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익은 감자, 한 끼 식사로 그만이네!

밤 늦게 돌아오는 고3 아들의 야식, 보라색 감자

등록 2007.06.29 21:00수정 2007.07.11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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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감자도 아니고 자주 감자도 아니고 붉은 보라색 감자입니다. 꽃 색깔은 무슨 색깔이었을까요? ⓒ 이승숙

한 때 나는 건강 염려증 환자였다. 친정 엄마가 수를 오래 누리시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뜨셔서 그런지 나는 늘 건강에 조바심을 내며 살았다. 그 시절 내 인생 최대 목표는 어떡하든 오래 사는 거였다. 내 아이들 곁에 오래오래 있고 싶은 게 나의 가장 큰 소망이었다. 그 때 내 건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강화로 이사를 한 것도 내 건강 때문이었다. 남편은 장모님이 돌아가신 뒤 장인어른이 고생하시는 걸 보고는 마누라가 오래 사는 게 바로 자신을 위한 길임을 간파했나 보다. 뭐든 몸에 좋은 거는 다 마누라 몫으로 돌렸고 마누라의 건강을 위해서 과감하게 시골행을 택했다.

강화로 이사를 와서 보니 강화 여인들은 참 강했다. 강화의 여인네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당당하고 또 절대 기가 죽는 법이 없었다. 보통의 경우 자기보다 사회적인 위치가 높은 사람에게는 약간 숙이고 들어가게 마련인데 강화의 여인들은 어떻게 보면 얼굴이 두껍다 싶을 정도로 당당했다. 그리고 금전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철저했다. 한 푼 돈도 허수히 쓰는 법이 없었고 또 돈벌이라면 작은 거라도 개의치 않았다.

마니산 기 받으면 사람도 농산물도 다 건강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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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을 벗겼더니 속살이 노랗네요. 맛은 또 어떨까요? ⓒ 이승숙

강화 여인들이 이렇게 자주적이고 자립심이 강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본래 섬 여인네들은 성정이 강하다고 한다. 남자들은 바다에서 하는 일만 하면 그만인 반면 여자들은 안팎의 일을 다 처리해야만 했다.

만약 남편이 바다에서 돌아오지 않게 되면 여인들이 가정을 건사하고 꾸려 나가야 했다. 그러자니 자연 강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강화도는 역사 이래로 크고 작은 전란을 많이 겪은 곳이다 보니 여인들이 강해져야만 살아남을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땅 자체의 힘이다. 강화는 음기가 아주 센 곳이다. 강화의 산들은 그 어느 산이고 할 것 없이 여인네들에겐 좋은 기운을 주는 산이라 한다. 이렇게 내외적의 요인들이 오랜 세월동안 이어져 내려오다보니 강화의 여인들은 일명 '강화 뻔뻔녀'가 됐다.

강화는 서울에 인접해있는 곳이라서 주말이면 관광객들이 많이 온다. 관광객들이 많이 다니는 길가에는 어디건 할 것 없이 농산물을 파는 아줌마들이 진을 친다. 그이들은 농사지은 농작물들을 가지고 나와서 판다. 소비자와 직접 거래하니 금도 실하게 받는다. 안 그래도 경제관념이 철저한 여인들이 장사를 해서 돈을 버니 그 재미에 눈이 더 반들거리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감자 철이기 때문에 길가에는 감자를 내놓고 파는 사람들이 많다. 박스 채로 팔기도 하지만 작은 소쿠리에 담아서 팔기도 한다. 올해는 감자 시세가 좋지 않다고 한다. 20kg 한 박스에 현지 시세로 15000 원도 안 한다고.

생명력 강한 강화 여인들, 한 푼 돈에도 천 리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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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한 숟갈에 소금 약간 넣고 팔팔 끓입니다. 물론 물은 넉넉하게 잡아야지요. ⓒ 이승숙

며칠 전에 남편이 퇴근하면서 감자를 사왔다. 박스를 열고 보니 붉은 보라색 감자였다.

"웬 감자야?"
"응 , 보라 감자는 어떤 맛일까 싶어서 사왔지."
"얼마 줬는데?"
"10kg에 만 원 줬어."
"뭐 만 원? 20kg에 1만 5000원 밖에 안 하는데 무슨 만 원 씩이나 주고 샀어? 당신 바가지 썼네."
"좀 더 얹어주던데? 그러면 바가지 아니잖아."

