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이 우리에게 남긴 것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등록 2007.06.27 17:13수정 2007.06.27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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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60대 민원인 한명이 서류뭉치를 한 움큼 들고 사무실로 들어와서 상담을 요청했다. 파월 청룡부대(해병대) 소속 장병이었음을 밝힌 민원인은 불안한지 사무실을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손을 가볍게 떨기도 했다. 나는 민원인을 의자에 앉게 한 후 편안한 마음으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보라고 했다. 약 1시간 동안 계속된 민원인의 하소연은 다음과 같았다.

월남전 당시 한국에서 파견된 군인은 약 30만 명이었고 그중에 전투병은 약 10만 명 정도였는데 민원인의 경우는 최정예 전투병으로 차출되어 베트콩(민족 해방군)에 대한 증오심을 불러일으키는 교육을 반복하여 받은 후 최전선에 투입되었다고 한다.

민원인이 월남에 파병 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베트콩 은둔지역을 수색하던 중에 외딴 민가에 한 가족(할아버지, 할머니, 손자, 손녀)4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이들을 모두 체포하여 상의를 벗긴 후 동서남북으로 4~5미터 간격으로 서있는 나무에 한 명씩 차례로 묶어 둔 채 분대장이 민원인한테 한 명을 칼로 찔러 죽이라고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 말이 농담인 줄 알고 실행에 옮기질 않았는데 분대장이 군기가 빠졌다며 자신이 직접 그 야만적인 행위를 저질렀다고 한다. 그 와중에 네 그루의 나무에 각각 묶여있던 포로 가족들은 월남말로 뭔가 서로 주고받으며 울기도 하고 절규도 하는데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던 장면들이 아직도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 뿐만 아니라 하루는 소대장이 대형지뢰를 잘 못 밟아 온몸이 찢겨 날아가고, 목 잘린 머리가 땅바닥에 뒹구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민원인이 속한 소대원들은 그날 인근의 마을을 습격하여 민가를 불 지르고 아무 영문도 모르는 마을 주민들로 하여금 구덩이를 파게 한 후 산채로 구덩이에 몇 명씩 들어가게 한 후 수류탄을 까 넣어 폭파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했다.

한국군 1명이 죽으면 그 일대 마을을 쑥밭으로 만들고 마을 양민들을 몰살하는 게 당시의 철칙이었으니, 베트콩을 죽인 숫자보다는 나약한 양민을 죽인 수가 몇 배는 더 될 거라고 했다. 전투능력이 있는 젊은이들은 모두 베트콩에 입대 하고, 병약한 자들과 어린애들만 마을을 지키고 있었으니 이들 대부분은 저항능력이 없는 존재들이었다고 한다.

월남전에 참전한 10만여 명의 전투병 중 약 5000여명이나 사망했으니 피살된 양민의 수는 어느 정도 될 건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당시 청룡부대 전투병들은 미군과 베트남인들로부터 '귀신 잡는 해병'으로 불리며 상당히 잔인하며 혹독한 전술을 쓴 걸로 정평이 나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실제 우리 해병 1명이 베트콩에게 포로로 잡혔을 때 그 해병을 죽이면 자기네 마을이 불바다가 되고 모두 몰살되는 운명에 처하게 되니 그 해병을 놓아주라는 마을노인의 요청에 의해 살아나온 한국군인이 있는 것만 봐도 당시 한국 해병이 그들에게 얼마나 두려운 존재였는지 짐작이 간다.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당시 호치민은 한국군과는 접전을 하지 말고 가급적 교전을 피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민원인의 경우 제대한 후 몇 년간은 아무 후유증 없이 지냈으나 몇 년이 지나게 되자 차츰 자신이 죽인 양민들의 모습이 자신의 몸을 옥죄는 꿈을 꾸곤 잠에서 깨곤 했는데 이제는 꿈에서가 아니고 혼자 있기만 하면 살려달라며 목숨을 애원하던 그 모습들이 자주 떠올라 무서워 견딜 수가 없다고 했다.


우울증과 불면증 등으로 신경정신과에서 약을 받아먹은 지도 어언 20년도 넘었건만 병세는 호전되지 않고 세월이 갈수록 더욱 악화되고 있고, 이렇게 누군가와 이야기를 할 때는 좀 덜한 것 같지만 혼자 있을 때는 너무 괴로워 견딜 수가 없다고 했다.

