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 배달부 자라시, 어떤 일이 있었길래?

[아이들과 함께 읽는 책42] <물개섬의 세이야, 잘 있니?>

등록 2007.06.20 10:45수정 2007.06.20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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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개섬의 세이야,잘있니?>겉그림 ⓒ 푸른길

단짝 친구인 '구보'가 고래곶 수영대회에 참가한다고 떠난 지 한참이나 되도록 돌아오지 않아 걱정하던 '세이'에게 어느 날 '물개 배달부'가 '구보'의 편지를 전해 준다.

물개 배달부 뒤에는 자라시가 쭈뼛거리고 있었다. 이런 자라시는, 늘 누군가의 뒤에서 머뭇거리고 주춤거리는, 용기와 자신감이 없는 우리 주변의 '어떤' 아이들의 모습과 닮았다.

자라시는 새내기 수습 우편 배달부였다. 그래서 물개 배달부가 데리고 다니면서 길을 익히는 중이었다. 이런 자라시가 처음으로 혼자 배달을 떠나게 된다. 그런데 막상 혼자 길을 나서고 보니 여간 막막한 게 아니다. 그냥 돌아가고 싶을 만큼 바다가 두려웠다.

하지만 그냥 돌아갈 순 없다. 첫 임무를 무사히 마쳐야 정식 배달부 임명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개 배달부처럼 멋진 배달부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주춤거리고 있던 자라시는 문득 물개 배달부를 알게 된 몇 달 전을 떠올렸다.

"너는 몸집이 작고 수영도 잘하지 못하니까 참가할 수 없어!"

다른 물개들보다 몸집이 턱없이 작고, 물개인데도 수영이 서툰 자라시가 고래곶에서 열리는 수영 대회에 나간다고 하자 다들 이런 식으로 핀잔을 하며 반대했다. 꼴찌를 할지라도 결승점까지 꼭 가보고 싶은 자라시는 막상 이 말에 그만 풀이 죽고 말았다.

"서두르지마! 네가 하던 대로 하면 돼. 괜찮아. 넌 꼭 해낼 거야" - 물개 배달부

하지만 물개 배달부만은 달랐다. 막상 출전하였지만 너무나 힘들어 포기하려고 할 때, 1등으로 달리던 물개 배달부가 되돌아 와, 옆에 붙어 가면서 결승점까지 무사히 갈 수 있도록 용기를 주었다.

지금 여기에 물개 배달부가 있다면 무슨 말을 할까요?
“물개가 물에 빠지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안 되겠어. 배달부는 될 수 없겠어. 불합격이야. 그만둬 줘.”
이렇게 말할 리는 없겠죠. 물개 배달부라면 이렇게 말해 줄 겁니다.
“괜찮아. 너라면 꼭 할 수 있어.”
…… 물개 배달부를 생각하자 자라시는 마음이 든든해졌습니다. 새 힘이 솟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물개 배달부가 아니면 숨이 막혀 포기해버렸을 자라시는 무사히 결승점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 때문에 금메달을 딸 수 있었던 물개 배달부는 꼴찌를 하고 말았지만, 그 대신 자라시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배달부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두려워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 지난 날 자신에게 용기를 준 물개 배달부를 생각하며 힘을 얻은 자라시는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우편 배달부 임명장을 받는다. 그런 어느 날.

“누구라도 좋아요. 어디든지 가서 만나는 아무에게나 전해 주세요.” -세이

물개 섬과 고래 곶만 오고 가며 편지를 배달하던 자라시에게 세이는 특별한 부탁을 하게 된다. 자신의 기쁜 소식을 새로운 곳의 새로운 물개들과 고래들에게 전해달라면서 20통의 편지를 내민 것이다.

단 한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곳으로 모험을 떠나야 하는 자라시는 도무지 자신이 없다. 하지만 자신은 누군가든 원하는 곳으로 편지를 배달해야만 하는 우편배달부 아닌가! 지금 포기하면 물개 배달부가 얼마나 실망할까? 또 다른 물개들이 얼마나 비웃을까?

<물개섬의 세이야, 잘 있니?>는 세상을 향하여 머뭇거리면서 수줍어하는 아이들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갖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세상을 향하여 수줍어하고 머뭇거리면서 외톨이로 웅크리고 있던 아이가 활짝 웃으면서 힘껏 기지개를 켤 만큼 용기와 자신감을 갖게 할 이야기다.

물개와 고래를 비롯한 물속 생물들이 사는 바다가 훤히 보이는 것처럼 이야기는 친근감 있고 잔잔하게 그려진다. 아이들 동화책이지만 물속 생물들의 잔잔하고 귀여운 이야기나 그림은 또한 빙긋 웃게 만든다.

