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무렵 해변을 따라 걷는 소설가 3인의 모습이 마치 오래된 사진을 보는 느낌을 주었다김기
부산에 들어와서는 단숨에 해운대로 향했다. 윤정모 선생의 고교시절 친구의 후덕한 배려로 일행은 좀처럼 누릴 수 없는 호사를 누리고 여행 첫날밤을 보냈다. 무뚝뚝하다는 경상도 사람답지 않게 말없이 오랜 친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친구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2박 3일로 시작한 여행이지만 정해진 일정은 둘째날 부산을 출발해 진해에 들러 점심을 먹는 데까지였다. 그곳 진해까지 친구는 자신의 차로 안내를 했다.
바다를 반찬삼아 맛나게 점심을 먹고 이제는 나머지 1박 2일 '꺼리'를 만들어야 했다. 바로 그때였다. 부산으로 향한다는 애초의 계획을 들을 때부터 머리 속에 꼬불쳐 두었던 내 음흉한 생각이 섬광처럼 번쩍였다. 신중선 작가로부터 들었던 대구문화 3인방을 만나보고 싶었다. 뭐 작가라는 사람들이 아무리 번뜩이는 지성과 통찰력을 가진 존재들이라지만 여행이라는 느슨한 공기 속에서는 나 같은 허술한 간계에도 넘어가기 마련이다.
그때부터는 운전대를 내가 잡았다. 사실 특별히 친하지 않고는 차를 맡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눈빛만큼이나 마음도 젊은 윤 선생이었지만 전날 장시간 운전을 한데다 달뜬 마음에 맥주 한 병을 마신 탓에 밤새 아파서 끙끙 앓았다는 윤선생은 도저히 핸들을 지탱할 수 없었다. 핸들을 넘겨줄 때도 잠시만 눈을 붙인다고 단서를 내걸었지만 그 잠시는 다음날 처음 넷이 출발했던 예술의전당으로 돌아올 때까지 네 손에 달려야 했다.
이 여행은 처음부터 모두에게 느닷없이 시작되었다. 십이지궤양에 이것저것 젊은 시절 보살피지 못한 몸은 보상을 요구했고, 여행을 결정하게 된 것도 의사가 여행을 통해 기분전환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충고에 즉흥적으로 윤선생은 신중선, 공선옥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녀들도 대책없이 훌쩍 떠나는데 동조한 것이었다.
소설가도 아니고, 문단에 대해 고운 눈 준 적 없는 나였지만 출판사 창고에 쌓여만 가는 문학작품들처럼 쇠약해진 선생의 건강을 대하는 일은 뭔가 확실치 않은 다중의 감정들이 뒤엉키게 만들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만나고 싶은 대구 3인방 중 대부분이 만나기에 적절한 상황이 아니었다. 사실 따지자면 한두 시간 전에 전화해서 만나자는 것이 무리이고 한편 결례인 것이긴 했다. 그들 중 한 명인 이명미 화가가 감기에도 불구하고 먼 곳에서 찾아온 지인 신중선 작가를 외면하지 못하고 화실로 불러주어 천만 다행이었다. 긴가민가했지만 나와 윤선생에게는 말없이 공유하고 있었던 바람이 있었다.
화실 앞에 도착해서는 기자질하는 내게도 내밀지 않았던 책을 주섬주섬 챙기면서 “이게 좋을까? 아니야 이건 너 가지고 이거 주자”는 윤선생의 눈빛에서 병을 안고 있는 작은 몸이 겪는 여독만이 아닌 어떤 다급함, 절실함이 읽혔다.
그 눈에 담겨 있는 것은 단순한 무엇이 아니라 오랜 세월 한 길을 걸으면서 배인 습성일 터였다. 그것이 무엇이라고 내가 다 아는 듯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다 볼 수 없고, 그 중 조금을 봤다 해도 마치 아는 듯 말할 자격이 내겐 없다. 그렇지만 불과 몇 초에 불과한 시간에 나는 마치 수년의 세월을 선생이 보낸 거칠고, 땀내 물씬 풍기는 거리를 함께 달려온 기분에 젖었다.
화실에 들어서면서는 어류의 기억력을 가진 나는 조금 전의 감정들에서 떠나 있었다. 이런저런 설명을 듣기도 전에 화실 여기저기 놓인 작품들에 눈을 빼앗겼다. 색채가 강한 현대미술작가의 이름 몇이 머릿속을 단말기를 긁는 신용카드처럼 훅 지난다. 그림에 대해 잘 아는 듯 떠들 처지는 못 되지만 순식간에 그림들에 반하고 말았다. 마치 고대 유적지에서 느꼈던 흥분과도 같았다. 차라리 그곳에 눈을 빼놓고 오고 싶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