전쟁터에서 저지른 양민학살의 죄책감으로 인한 악몽과 불안감 때문에 정상생활을 할 수 없다는 진술을 종합해보건대 민원인의 경우 전형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보훈청에 국가 유공자 등록신청을 했으나 군대 내에서의 병상일지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처분을 받고, 너무 억울하여 행정소송을 의뢰하고자 사무실에 찾아왔다는 민원인에게 정신질환 장해등급이 생각만큼 안나올 뿐만 아니라 현재의 정신질환이 월남전 참전에 기인한다는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는 한 법률적으로 승소하기가 힘들고, 정치권에서 정책적인 배려를 해주지 않는 한 구제방법은 없을 거라고 답변해줄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팔다리가 잘려나갔으면 이보다 덜 고통스럽고 국가로부터 충분한 보상도 받을 수 있을 텐데 너무 억울하다는 취지의 민원인의 하소연을 듣고 있노라니, 내가 이 상처 입은 영혼을 위하여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일종의 무력감과 좌절감을 느끼며 내가 직업을 잘 못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빛바랜 월남전 참전용사앨범과 동료들의 사진을 소중히 끌어안고 한 장 한 장 넘기며 그 때의 일들을 힘겹게 얘기하는 민원인의 말소리를 귓전으로 들으며, 포승줄에 묶인 채 겁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는 양민들의 표정과 사살된 베트남인들의 사진을 바라보면서 이런 살육을 저지른 따이한(월남전에 참전한 한국군)이 나의 형제들이요, 한 때 일제의 핍박을 받으면서 그렇게도 자유와 평화를 갈망하던 나의 선조들의 후손이었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자 몹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삼천만의 자랑인 대한 해병대 얼룩무늬 번쩍이며 정글을 간다.
월남의 하늘아래 메아리치던 귀신 잡던 그 기백 총칼에 담고
붉은 무리 무찔러 자유 지키려 삼군에 앞장서서 청룡은 간다"

위의 노래는 파월 청룡부대의 군가이다. 이런 전투적인 노래들을 유행가처럼 신나듯이 불러대던 어릴 때의 나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붉은 무리'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들에 대한 적개심을 야기하는 교육을 받고 명령에 의해 전쟁터에 뛰어든 채 아무 보상도 받지 못하고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파월장병들도 피해자요, 따이한(대한민국 군인)이 저지른 살육에 부모형제를 잃은 월남인들도 피해자가 아닐 수 없다.

월남전은 이념의 가면을 쓴 채 세계 평화를 위한다는 이상적인 명분을 내세웠지만 모두에게 상처만 남긴 채 끝이 났다. 지옥 같은 경험을 한 세월의 흐름을 고스란히 담은 그의 이마에 깊이 팬 주름살은 짐승처럼 광란의 유혈잔치를 벌인 지난날에 대한 괴로움을 보여주는 궤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개인의 삶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긴 전쟁후유증으로 깊이 신음하고 있는 민원인에게 전쟁 영웅담이나 무공훈장은 하나의 사치에 불과할 것이다.

반공을 국시로 하는 이 땅에서 자란 필자는 어릴 때, 베트콩(월남해방군)의 지도자 호지명(호치민)을 괴뢰괴수 중에서도 극악무도한 괴물정도로 상상하며 살았었다. 그러나 내가 좀 더 장성하면서 바라본 그의 모습은 괴뢰괴수도 아니었고 괴물도 아니었다.

평생 독신으로 청빈한 삶을 살면서 민족의 단결을 부르짖으며 월남의 통일을 부르짖던 그는 변변한 전투기 몇 대 없던 베트콩이, 물 붓듯이 쏟아 붓는 미군의 포탄 세례를 이겨내고 월남의 통일을 일궈낼 수 있도록 사상적 토양을 마련해준 사상가였던 것이다.

그가 작고한지 38년이 되었고, 월남전이 끝난 지 32년이 지났다. 그는 오늘날 베트남인들뿐만 아니라 주변 여러 국가의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인물로 회자되고 있으니, 우리가 어릴 때 받은 월남전에 관한 교육이야말로 얼굴도 모르는 가상의 적을 정해놓고 증오심만 불러일으키던 맹목적인 반공교육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국민들이 누리는 자유와 경제적인 삶의 질에 관한한 공산주의보다는 자유시장경제주의의 우월적 지위가 입증된 작금에 이르러 내가 공산주의 경제체제나 공산주의자인 호치민을 찬양하기 위하여 이 글을 쓰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2차대전 후 발생한 동아시아 30년 전쟁과 아직도 종족간의 살육이 그치지 않고 있는 아프리카 내전의 원인제공자는 이해관계에 따라 이익을 극대화하려던 강대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그래서 힘이 곧 정의라는 논리만이 판치는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에 분노가 치밀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후 미군 전사자만 해도 이미 3000명이 넘어섰다고 한다. 미군 3000명이 죽을 때 이라크 군은 몇 명이 사망했으며 또 양민은 얼마나 많이 희생되었겠는가. 왜 이렇게도 우둔한 피의 역사는 반복하여 계속되고 있는가. 세계질서의 창조자를 자청하고 나선 경찰국가 미국의 주도로 자행되는 잔인한 피의 전쟁은 언제 종지부를 찍을 것인가?

필자가 2000년 폴란드 바르샤바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방문했을 때 누군가가 수용소 담벼락에 적어놓은 문구가 문득 생각난다. "피의 역사를 망각하는 자, 반복되는 피의 역사를 통하여 고통을 당하리라."
#베트남 전쟁 #호치민 #국가유공자 등록 #반공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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