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정형근이가? 싶을 거다"

[돌발 인터뷰] 한나라당 '파격 대북정책' 만든 정형근 최고위원

등록 2007.07.04 19:01수정 2007.07.04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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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형근이가 이런 걸 하나 싶을 거다."

한나라당이 4일 새로운 대북정책을 내놨다. 이름하여 '한반도 평화비전-적극적인 대북개방·소통 정책'이다.

강경일변도에서 벗어나 북한에 문을 열었다. 내용도 파격적이다. 철저한 상호주의 원칙을 깼다. 수구적인 냄새는 더이상 풍기지 않는다.

대선을 앞두고 중도층과 젊은층을 끌어안으려는 노력의 일환으로도 해석된다. 주요 내용을 뜯어보면 이렇다.

▲비핵화, 평화정착을 위해 필요시 남북정상회담 개최 ▲남·북·미·중 4자간 종전선언 수용 검토 ▲한반도의 완전한 긴장완화시 평화협정 체결 ▲김포-순안간 남북 정기항공로 개설 ▲한강-예성강·한강-임진강 뱃길 개설 ▲단계적인 남북 전면 자유 왕래 추진 ▲선 북한 방송·신문 전면 수용 ▲남북한 유·무선 통신 개통 추진 ▲극빈계층 300만명에 연 15만톤 쌀 무상지원

"하늘길·뱃길 열자, 쌀도 무상지원 하자"... 정형근 맞아?

고갱이는 한마디로 '개방'이다. 정치적인 긴장상태를 풀고 나아가 하늘길과 뱃길도 열어 자유왕래를 하자는 것이다. 거기다 통신과 방송도 우리가 먼저 문호를 열자고 했다.

기존에 고수했던 철저한 상호주의 원칙은 일부 버렸다. 북핵 폐기시 '북한 종합 부흥 계획'을 실행하겠다는 상호주의적 정책과 300만명의 극빈계층에 대한 연 15만톤의 쌀을 무상으로 지원하겠다는 대북인도 지원책이 동시에 담겼다.

이쯤되면 '이거 한나라당 맞어?'하는 물음이 나올 법 하다.

그런데 이 새 대북정책을 만든 이가 바로 정형근 최고위원이다. 정 의원은 지난 2월 구성된 한나라당 대북정책 태스크포스팀인 '평화통일 특별위원회'를 이끌어왔다. 이날 발표한 대북개방·소통 정책은 6개월간 특위활동의 산물인 셈이다.

정 의원은 이날 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국회의원·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 연석회의에서 이 대북정책안을 발표, 승인 받았다.

발표를 앞두고 < 오마이TV >의 카메라 앞에 선 그는 "정형근이가 이런 걸(파격적인 대북정책을 만드는 걸) 하는 데 대해 저쪽(북한)에서도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어 이거 뭐야' 하고 고개를 갸우뚱 할 것"이라며 허허 웃었다. 그의 날카로운 눈매에서 긴장감 대신 여유가 묻어났다.

정 의원은 "6개월간 대북관계 상임위 의원, 당직자, 외부 대북전문가와 수십차례 회의를 거쳐 마련했다"며 "(새 대북정책 안에 대해) 대표나 원내대표 모두 극찬 할 정도로 마음에 들어 했다. 최고위원회의에서도 만장일치로 승인 받았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날 내놓은 정책에 전통적인 한나라당 지지층이 받을 충격도 짐작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이제는 그 사람들도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수층이나 좌익은 항상 있게 마련이지요. 어쩔 수 없는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한나라당에도) 과감한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질적으로도 적극적이고 유연한 접근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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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근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4일 국회의원연석회의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경제협력 활성화, 남북자유왕래, 북한 방송.신문 전면수용, 북한 극빈층에 대한 쌀 무상지원 등을 골자로 한 새 대북정책 `한반도 평화비전`을 발표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나라당이 터닝한 걸로 봐도 좋아... 수구적이란 비판 맞다"

