, 규슈 조선중고급학교 등도 가압류되어 있었다.

이날 법원이 627억엔 지급 명령과 정리회수기구의 가집행을 인정함에 따라, 나머지 20개 시설 상당수도 압류돼 총련은 활동거점 대부분을 잃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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