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후보는 88년 발족한 박정희·육영수기념사업회 회장을 맡은 데 이어 89년 근화봉사단을 출범시켰다. 사진은 89년 5월 근화봉사단 단원들이 박정희·육영수기념관 건립을 위한 성미를 거두어 당시 박 회장에게 전달했다.월간 <근화보> 스캔
"5·16과 유신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없었다"
또 10·26사건이 터지기 전 박 전 대통령이 최규하 국무총리를 후계자로 염두에 두었다는 증언도 흥미롭다. 박 후보는 "아버지는 식사를 할 때 간간히 '다음 대통령이 누구면 좋겠냐'고 물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나중에 아버지가 결론을 내리셨는데 '나는 최규하 국무총리가 맡아서 하면 잘할 걸로 생각한다'고 했다. 하루 아침에 내린 결정이 아니라 그동안 성실하게 일해온 것을 보고 쭉 판단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에 진행자가 "박 전 대통령은 전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독재자였다"며 "독재자가 권력을 스스로 포기하고 나온 일이 가능한지 의문"이라고 꼬집자, 박 후보는 "아버지는 물러나서 좀 평화롭게 지내고 싶다고 굉장히 소망했다"고 반박했다.
이어 화제는 박 전 대통령이 권력을 잡은 계기였던 '5·16 쿠데타'로 돌아갔다. 5·16 쿠데타를 바라보는 박 후보의 시각은 분명했다. 그는 "구국의 혁명이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재미작가가 아버지를 추모하면서 신문에 기고한 글에 '한반도가 아버지를 만들어간 방법과 아버지가 한반도를 만들어간 방법을 동시에 생각해야만 바른 평가가 된다'고 썼는데, 이것이야말로 아버지를 평가하는 데서 정곡을 찌른 것이다. 어떻게 군인이 정치에 개입할 수 있느냐, 헌정을 중단시켰다,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등의 비판이 나오는데, 과연 5·16과 유신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겠나?"
하지만 진행자가 "5·16이 있었기 때문에 5공이라는 또다른 군사독재정권이 출현했다"고 지적하자 박 후보는 "그런 어거지 논리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버지가 하신 모든 것을 깎아내리기 위해 어거지로 갖다붙인 논리다. 그 때 시국을 보는 분들은 5·16이 먼저 나느냐, 공산당이 먼저 쳐들어 오느냐인데, 그런 점에서 5·16이 먼저 나서 파멸 직전의 국가를 구출했다고 보더라. 나라가 없어지면 그 다음엔 민주주의를 못하는 건 둘째치고 다 죽는 판 아닌가? 그래서 5·16혁명이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심지어 박 후보는 "5·16혁명은 4·19의거의 뜻을 계승하고 있다"며 '5·16 옹호론'을 '4·19 계승론'으로 확장시켰다.
"4·19의거는 잘못된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일어난 희생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일어난 5·16혁명도 4·19의 뜻을 계승하고 있다고 본다. 5·16이 있었기 때문에 4·19 때 희생된 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목숨까지 버렸는데 4·19 후 그 혼란의 와중에 만약 우리나라가 공산당의 밥이 됐다면 그 희생이 무슨 가치가 있나?"
이어 박 후보는 '유신헌법'을 '자주국방'과 연결시키는 독특한 견해를 선보였다.
"유신과 자주국방은 뗄래야 뗄 수가 없다. 아버지는 유신을 통해 북한보다 10년이나 뒤진 우리나라의 병기 생산을 독자적으로 생산해서 자주국방을 달성하려 했다. 그런 계획을 차질없이 수행하려면 사회의 안정이 유지되어야 하고, 사회의 안정이 유지되려면 강력한 지도체제가 불가피했기 때문에 유신을 통해 그것을 이루려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