그러면서 그는 "(한나라당이) 개방정책으로 '터닝'(전환)한 걸로 봐도 좋다"고 단언했다. 이전의 한나라당의 대북정책을 두고 나왔던 "수구적"이란 비판에도 동의했다. 그러면서 새 대북정책의 취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사실 기존의 수구… 뭐 수구적이죠. 보수적이고, 수동·방어적인 대북정책에서 과감하고 공세적인 정책으로 북한을 개혁 개방으로 이끌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 정부의 대북정책과는 다르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일방적인 퍼주기'나 '끌려가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 의원은 "지킬 건 지키고 줄 건 주자는 것"이라며 "또 우리가 먼저 개방하면서도 안보는 튼튼하게 하고 한미동맹체제도 확고히 지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현 체제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도 "북한을 통일의 대상으로서, 그 체제를 인정하는 정책"이라며 "기존의 (한나라당 정책과) 내용에서나 (전제에서나) 많이 달라졌다는 점을 느낄 것"이라고 밝혔다.

한반도의 완전한 긴장완화시 평화협정 추진, 남·북한 판 FTA(자유무역협정) 추진 등이 대표적 예이다. 나아가 남한이 먼저 북한 방송과 신문을 전면 수용하고, 남북한 유·무선 개통을 추진하자는 대목에선 입이 벌어진다.

게다가 정 의원은 세상이 다 아는 '공안검사' 출신이다. 13년간 옛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 간부로 일하면서 굵직한 간첩 사건을 지휘했다. 특수잠입·탈출, 이적단체 구성, 회합·통신 등의 죄목을 명시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의 서슬이 퍼런데 가능한 일일까.

정 의원은 "(새 대북정책은) 국보법과 상충되지 않는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는 "그간 국보법이 수차례 개정돼 '국가안전보장을 해할 목적이 있을 때'로 적용 범위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며 "단순히 (북한 방송을) 시청한다고 해서 국보법(위반)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체제의 우월성과 국민의 의식수준을 강조했다. 이제 북한 방송에 현혹될 국민은 없다는 얘기다. 정 의원은 "우리가 북한의 <노동신문>이나 북한 방송을 받아도 이제는 충분히 흡수할 수 있다. 오히려 북한의 실상을 더 적나라하게 알 수 있게 될 것"이라며 "필요하다면 우리가 먼저 선개방 해야한다"고 말했다.

기존의 상호주의 원칙을 완전히 버린 것이냐는 질문에는 "필요한 건 상호주의를 지켜야 하지만 반드시 (모든 면에서) 주고받는 걸 고집하자는 건 아니다"라며 일부 노선 변경을 시사했다.

"대선용 아니다, 진정성 믿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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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근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4일 국회의원연석회의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경제협력 활성화, 남북자유왕래, 북한 방송.신문 전면수용, 북한 극빈층에 대한 쌀 무상지원 등을 골자로 한 새 대북정책 `한반도 평화비전`을 발표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북한에도 의미있는 메시지를 던졌다. 정 의원은 지난 2월 함세웅 신부(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와 함께 방북을 추진했지만 북측의 거부로 무산된 적이 있다.

정 의원은 "북한은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대북교류정책이 끊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런 정책으로 그렇지 않다는 안심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당시에) 북한에 가서도 이런 주장을 전달하려고 했다"며 "(앞으로도) 루트가 있다면 이런 뜻을 직접 전할 의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새 대북정책의 진정성을 거듭 강조했다. 정 의원은 "이걸 두고 대선용 아니냐는 주장이 나올 수 있는데 대선에 즈음해 임시변통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라며 "6개월간 많은 토론과 (법률적) 검토를 통해 마련한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공교롭게도 7·4남북공동성명일에 새 대북정책을 발표하게 된 데 대해서도 의미를 부여했다.

"35년 전에 남북은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란 원칙에 합의했습니다. 그런 날에 맞춰 한나라당이 이런 과감하고 전향적인 개방정책을 내놓은 건 큰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짧은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더 구체적이고 정교한 실천 방안을 내놓겠다. 그런데 그것도 집권해야 가능한 일 아니냐"며 웃었다.

맞다. 한나라당이 진짜 확 바뀌었는지 여부는 실천에 달려있다. 범여권과 야권을 통틀어 지지율 1, 2위를 달리고 있는 유력 대선주자인 이명박·박근혜 예비후보가 '정형근표 대북정책'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과연 공약으로 채택할 것인지 주목해야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나라당 #정형근 #대북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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