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6월 30일의 '늑약', 나는 두렵다

한미FTA 체결, 학계의 직무유기에 대한 유감

등록 2007.07.06 09:35수정 2007.07.06 10:23
0
원고료로 응원
a 지난 4월 2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FTA 협상 타결 발표 기자회견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무역대표부 부대표가 타결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지난 4월 2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FTA 협상 타결 발표 기자회견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무역대표부 부대표가 타결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우리 2007년 6월 30일을 똑똑히 기억해 두자.

6월 29일 대외경제장관회의와 임시국무회의를 통해 한미FTA 협정문이 처리되고 이튿날인 30일에는 미국 하원 의사당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수전 슈워브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역사적인 협정문에 서명을 했다.

작년 2006년 2월 3일 김현종 본부장과 로버트 포트먼 당시 USTR대표가 워싱턴의 같은 장소에서 협상 개시를 선언한 지 약 1년 4개월여 만이다.

한미 양국 의회의 비준절차가 남아있긴 하지만, 우리의 운명을 좌우할 한미 FTA 협정 체결 절차는 이렇게 일사천리로 흘러가고 있다.

한미 FTA 협정은 사회적 시장경제주의를 천명한 우리 헌법의 경제 조항과 그 정신을 무시하고 미국식 신자유주의·시장 근본(절대)주의로 나아가는 결정적인 터닝 포인트가 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 나는 누차 한미 FTA 협정이 갖는 의미와 문제점을 〈오마이뉴스〉기사와 개인 블로그를 통해 제기해왔다. 하지만 국민 다수는 묵묵부답이었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법조인도, 법학자도, 그리고 한미 FTA 관련 수많은 학문 분야의 학자도, 언론도 이 문제에 대해 철저히 무관심 내지는 무시했다.

공부는 무엇 때문에 하고 연구는 무엇 때문에 하는가? 언론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조중동문' 등 보수언론들은 언론이기를 포기하고 미국 정부의 기관지이기를 자처했다. 땅을 치고 가슴을 치며 통탄할 일이다.


나는 두렵다. 우리 후손들이 맞이하게 될 내일이 두려울 따름이다. 그들은 이후 우리들을 어떻게 비난할까? 미국에게 주권을 팔아넘긴 '매국노 선조'라 하지 않을까?

일본이 바보인가, 중국이 바보인가? 일본은 소심하고 치밀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미일 FTA 협정의 체결을 위한 검토결과 일본이 감당할 능력이 없다며 체결을 미룬 상태다. 물론 그러다가 기회를 놓치는 일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또 중국인의 뛰어난 상술은 정평이 나 있다.


그런데 뭐라고? "일본과 미국이, 중국과 미국이 한미 FTA 협정을 체결하면 그 때 우리를 끼워주겠냐?"라는 것이 한 나라를 책임진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었다. 국가간의 외교관계가 철없는 아이들 소꿉장난인 줄 아는가?

국제관계에서는 어제의 적이 친구가 되고,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되지 않던가? 국가의 이해관계에 따라 적과 동지가 수시로 변할 수 있는 것이 냉혹한 국제사회의 현실 아닌가?

다른 것은 제쳐 두고 여기서는 우리나라 학계의 태도를 짚어보려 한다. 국내에서 한미 FTA 체결 문제가 거론될 때를 즈음하여 헌법학계, 행정법학계, 상법학회, 국제법학회 등 관련 학회에서는 한미FTA가 갖는 법적인 문제점 등을 학회의 학술대회 주제로 삼아 철저히 검토한 후 보고서를 작성하는 노력을 해야 했다.

한미 FTA 문제는 워낙 전문적인 영역이어서 깊은 연구를 통하여 문제점과 그 대책 등을 제시하여야 할 영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련 학회에서는 단 한 차례의 학술대회도 개최한 바 없다.

물론 지난 6월 22일 한국비교공법학회는 부산대학교 법과대학 모의법정에서 '한미FTA와 현안과제의 공법적 검토'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으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의 뒷북 학회였다.

학회에 참여한 학자들도 한미 FTA 협정 문제의 심각성을 그렇게 깊이 인식하는 것 같지 않았으며, 소위 한국의 여타 지식인이나 전문가들조차 이 문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보였다.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학자들의 무관심과 학문적 축적의 일천성에 서글픔을 느꼈다. 영화 관련 학회, 서비스 관련 학회, 경제 관련 학회, 기타 문화 관련 학회 등등의 무지와 직무유기도 비판받아 마땅할 것이다.

만일 일본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그들이었다면 아마도 관련 되는 모든 학회에서 학술 주제로 다루고 보고서를 제출하고 각종 잡지에 쟁점별 문제점을 짚어 대응책을 철저히 제시했을 것이다. 그 결과 문제점이 많으면 강력하게 FTA 협정 체결을 반대했을 것이고, 그러한 제안을 정부가 수용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모든 학회가 침묵하고 애써 외면하는 듯했다. 역사가 흐른 후 한미 FTA 협정이 '2007년 6월 30일의 늑약'으로 역사에 기록되지 않을까 두려울 뿐이다.
#한미 FTA #학계 #지식인 #전문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제대 법학과 교수. 전공은 행정법, 지방자치법, 환경법. 주전공은 환경법. (전)한국지방자치법학회 회장, (전)한국공법학회부회장, (전)한국비교공법학회부회장, (전)김해양산환경운동연합 상임의장, (전)김해YMCA이사장, 지방분권경남연대상임대표, 생명나눔재단상임이사, 김해진영시민연대감나무상임대표, 홍조근정훈장수훈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4. 4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5. 5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