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고향의 학교는 무사한가요?

흉물스럽게 방치된 폐교, 미래 우리 농촌의 모습은 아닐는지요

등록 2007.06.25 08:26수정 2007.06.26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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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폐교의 상처를 담은 듯 밑둥만 흉물스럽게 남은 미루나무.

폐교의 상처를 담은 듯 밑둥만 흉물스럽게 남은 미루나무. ⓒ 서부원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던 일요일(24일) 오후, 보성에서 순천 가는 4차선 2번 국도 변에 녹슨 철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버려져 있는 폐교를 우연히 찾았습니다. 잡풀 무성한 운동장에 들어서니 먹구름 잔뜩 낀 하늘 탓인지, 아니면 허물어질 듯한 낡은 건물 탓인지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교문에 달려 있었을 학교 문패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하얀 몸에 거뭇한 물때가 가득한 '책 읽는 소녀상'이 아주 오랜만에 손님을 만난 듯 웃어주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꽤 번듯한 학교였던지 널찍한 운동장에 2층짜리 본관동에다 서너 개의 별관이 세워져 있습니다.

a 문패가 떨어져나간 교문의 모습. '새롭게'라는 말이 무척 생뚱맞게 느껴진다.

문패가 떨어져나간 교문의 모습. '새롭게'라는 말이 무척 생뚱맞게 느껴진다. ⓒ 서부원


a 운동장 가장자리로 난 산책길. 의도한 바는 아닐 테지만 잡풀이 우거져 무척 운치가 있다.

운동장 가장자리로 난 산책길. 의도한 바는 아닐 테지만 잡풀이 우거져 무척 운치가 있다. ⓒ 서부원

교문에서 학교 건물로 가자면 어른 무릎 높이만큼 웃자란 잡풀을 헤치고 물이 고여 질퍽거리는 운동장을 가로질러야만 합니다. 바지를 걷어 올리려니 오른편으로 예전에 벤치가 놓였을 법한 소담한 산책로가 보입니다. 풀밭 사이로 난 운치 있는 그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말라 죽은 미루나무 한 그루가 밑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모르긴 해도 무더운 여름날 깊은 그늘을 만들어준 아이들의 가장 친한 친구였고, 그들에게 아련한 추억으로 남았을 학교의 터줏대감일 터인데, 문 닫힌 학교와 함께 수명을 다한 모양입니다.

아이들 키 높이의 학교 울타리는 있으되 비를 머금어 초록이 짙은 이름 모를 풀과 나무에 묻혀 이미 숲이 돼가고 있습니다. 울타리가 끝나는 맨 끝에 숲에 덮인 비교적 새뜻한 기념물 하나가 서 있습니다. 이 학교의 연혁을 새겨놓은 비석입니다.

a 이것이 아니었다면 이 학교의 이름조차 모를 뻔 했다. 벌교서초등학교 연혁을 새겨놓은 비석.

이것이 아니었다면 이 학교의 이름조차 모를 뻔 했다. 벌교서초등학교 연혁을 새겨놓은 비석. ⓒ 서부원


a 먼지 수북히 쌓인 음침한 복도. 새뜻한 창문의 섀시가 외려 낯설다.

먼지 수북히 쌓인 음침한 복도. 새뜻한 창문의 섀시가 외려 낯설다. ⓒ 서부원

이것이 아니었다면 문패를 잃어버린 이 학교의 이름을 몰랐을 겁니다. 벌교 서초등학교. 이름을 보아하니 여느 초등학교에 딸린 분교장도 아니고 의외로(?) '멀쩡한' 학교였던 겁니다. 하긴 교문 앞에 이곳에 다녔던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설치된 것으로 보이는 번듯한 육교가 있는데, 그러고 보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힘깨나 쓰던 학교였음에 틀림없습니다.


특별실로 쓰였을 별관은 인근 주민들의 볏짚을 말리는 공간으로 탈바꿈했고, 건물 이곳저곳은 녹물이 흘러내려 갈색 얼룩이 가득합니다. 굳게 잠긴 자물쇠는 열쇠가 있어도 열릴 것 같지 않을 만큼 녹이 슬었고, 깨진 유리창 안으로 들여다 보이는 교실과 복도에는 먼지가 수북합니다.

나무로 얼키설키 만든 낡은 의자와 초록색 페인트를 짙게 바른 책상은 교실 바닥 한 구석에 널브러져 있고, 누군가 남겨두고 떠난 주인 잃은 실내화 한 켤레가 나뒹굴고 있습니다. 청소한 흔적은 고사하고 수북한 먼지 위로 그 흔한 발자국 하나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폐교된 후 누구 하나 둘러보지 않은 듯합니다.


a 나무로 얼키설키 만든 '꼬마' 의자가 빈 교실에 널브러져 있다.

나무로 얼키설키 만든 '꼬마' 의자가 빈 교실에 널브러져 있다. ⓒ 서부원


a 웬만한 초등학교에는 다 있는 이승복 어린이 상. 아래쪽에는 '공산당의 총부리 앞에 의연하게 서 있는 모습'을 부조로 새겨뒀다.

