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순과 다 자란 솔잎
김옥자
우리 시골집에는 해마다 6월이면 하는 행사가 있다. 매실차와 매실주를 담그는 일과 솔잎차와 송순주, 송근주를 담그는 일이다. 매실차는 보편화 되어 있는 줄 알고 있지만 솔잎차와 송순주, 송근주는 우리 시아버님만의 자칭 '특허'다. 오늘은 솔잎차와 송순주 담그는 비법을 아버님께 사사(?) 받았다.
비법이라고 하니 조금 거창해 보이지만, 솔잎을 선별하는 눈을 말하는 것 같다. 우선 순수 국산 소나무를 골라서 5~6월 초에 나오는 새 순을 채취를 해야 한다. 새 순은 한눈에 금방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연한 연두색을 띠고 있고 길이가 성인 솔잎의 절반도 안 된다.
한 나무에서만 많이 따면 소나무의 노화가 빨리 오므로 여러 나무에서 조금씩 따야 하기 때문에 온 식구가 한나절을 산을 헤집고 다녀도 작은 바구니로 한 바구니 겨우 딸까 말까 하다. 어쩌다 욕심이 나서 조금 더 따려고 하면 아버님께서는 "귀해야 약이 되제" 하시며 한 해 먹을 분량 만큼만 따라고 이르신다.
솔잎을 딸 때 주의할 점이 있다면 어린 소나무는 건드리지 말아야 하며, 노송도 좋지 않다고 하니 우선 나무를 볼 줄 알아야 한다. 또 한 가지는, 멧돼지들에 의한 농작물 피해 때문에 요즘은 멧돼지 사냥을 허락한 곳이 있다고 하니 산에 오를 때는 꼭 밝은 색의 옷을 입고, 혼자 행동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온 가족이 함께 산에 오르면 소풍가는 기분이었는데 올해 아버님께서는 연세가 높으셔서 빠지기로 하셨다. 노닥거리다가 늦어질 때를 대비해서 김밥을 쌌다. 계란도 삶고, 작년에 담은 솔잎차를 한 병 준비해서 배낭에 넣고 남편과 함께 나서는데 아버님께서 다시 한 번 주의를 주신다.
"어린 소나무는 건딜지 말아야 혀."
아버님의 당부를 앞세워 서둘러 출발했다. 산 속은 정말 좋다. 언제나 푸근하고 머리가 맑아진다. 향긋한 솔 내음은 또 어떻고! 처음 보는 온갖 야생화가 다소곳이 피어 있고 산나리는 화사한 미소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새참을 먹던 멧새가 우리의 발자국 소리에 놀랐는지 푸드득 날아오른다.
"아유 미안해라. 야, 거기 있다고 말을 하지."
"당신이 먼저 전화를 하지 그랬어."
남편과 나는 썰렁한 유머를 주고받으며 산의 푸르름에 취하고 향기에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