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운영하다 남는 것은 질병뿐"

[인터뷰] 정영숙 수원시 보육시설연합회 가정분과 회장

등록 2007.07.09 14:02수정 2007.07.0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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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사진 찍어주세요."
"저도 찍어주세요."

수원시 영통구 신나무실 아파트의 한 어린이집을 찾아간 시간은 저녁 8시가 넘은 시각이었지만 4~5명의 아이들은 땀이 나도록 뛰어 놀고 있었다. 어린이집 내부 사진을 찍으려 하자 아이들은 사진을 찍어달라며 귀여운 포즈를 취했다. 엄마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표정은 참으로 밝아보였다.

기자가 가정어린이집을 방문해서 본 아이들의 밝은 표정과 함께 지난 5월 수원 장안구의 한 어린이집 원장이 자살하는 사건이 교차해서 지나갔다. 왜 그런 일이 생겼을까.

a 정영숙 민성 어린이집 원장.

정영숙 민성 어린이집 원장. ⓒ 민길홍


당시 자살의 원인이 여성가족부가 추진 중인 보육시설 평가인증제 준비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이라는 주장도 없지 않다. 보육시설 업계의 현실을 알아보기위해 이 어린이 집을 운영하고 있는 정영숙 수원시 보육시설연합회 가정분과 회장(민성어린이집 원장)을 만났다. 정 원장과 현재 보육시설 평가인증제를 비롯한 여러 생각을 들어 보았다.

인터뷰 중간에도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가 정 원장의 품에 안기었다. 정 원장은 "내 딸이에요"라며 원생 모두를 친자식처럼 여기는 듯 했다.

"현실성 있는 평가 인증제를 해야"

10년 전부터 어린이집을 운영 했다는 정 원장은 "영통 신도시가 생길 때 나도 이일을 시작했는데 10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며 현재 보육인증제에 대한 보육업계의 어려움을 토로 했다. 보육시설 평가인증제는 여성부에서 영유아 보육시설의 전반적인 교육여건에 대해 종합평가를 하여 인증을 부여하는 제도다. 인증을 받기위해서는 인증신청, 자체점검, 현장관찰, 인증결정의 4단계 과정을 거치고 있으며 9~10개월가량 소요된다.

하지만 가정 보육시설이 준비하기에 는 부담이 가는 조항이 많고 현실성이 없다는 것이 정 원장의 말이다.

"정부에서 서울 지하철역에도 인증제에 대한 광고를 하고 있는데 이런 것이 어린이집 원장들을 현혹해서 안하면 안 되는 것처럼 하고 있다"며 "평가인증제의 무조건적 반대가 아니라 교사수급 문제 등과 같은 실사파악이 선행된 후에 업계와의 협의를 통해 이루어져야 하는데 밀어붙이기식 일처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거의 1년을 어렵게 평가인증제 준비해서 하루만의 관찰로 인증 여부를 부여하는 것에도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 평소에도 12시간씩 근무를 하는 상황에 연장근무까지 하여 인증제를 준비하여야 한다. 하지만 제한된 인력으로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 보육업계 측의 불만이다.

정 원장은 “교사들이 교대로 업무를 하거나 쉴 수 있게 대체인력에 대한 방안을 마련하고 시행을 해야 한다”며 “정부가 선진국의 것을 보고 배워와 시행한다고 하는 거라 하는데 우리가 직접 나가 확인해 보니 다른 나라는 근로시간이 정해져 있는 등 우리처럼 지표를 만들어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시설에 맞춰 시행하고 있다”라고 말하고는 교사수급에 대해 대체교사 인건비 지원이나 인력 파견의 형태로 라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돈 조금 지원에 각종 규제, 감사


2008년까지 인증제에 참여해야 하는 가정보육원들은 어린이집 내부 리모델링과 같이 인증제 조건에 맞추어 준비를 한다. 하지만 리모델링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전혀 없는 실정이다.

