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겠지요"

[인터뷰] 김진영 <성 바오로의 집> 원장

등록 2007.07.01 11:35수정 2007.07.0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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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김진영 <성바오로의 집> 원장

김진영 <성바오로의 집> 원장 ⓒ 유혜준

집에 들어서자마자 어르신들 방에 들어가 무릎을 맞대고 앉아 손을 잡고 안부를 여쭙는 김진영 원장. 영락없이 퇴근 후 어머니 방에 들러 문안인사부터 드리는 큰아들의 모습이다. 인터뷰는 <성 바오로의 집> 어르신들이 모여서 진지를 잡수시는 거실 식탁에서 진행되었다.

- 이미 세워진 곳도 그렇고 새로 문을 연 '시립서부노인전문요양센터'도 규모가 300병상이다. 대규모 시설과 달리 일반 가정집에서 몇몇 분이 모여 사는 것에는 어떤 장점이 있을까?
"가족적인 분위기일 것이다. 그동안 살아온 집 같아서 낯설지 않고, 나도 '어머니'라고 부르는데, 물론 인원이 많다고 해서 못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좀 더 친근감 있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 어르신들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시나?
"아침에 일어나셔서 기도하시고, 아침식사하시고, 텔레비전도 보시고, 그렇게 소일을 한다. 우리 어머니들 인원이 적어서 프로그램을 하기는 조금 어렵다. 한 열 분 정도만 되어도 노래나 종이접기 같은 프로그램도 할 수 있을텐데 아직은 그렇지 못하다. 앞으로 물리치료를 위한 시설 등을 보완할 계획이다. 그러면 좀 나아지지 않겠는가."

- 밤이고 낮이고 24시간 어르신들과 함께 생활하는 사회복지사가 한 명 상주하고 있다. 위급한 일은 없었나?
"위급하면 내가 즉시 달려온다. 지금까지 이 집에서 두 분이 돌아가셨다. 옛날에 시골에서 살았는데 형들이 세 명이나 있었고 막내여서 어른 돌아가시는 것도 본 적이 없고 해서 굉장히 걱정을 많이 했는데, 노환인 경우 갑자기 돌아가시는 건 아니고 병원에 한 달 정도 계시다 가셨다. 가까운 노인병원에 입원시키고 사회복지사 선생님이랑 수시로 찾아가서 뵈었다."

- 노인병원은 비싼 것으로 소문이 나있는데, 비용은 어떻게 했나?
"근처에 노인전문병원이 하나 있다. 월 200만 원정도 하는 곳인데, 병원장이 어려운 어르신들 몇 분이라도 그냥 돌봐드리고 싶은 마음을 평소에 가지고 있었다면서 우리 어르신들을 거의 무료로 계시도록 해주었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해준다고 해서 마음 든든하다(웃음)."

- 가까운 가족은 아니더라도 친척이 있는 분들은 자주 오시나?
"지나치게 자주 방문을 하게 되면 아무 연고도 없는 분들이 소외감을 느낀다. 여기도 서로가 서로를 헤아리고 배려해야 하는 공동체다. 그래서 그런 경우는 방문을 자제해 달라고 부탁한다."

- 어르신들이 공동생활을 하면 싸움들을 많이 하시던데, 어떤가?
"왜 안 싸우시겠는가. 말씀들은 안 하셔도 눈치 보면 언짢은 일이 있었는지 다 알기 때문에, 그럴 경우는 조금 더 자주 와본다. 적어도 내가 와있으면 안 그러시니까."

"노인시설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조언해줄 수 있어"


- 노인복지 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다들 자그마한 시설을 만들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르신들 모시고 살다가 본인이 나이 들면 그곳에서 후배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고, 그리고 떠날 때는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누구든지 이런 시설 만든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그 방법 알려주겠다. 인가 받는 과정도 개인지도 해주고.(웃음) 정보는 공유해야지 혼자 가지고 있으면 뭐하나. 언제든지 돕겠다."

- 부인은 여기에 자주 오는가?
"아주 가끔….(웃음) 내가 오라 마라 하기는 어렵다. 스스로 오면 모를까(웃음)."


a 유경 기자와 김진영 원장

유경 기자와 김진영 원장 ⓒ 유혜준

- 공무원으로 정년퇴직을 했으니 연금으로 생활 걱정은 없을 것이고, 내가 아내라면 어려운 곳에 정기적으로 후원하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가서 가끔 봉사활동 하고, 이런 정도만 하면 딱 좋을 것 같다. 굳이 나서서 직접 어르신들 위한 집을 운영하고 그분들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것이 무척 부담스럽게 느껴질 것 같다.
"맞다.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 유경씨가 이야기한 그대로다. 그래도 내가 워낙 고집불통이라서 우리 집사람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웃음). 내 옆에 있는 가족들도 힘들고, 여러 사람 힘들 것이다. 내가 인정사정없이 앞으로만 가니까. 따라 오려면 따라오고 말라면 마라니까. 그래도 재미있게 산다. 내가 거짓말도 잘하고 그런다. 무지개 같은 거짓말(웃음)."

- 24시간 상주하는 사회복지사는 근무조건으로 본다면 너무 지나친 것 아닌가?
"맞다. 할머니들의 복지를 위해서 희생하는 거다. 그러니까 내가 악덕 사업주다. 일주일에 한 번 이곳을 떠나 잠깐 쉬고 온다. 공간을 조금 넓히고 어르신들을 조금 더 모시면서 직원을 한 명이라도 더 뽑아서 교대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목표 중의 하나다. 늘 미안하다."

- 시설을 조금 확장하겠다고 했는데, 어느 정도 규모까지 만들겠다는 계획이 있는가?
"내가 경제학 전공한 사람이다. 내용은 사회복지지만 이것도 역시 경영을 잘해야 되지 않겠는가. 부도나 버리면 안 되니까 어떻게든 수지를 맞춰야한다. 수지를 맞춘다는 것은 좌우간 수입 한도 내에서 쓰는 것, 그 다음에 수입을 늘리는 것. 그래야 수입이 맞춰진다. 절대로 마이너스 되면 안 되고, 자본잠식이 있어도 안 되고, 자본의 축적이 있어야 된다. 그러려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피나는 노력을 계속해서 내 주머니는 얇아져도 '바오로의 집' 자본은 자꾸 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 방법으로 본사와 지사를 만드는 것을 생각해 본다. 본사는 서울에 두고, 기반을 튼튼히 해서 지사를 어떻게 만들고 운영할 것이냐, 고민하고 있다. 사실 젊은 사람들은 실패해도 다시 또 할 수 있지만 나이 먹은 사람은 실패하면 재기하기 어렵다. 그것까지 감안을 해서 어떻게 해서든 늦어지더라도 100퍼센트 완벽하게 하려고 한다."

-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했고, 그에 앞서 노인복지 시설을 만들고 사회복지사가 되었다. 전문적인 일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 두 가지 모두를 잘 해내고 있는, 상당히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 부럽다.
"내가 먹고 살 것이 있는데 그 이상을 쌓아놓으면 뭐하나, 몇 푼 더 번다고 그냥 쌓아놓고 있으면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돈이든 무엇이든 정의롭지 않으면 금세 없어지는 것이다. 시설도 정의롭게 운영되지 않으면 바람에 흩날리는 모래와 같지 않겠는가. 언제든지 정의를 생각해야 된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조금 잘 하는 게 있고, 가진 게 있다면 나눠서 살아야지, 다 갖고 있으면 뭐 하나."

- 10년 후, 70세에는 뭐 하고 있을 것 같은가?
"70세면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거 같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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