자라시는 세이의 편지를 배달하고자 낯선 바다로 가지만, 불행하게도 어마어마한 소용돌이 속에 휩쓸리고 만다. 편지도 모두 잃어버리고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자라시는 우여곡절 끝에 물개섬으로 돌아 와 세이의 기쁜 소식을 함께 축하할 수 있게 된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겁쟁이 자라시가 어떻게 살아 돌아 올 수 있었을까?

"처음으로 혼자서 무언가를 하려면 누구든지 긴장해서 가슴이 두근두근한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만날 때, 처음으로 어떤 일을 할 때, 처음으로 어떤 곳에 갈 때 등등…. 겁이 나기도 하고 실패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할 거예요. 하지만 여러분을 응원해 줄 사람이 어딘가에 꼭 있을 테니까 걱정 마세요. "괜찮아, 너라면 할 수 있어"하고요. - 책 속에서

용기와 자신감뿐이랴. 물개 배달부와 소용돌이 끝에 만나게 되는 푸카푸카가 자라시에게 준 관심과 배려는 아이들에게 웅크리고 있는 외톨이 친구를 돌아보게 하는 배려를 갖게 할 것이다.

우리 아이는 왜 숫기가 없을까? 왜 선뜻 나서지 못하고 알고 있는 것도 용기 있게 말하지 못할까? 얼굴이 빨개져서 모기만한 소리로 우물거리는 내 아이, 자신감이 지나쳐서 우쭐거리며 주변 친구를 돌아보지 못하는 내 아이에게 읽게 하면 좋은 책이다.

묶어 읽으면 좋은 책 2권

ⓒ푸른길
<나는 아프리카에 사는 기린이라고 합니다>에서 아프리카에 사는 심심한 기린 한마리가 편지를 쓴다. <물개섬의 세이야 잘 있니?>에서 새내기 우편배달부 자라시가 감쪽같이 사라지자 자라시를 찾아 나서는 펠리컨이 배달을 맡았다. '지평선 너머에서 맨 처음으로 만나는 동물에게'라고 봉투 겉면에 쓰여 진 편지는 누구에게 배달될까? 편지하나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린씨께- 편지, 고마웠어요. 색깔 말인데요. 색이란 게 참 이상하더군요. 내가 사는 고래곶이나 고향인 펭귄 섬 주위는 바다인데. 낮에는 파란색입니다(맑은 날). 그런데 아침이나 저녁 무렵에는 달라져요. 밤에도 다르고요. 게다가 어떤 색깔을 하고 있어도 양동이에 담아서 보면 아무색도 띠질 않습니다. 참 이상하죠? 이상한 게 색깔이 아니라 바다일지도 모르겠어요. 아니, 어쩌면 양동이가 이상한 건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제 몸 색깔은 대충 흰색과 검정색입니다. 양동이 안에 들어가 보았는데도 색깔이 변하지 않았으니까. 틀림없을 거예요! 추신: 당신과 나는 왠지 좋은 친구가 될 것 같아요. 편지 기다릴께요."

기린이 펭귄의 색을 묻자 펭귄은 이렇게 답장한다. 기린이 감동할 만하다. 펭귄 흉내를 내는 기린과 기린 흉내를 낸 펭귄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작가는 왜 하필 기린과 펭귄을 펜팔 친구로 만든 걸까?

<나는 고래곶에 사는 고래라고 합니다> 역시 아기자기하고 빙긋 웃음 짓게 하는 이야기다. 펭귄과 기린이 편지를 주고받는 것을 부러워하던 고래 선생님은 가르치는 일을 그만 두자 마자 펜팔 친구 찾기에 적극 나서는데..., 세대 간의 세대차를 넘는 소통의 소중함, 정정당당한 경기, 남을 배려하는 마음, 함께 맛보는 승리감 등이 주제다. 이 세편의 동화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따로 떼어 읽든 함께 읽든 그다지 상관없이 감동과 재미가 있다. / 김현자

덧붙이는 글 | <물개섬의 세이야, 잘있니?>,<나는 아프리카에 사는 기린이라고 합니다>,<나는 고래곶에 사는 고래라고 합니다>는 모두 '이와사 메구미'의 창작 동화로 <푸른길>에서 출판, 값은 8,000원이다.

덧붙이는 글 <물개섬의 세이야, 잘있니?>,<나는 아프리카에 사는 기린이라고 합니다>,<나는 고래곶에 사는 고래라고 합니다>는 모두 '이와사 메구미'의 창작 동화로 <푸른길>에서 출판, 값은 8,000원이다.

물개섬의 세이야, 잘 있니?

이와사 메구미 지음, 김경화 옮김, 다카바타케 준 그림,
푸른길, 2007


#물개섬의 세이야 잘 있니 #이와사 메구미 #푸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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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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