인증제를 위해 아파트를 변형시키는데도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나중에 집을 팔고 나갈 때도 원상 복구를 하고 나가야 하기 때문에 이중으로 비용이 들어간다. 그리고 집은 아파트지만 주거용이 아닌데도 1가구 2주택 세금도 부과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의 지원은 아이 한 명당 20여만 원의 지원금이 있기는 하나 이마저도 재무회계를 받아야 한다.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바로 아이 한 명당 지원이라는 것이다. 아이 당 교사의 비율을 보면 0세는 3명, 1세는 5명, 2세는 7명 당 각각 한사람의 교사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아이하나가 빠지더라도 교사는 그대로 두어야 하기 때문에 인력의 낭비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린이집에 아이들이 나이 별로 한명씩 총 3명의 아이가 있더라도 교사는 3명이 업무를 봐야한다. 이에 정 원장은 지원을 아이별 지원이 아닌 반 별로 지원할 것을 주장 하고 있다. 나이별로 반을 나누는데 각 반에 대한 지원을 하라는 것이다.

“지도와 점검하는 사람이지 감사자는 아니다”

정부의 지원을 받다보니 구청에서 어린이집에 대한 지도점검이라는 것이 나온단다. 필요한 행정지도는 있어야 되겠지만 수시감사인 지도점검은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원장들에게는 상당히 기분 나쁜 인격권을 무시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도점검에 대해 정 원장은 “그것은 우리들의 인격을 애들 취급하는 것이다. 연락없이 무작정 들어와 아이들이 공부하는 공간에서 머릿수를 세어 가고 냉장고 뒤지는데 예의를 갖추고 임해야 한다”며 “들어오기 전 집 앞에서라도 연락을 해야지 그러다 원장이 없을 때 사고라도 나면 누가 책임질 것인지...”라고 말하고는 권위의식이 있는 공무원들을 비판했다.

지도점검이 나오는 달이면 불안하고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정 원장은 어지러워 균형을 못 잡을 때도 있어 공황장애가 아닌가 걱정스러워했다.

a 영통 민성 어린이집의 어린이들.

영통 민성 어린이집의 어린이들. ⓒ 민길홍


7~8년간 어린이집을 운영하다 보면 성대 결절로 목소리가 모두 변한다고 한다. 허리와 다리 모두 아프다고 하소연을 한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원장님, 교사들 모두 그런 증상이 있다”며 목소리만 들어도 이 사람이 몇 년 일했는지 알정도이다“라고 농담을 던졌다. 또한 원장들은 교사로 인정 하면서도 4대 보험 중 고용보험과 산재 보험에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 또한 불만 중 하나다. 산재 보험에 해당이 안 되어 병 밖에 남는게 없다고 말하는 원장들도 있다.

“한 번의 보도로 잘하고 있는 곳까지 도매 급으로 넘어가고 있다”

지난 5월 수원의 한 어린이집 원장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자살 원인이 평가인증제로 인한 심한 스트레스라는 사실에 보육시설 연합회는 수원시청 앞에서 촛불 추모제를 하는 시위를 벌였었다.

정 원장은 “그 사건은 평가인증제 뿐만 아니라 원생이 다치는 사고로 인해 합의 문제와 직원들의 사직요구 등 많은 일이 있었다”며 “보육인 이라면 누구나 이해하고 공감하는 일”이라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이 자살 사건을 계기로 연합회에서 촛불시위를 가졌다. 정 원장은“그때 많은 사람들이 동참해주셨다. 하지만 아직도 다른 원장님들께서 밖으로 나오고 있지 않다”며 아쉬움을 표함과 동시에 “이번 시위로 우리의 의지를 밝히려 했으나 정부에서는 신경도 쓰질 않을 뿐더러 언론에서도 어린이집 사고만을 집중 방영하는 등 현장의 소리를 닮으려는 노력이 없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평가인증제를 필사적으로 막아보겠지만 집에만 있던 여자들이라서 사정이 어렵다”고 안타깝게 말했다.

밤10시까지 불을 밝히는, 아파트 숲 속의 한 가정 어린이집을 나서는 기자의 발걸음은 어느때 보다 무거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수원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수원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어린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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