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내지 마라, 귀해야 약이 되제"

내후년엔 내가 담근 송근주로 반주 드셨으면...

등록 2007.06.21 14:15수정 2007.06.2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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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순과 다 자란 솔잎
송순과 다 자란 솔잎김옥자
우리 시골집에는 해마다 6월이면 하는 행사가 있다. 매실차와 매실주를 담그는 일과 솔잎차와 송순주, 송근주를 담그는 일이다. 매실차는 보편화 되어 있는 줄 알고 있지만 솔잎차와 송순주, 송근주는 우리 시아버님만의 자칭 '특허'다. 오늘은 솔잎차와 송순주 담그는 비법을 아버님께 사사(?) 받았다.


비법이라고 하니 조금 거창해 보이지만, 솔잎을 선별하는 눈을 말하는 것 같다. 우선 순수 국산 소나무를 골라서 5~6월 초에 나오는 새 순을 채취를 해야 한다. 새 순은 한눈에 금방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연한 연두색을 띠고 있고 길이가 성인 솔잎의 절반도 안 된다.

한 나무에서만 많이 따면 소나무의 노화가 빨리 오므로 여러 나무에서 조금씩 따야 하기 때문에 온 식구가 한나절을 산을 헤집고 다녀도 작은 바구니로 한 바구니 겨우 딸까 말까 하다. 어쩌다 욕심이 나서 조금 더 따려고 하면 아버님께서는 "귀해야 약이 되제" 하시며 한 해 먹을 분량 만큼만 따라고 이르신다.

솔잎을 딸 때 주의할 점이 있다면 어린 소나무는 건드리지 말아야 하며, 노송도 좋지 않다고 하니 우선 나무를 볼 줄 알아야 한다. 또 한 가지는, 멧돼지들에 의한 농작물 피해 때문에 요즘은 멧돼지 사냥을 허락한 곳이 있다고 하니 산에 오를 때는 꼭 밝은 색의 옷을 입고, 혼자 행동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온 가족이 함께 산에 오르면 소풍가는 기분이었는데 올해 아버님께서는 연세가 높으셔서 빠지기로 하셨다. 노닥거리다가 늦어질 때를 대비해서 김밥을 쌌다. 계란도 삶고, 작년에 담은 솔잎차를 한 병 준비해서 배낭에 넣고 남편과 함께 나서는데 아버님께서 다시 한 번 주의를 주신다.

"어린 소나무는 건딜지 말아야 혀."


아버님의 당부를 앞세워 서둘러 출발했다. 산 속은 정말 좋다. 언제나 푸근하고 머리가 맑아진다. 향긋한 솔 내음은 또 어떻고! 처음 보는 온갖 야생화가 다소곳이 피어 있고 산나리는 화사한 미소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새참을 먹던 멧새가 우리의 발자국 소리에 놀랐는지 푸드득 날아오른다.

"아유 미안해라. 야, 거기 있다고 말을 하지."
"당신이 먼저 전화를 하지 그랬어."


남편과 나는 썰렁한 유머를 주고받으며 산의 푸르름에 취하고 향기에 취했다.

 정자에서 솔잎 다듬는 맛도 괜찮네
정자에서 솔잎 다듬는 맛도 괜찮네김옥자
점심 때가 훨씬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깨끗이 다듬어서 흐르는 물에 솔잎을 씻어 야외용 나무 테이블에 널어서 말렸다. 흔히 쓰는 비닐로 된 야외용 돗자리는 강한 햇빛에 물기 있는 식물을 말리게 되면 어쩐지 그곳에서 몸에 해로운 물질이 나올 것만 같아 될 수 있는 대로 피하는 편이다. 요즘은 햇빛이 좋아서 한나절만 말리면 물기가 없어진다.

이제부터 담그는 방법은 솔잎차는 매실차 담그는 방법대로 하고, 송순주는 매실주 담그는 방법대로 하면 된다. 건더기를 건지는 시기는 두 가지 다 3개월만에 건져서 3개월 정도 숙성을 시킨다. 너무 오래 담궈 두면 송진이 나와서 좋지 않다고 한다. 재미있어 하며 차를 담그는 나를 보시며 아버님께서는,

"니가 귀찮아하지 않아 참 다행이다. 니하고 애비는 책을 많이 보는 사람들이라 솔잎차는 떨어뜨리지 말고 먹으먼 좋제. 옛날부텀 이유 없이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프거나 책을 많이 보는 사람들이 마시면 머리가 맑아지며, 향긋한 솔 향으로 인해 마음이 차분해지고 기분도 좋아진다고들 허더라, 또 눈이 침침할 때 마셔도 좋다잖냐?"

"아버님, 송근주는 안 담그나요?"
"이, 그건 지금은 못허제, 시기가 늦어부럿시야. 송근주는 사오월에 담아야제."
"그럼 올해는 송근주 먹을 수 없나요? 조금밖에 없던데."
"올해도 대접할 손님이 많은겨? 올해는 내가 다리에 힘이 읍어서 못담궜씨야. 내년부텀은 애비가 햐."

 세식구가 솔잎을 가운데 두고 오손도손
세식구가 솔잎을 가운데 두고 오손도손김옥자
소나무 뿌리로 담그는 우리 집 송근주는 내가 다 퍼서 서울로 나른다. 접대할 손님이나 귀한 손님을 모실 때는 밖에서 식사를 하더라도 꼭 한 병씩 가지고 간다. 우리 집 송근주를 마셔 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전날 밤에 취하도록 마셔도 아침이면 머리도 아프지 않고 속도 아프지 않으며 술 마신 것 같지도 않다고 한다.

나와 가까이 지내시는 분들은 한 번씩 다 드셔 봐서 그 맛에 반한 나머지 시골집으로 송근주 담그는 방법을 배우러 온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몇 번인가 나도 배우려고 시도해 봤지만 좀처럼 잘 안 된다. 남편이 해 주면 좋으련만, 남편은 아버님처럼 나의 청을 무조건 들어 주지는 않는다.

내년 이맘때도 아버님이 건강하셔서 송근주 담그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고, 내후년에는 내가 담근 송근주를 반주로 드셨으면 참 좋겠다.
#송근주 #시아버지 #솔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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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시원한 청량제, 겨울에는 따뜻한 화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쓴 책 : 김경내 산문집<덧칠하지 말자> 김경내 동시집<난리 날 만하더라고> 김경내 단편 동화집<별이 된 까치밥> e-mail : ok_0926@daum.net 글을 써야 숨을 쉬는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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