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관련기사 삭제' 이후 편집권 독립을 위해 싸워왔던 시사저널 기자들이 지난달 26일 전원 사표를 제출하며 사측과 결별을 선언했다.오마이뉴스 남소연
[클릭! 시사기자단] 새 매체 구독하기로 바로가기
전 <시사저널> 기자 22명이 지난달 26일부터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편집권의 독립과 수호를 위해 1년이 넘도록 투쟁한 후 '장렬하게' 사표를 던졌습니다. '올곧은 선비는, 책은 팔아도 절개는 팔아 치욕스럽게 살지 않는다' 라는 옛 현인들의 가르침을 실천하듯, 그렇게 <시사저널>을 떠났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표를 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심입니다. 기자이기 이전에 한 가정의 가장이고, 아내이고 자식들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들은 파업했던 지난 6개월 동안 월급 한 푼 받지 못했기에,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들은 계속해서 배고프고 힘든 길을 택했습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손뼉를 치고 격려하기는 쉬울지 몰라도 만약 자신의 남편이, 자신의 아내가, 자신의 자식이 그런 험한 길을 가겠다고 했을 때, 칭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 가족은 마음 속으로 '웬만하면 참고 다니지'라며 원망을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그들은 가족들의 '기대'를 저버렸습니다. 자본의 부당한 압력에 굴하지 않는 '진짜 언론인'이 되고 싶다는 소망 하나 때문에 사표를 던지고, 새 매체 창간이라는 가시밭길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말이 쉬워 창간이지, 초기 자금 20억원을 만든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더욱이 자본을 투자했다고 압력을 행사하지 않을 20억원이어야 한다는 것이 또 하나의 어려움입니다.
그렇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시사저널> 기자들의 투쟁에 성원을 보내주고, 표현은 하지 않더라도 마음속으로 지지하는 많은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작은 힘들을 모아 큰 힘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요, 우리 뭐든 한 가지씩 내놓읍시다
서명숙 전 <시사저널> 편집국장은 후배 기자들이 사표를 내던 날,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뭐든 한가지씩 내놓읍시다"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래서 돈이면 다 된다는 삼성그룹이나, 기자도 회사 직원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언론사주나 경영진에게 기적을 보여"주자면서, 새 매체 창간의 당위성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언론은 세상을 보는 창입니다. 정치인도 교육자도 돈, 돈, 경쟁력만을 외치는 천박한 세태입니다. 언론 자유를 그토록 입에 거품을 물고 외치면서도 정작 '언론 자유와 편집권 독립'의 상징적인 사건인 '시사저널' 사태에 대해서는 지난 일년 동안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는 후안무치한 조중동이 버젓이 언론 행세를 하는 세상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세상을 보는 맑은 창 하나쯤은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견뎌내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의 주요 언론사들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세습구조' 속에서 사주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신문이 편집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현재 5대에 걸쳐 상속되고 있는데 이런 대물림의 경영구조 때문에 많은 사람은 '사주의 취향에 거스르는 기사를 쓰고 편집할 수 있을까'라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입니다. 신문사의 대물림은 조선일보뿐이 아니고, 이런 현상은 언론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전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언론사 사주에 대한 세무조사에 기자들이 '동원'되는 일도 없어야 하고, 사주가 비리혐의로 검찰에 출두하면 기자들이 조폭처럼 두 줄로서 서서 '회장님 힘내십시오'라며 허리를 90도로 숙이는 '부끄러운 풍경'도 사라져야 합니다. 따라서 이런 우리나라 언론 상황에서는,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매체가 하나가 아니라 몇 개는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회가 건강해집니다.
저는 그림을 내놓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광고주의 압력과 편집인의 부당한 기사삭제에 항의하며 집단사표를 낸 전 <시사저널> 기자들의 새 매체 창간을 지지하며, 제가 보탤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나 결론을 내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가진 건 돈이 아니라 그림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