웬만한 초등학교에는 다 있는 이승복 어린이 상. 아래쪽에는 '공산당의 총부리 앞에 의연하게 서 있는 모습'을 부조로 새겨뒀다. ⓒ 서부원

건물 벽으로 난 계단을 내려오려니 가랑비 섞인 서늘한 바람이 휘이익 소리를 내며 불어옵니다. 갑자기 소름이 끼칩니다. 아닌 게 아니라 밤이 아닌 어스름한 오후에 찾아온다고 해도 무서워서 감히 한 발자국도 못 디딜 만큼 스산하고 음침한 곳으로 방치되고 있어 말 그대로 '폐교'임을 실감합니다.

본관동 앞에는 여느 초등학교처럼 '상징물'이 줄지어 늘어서 있습니다. 이순신, 세종대왕, 이승복 상이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그 옆으로 사자, 캥거루, 곰, 호랑이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아이들 교육과 미관상 바람직하다며 시멘트나 녹슬지 않는 청동 같은 재료로 학교 곳곳에 위인들의 동상이나 동물 상 따위를 세우는 것이 '유행'이었던 때가 있었더랬습니다.

어릴 땐 미처 몰랐지만, 철들어 어른이 돼 이런 것들을 만지듯 살펴보노라니 유치하게만 느껴져 괜한 헛웃음이 나옵니다. 하긴 어느 초등학교에 세워진 이승복 동상 아래에는 '공산당의 총부리에도 의연하게 맞서는 모습'을 부조로 새겨놓고 있는데, 사실 여부를 떠나 초등학생들에게 맹목적인 적개심을 유도할 수도 있어 무척 조심스러워야 하는 부분임에도 옛날에는 왜 그리 용감무쌍(?)했는지.

a 녹슬어 고정된 채 매달려있는 풍향계의 모습. 이조차 학교와 운명을 같이 한 모양이다.

녹슬어 고정된 채 매달려있는 풍향계의 모습. 이조차 학교와 운명을 같이 한 모양이다. ⓒ 서부원

온도계와 습도계를 떼어낸 빈 백엽상도, 녹이 슬어 움직이지 않는 낡은 풍향계도 학교와 운명을 같이 한 채 운동장 한 구석에 외롭게 서 있습니다. 학교를 한 바퀴 돌다 앉아 쉴 겸 멈춘 곳에 '애국조회' 때 쓰였을 구령대가 놓여 있습니다.

녹슬어 다리가 부러진 탓인지 원래 자리를 잃고 한 구석에 치워진 신세입니다. 오래되고 낡은, 그래서 쓰레기처럼 방치된 이 모든 것들이 학교의 현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학교 울타리 너머와 교문 앞으로 난 도로 건너편에는 족히 몇 십 가구는 돼 보이는 번듯한 마을이 자리하고 있지만, 이 학교는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배움을 위해 도회지로 나가려는 아이들을 붙잡을 수도, 도시로 간 젊은 부부들을 막무가내로 내려와 살라고 통사정할 수도 없었을 겁니다.

a 제 자리에서 쫓겨나 운동장 한쪽에 치워져 있는 녹슨 구령대의 모습.

제 자리에서 쫓겨나 운동장 한쪽에 치워져 있는 녹슨 구령대의 모습. ⓒ 서부원

그래도 남도 땅 벌교라면 한때 사람과 돈으로 흥청거렸던, 주변의 순천에 버금가는 도회지였습니다. 그때의 북적였던 사람과 돈은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이제는 초등학교 하나 건사하지 못할 정도로 퇴락해가는 고장이 되었습니다. 이는 비단 이곳만의 문제는 아닐 겁니다.

주인이 떠난 빈 집이 얼마 못 가 허물어지듯 그 무슨 이유에서건 사람이 떠나버린 고장은 특유의 지방색을 잃고 끝내 사라지고 맙니다. 일단 그렇게 되면 파편화된 도시적 생활양식의 대안으로 받아들여지는 건실한 마을 공동체를 복원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겁니다.

인구가 격감하고 그로 인해 줄줄이 학교가 문을 닫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폐교의 활용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 중이라고 합니다. 지역에 따라서 리모델링을 통해 청소년 수련시설이나 특산물 전시관을 꾸미기도 하고, 고장이 배출한 유명인사의 기념관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경제적인 가치 창출에만 매달릴 뿐, 정작 '블랙홀' 도시에 맞서 '사람 사는' 고장으로 남기려는 본질적인 노력은 이미 접은 듯 보입니다. 모텔과 같은 숙박 시설과 식당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도로변마다 진한 갈색의 관광지 표지판 또한 적지 않지만, 마을을 지속시킬 수 있는 핵심 공간인 학교나 병원은 급격하게 줄어드는 현실이 이를 방증합니다.

교문을 나서며 잡풀로 뒤덮인 운동장과 성한 유리창 하나 없는 흉물스러운 건물을 먼발치로 다시 힐끗 보았습니다. FTA다 뭐다 해서 더할 수 없이 심란해진 우리 농촌의 모습이 그대로 겹쳐졌습니다. 하늘을 보니 금방이라도 폭우가 쏟아질 듯 먹구름이 가득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폐교 #전남 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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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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