옛부터 강화 여인들은 한 푼 이문을 위해서 천 리 길도 가는 사람이라는 말이 전해 내려올 정도로 억척스럽다. 알이 굵지 않아서 상품가치가 좀 떨어지는 감잔데도 받을 거 다 받고 파는 상술이라니. 그 그악스러움에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어쨌든 그 날부터 우리집 밥상엔 감자반찬이 빠지지 않고 올라온다. 채를 썰어서 볶아먹기도 하고 강판에 갈아서 전을 부쳐 먹기도 한다. 또 밥 위에 얹어서 쪄먹기도 하고 학교에서 늦게 돌아오는 아들 아이의 야식으로 삶아 주기도 한다.

설탕 넣고 익힌 감자... "달달하고 맛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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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삭파삭하게 잘 익었네요. 감자 누룽지 떼어먹는 맛도 별미지요. ⓒ 이승숙

어젯밤(28일)에도 아들아이를 위해서 감자를 쪘다. 남편은 야식 먹으면 살찐다며 해주지 말라고 그러지만 나는 그 말을 늘 묵살하고 밤참을 먹이려고 애를 쓴다. 살이 찔 땐 찌더라도 우선은 아들 애가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다.

붉은 자주 감자는 흰 감자와 조금 달랐다. 겉껍질은 붉은 빛을 띤 보라색인데 속은 노랗다. 그리고 채를 썰어서 볶으면 좀 덜 퍼석거리는 거 같다. 남편 말로는 쫀득해서 옛날 감자 맛이 난다 했다.

곱게 껍질을 벗긴 감자를 냄비에 담고 감자가 다 잠길 만큼 물을 넉넉하게 잡아주었다. 그리고 설탕을 밥숟가락으로 한 숟갈 푹 떠서 넣어준다. 설탕만 넣으면 달기만 하고 맛이 없으므로 적당량의 소금을 조금 넣어준다. 그러면 감자에 간이 배어서 단맛도 더 난다.

감자를 삶을 때 처음에는 가스 불을 센 불로 해서 물이 팔팔 끓을 때까지 둔다. 한참 복닥복닥 물이 끓어 오르면 불을 중불로 줄여준다. 그러다가 물이 졸아들면 불을 약하게 해준다. 설탕물이 바닥에 자작자작하게 남으면 냄비 손잡이를 잡고 양옆으로 몇 번 세게 흔들어 준다. 그러면 감자끼리 부딪혀서 분이 더 많이 난다. 분이 많은 감자를 좋아한다면 냄비를 흔들어주고 그렇지 않다면 그냥 가만히 두면 된다.

감자 먹어 살찌더라도 건강하기만 해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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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거의 다 졸았을 때 남비를 살짝 흔들어주면 감자 분이 더 많이 납니다. ⓒ 이승숙

젓가락으로 찔러봐서 익었다 싶으면 가스 불을 끄고 뚜껑을 덮은 채 조금 둔다. 그 동안에 열무김치나 배추김치를 접시에 조금 담고 컵에 우유를 따라둔다. 그리고 감자를 꺼내서 보기 좋게 접시에 담고 열무김치랑 같이 먹으면 밥 대신 먹어도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다.

설탕물이 배어서 감자가 달달하다. 솥전에는 노릇노릇하게 감자 누룽지까지 생겼다. 열무 김치랑 먹으니까 감자가 물리지도 않는다. 목이 마르면 우유를 한 모금 마셔준다.

밤마다 야참을 먹는 아들아이 덕분에 나도 점점 넉넉해져 간다. 옆에 앉아서 하나 둘 먹다보니 나도 모르는 새 체중이 늘어났다. 아들에겐 살 쪄도 괜찮으니 아프지만 않으면 된다고 하였지만 정작 나 자신은 살찌는 게 그리 달갑지 않다. 하지만 아프지만 않으면 된다.

날로 풍만해져 가는 우리 두 모자의 몸이지만 넉넉한 몸매만큼이나 마음도 넉넉해지리라 여기면서 오늘밤에도 난 감자를 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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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무김치랑 같이 먹으면 금상에 첨화입니다. ⓒ 이승숙

#강화도 #감자 #음기 #야식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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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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