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문제, 사회적 강자가 기득권 내놔야 해결 가능

[주장] 사회적 상벌 체계 합리화가 궁극적 대안이다

등록 2007.07.12 17:37수정 2007.07.12 17:37
0
원고료로 응원
사회적 강자는 이랜드 기업주 같은 존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기여, 공헌, 부담, 의무에 비해 과도한 이익·혜택·권리를 누리는 존재를 말한다.

한국의 경우 전문직(정식 교수, 독점권을 보장받은 '사'자 붙은 직업 등)과 비전문직(시간강사·인턴·레지던트·자격증 없는 일반인등) 사이에서 공무원·교사·공기업과 민간부문 사이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서, 원청기업과 하청기업 사이에서, 조직노동과 미조직노동 사이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서, 대도시 부동산 보유자와 비보유자 사이에서, 현세대와 미래세대 사이에서 상대적 강자인 전자의 후자에 대한 약탈이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 이는 몇몇 국제 통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노동의 질적 성격이 비슷한 교사의 경우 그 보수를 비교하는 국제 통계자료가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30개 회원국과 4개 비회원국 등 총 34개국의 교육 자료를 분석해서 발간한 '2006년도 OECD 교육지표'에 따르면 2004년 현재 한국 국공립 교사들은 초중고를 막론하고 1인당 구매력지수(PPP, GDP에 물가 수준 감안) 대비 세계 최고의 보수를 받고 있다.

한국 공공부문의 높은 처우와 고용경직성에 주목해야

초등교육의 경우 한국의 진보 성향 사람들이 내심 모델로 삼고 있는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에선 15년 경력 교사가 1인당 PPP 수준(0.95, 1.09, 1.18)을 받지만 한국은 2.37배를 받는다. 후기 중등교육(고등학교)의 경우 이 나라들은 1.02배, 1.46배, 1.45배 수준이지만 한국은 2.36배 수준이다.

요컨대 이 나라들에선 15년 경력 교사가 한국으로 치면 대략 연 1700~2500만원(2006년 한국 1인당 명목GDP 1755만원)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나라들의 경우 여성 취업률이 높기에 대개 맞벌이를 하고, 비경쟁 부문인 공공부문의 보수가 특히 낮은 면은 있다. 하지만 다른 선진국들이라고 해서 교사들의 보수가 스웨덴 등에 비해 그리 높은 것은 아니다. 초등교육 15년 경력자의 경우 영국은 1.36배, 미국은 1배, 프랑스는 1.07배, 일본은 1.55배 수준이다. 한국은 교사들의 보수가 지나치게 높은 것도 문제지만 초중고 교사의 보수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 것도 문제다.

a


국공립 교사들의 보수는 시장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인재 배분 전략과 철학을 반영한 정치가 결정한다. 따라서 국공립 교사들의 보수는 공공부문 종사자들의 전반적인 보수 수준을 유추할 수 있게 해 준다(그런데 공공부문 종사자들의 국제적 보수 수준을 비교한 자료는 없다).


단적으로 한국의 공공기관 정보공개시스템(www.alio.go.kr)에 공개된 주요 복지 전달 공공기관의 평균 보수액도 1인당 GDP의 2.3~3배 수준이다. 교사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다. 매출액 500대 기업에 포함된 공기업 12개사의 2007년 대졸 초임 평균 연봉 수준은 3147만원(GDP의 1.8배)이고 평균 보수는 이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a


외국에서 살아본 사람들의 경험담을 종합하면 비경쟁부문인 교사나 공공부문 종사자들의 보수가 그 나라 평균 소득 수준에 비춰볼 때 결코 높지 않다는 것은 확실하다.


OECD Health data(2005)를 통해 대표적인 전문직인 의사의 처우를 보면 국가에 고용된 월급쟁이 전문의(봉직 전문의)의 보수는 스웨덴의 경우 GDP의 2.52배, 핀란드가 2.65배. 덴마크가 2.89배다.

이는 한국으로 치면 연봉 4500~5000만원 정도로 한국 공공기관(국민연금관리공단, 건강보험관리공단 등)과 공무원 수준이다. 봉직 전문의 보수에 관한 공식 통계는 없지만, 국공립 대학병원에 종사하는 지인(의사)들의 보수를 보면 이보다 매우 높은 수준이다.

a


한국 공공부문의 인적 규모가 크지 않다는 것을 여러 국제 통계에 근거해서 주장하는 사람은 많아도, 공공부문 종사자들의 높은 처우와 고용경직성 및 연공서열로 올라가는 불공평한 보수체계에 대한 언급은 없다. 마치 비정규직의 열악한 처우를 성토하는 사람은 많아도 정규직의 지나치게 높은 처우와 고용경직성 및 불합리한 보수체계를 언급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한국에선 기업 규모별 임금 격차도 심각하다. 근속연수나 숙련도 차이를 무시하고 단지 규모와 근로시간과 임금총액만으로 따지면 5~9인 사업장에 근무하는 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은 1만30원(GDP의 1.3배)인데 반해 100~299인 사업장 노동자는 1만3580원(GDP의 1.8배), 500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는 2만270원(GDP의 2.5배)이다.

a


서유럽 국가에 비해 기업규모별 임금 격차가 비교적 크다고 알려진 일본과 비교해도 한국의 기업규모별 임금격차는 확연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2007년 2월 14일 발표한 '임금수준 및 생산성 국제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대졸 초임을 100%로 놓고 비교할 때 1천명 이상 대기업의 임금은 한국이 일본의 110.4%, 300~999명 규모는 96.4%, 100~299명 규모 중소기업은 91.5%였다.

그래도 한국 제조업은 혜택을 많이 받고 있는 편이다. 경총은 2005년 기준으로 한국의 국민소득 대비 제조업 기준 임금수준은 1.83인 데 비해 미국은 0.84, 일본은 1.28, 대만은 1.02라고 밝혔다. 이는 그래도 우리나라 제조업이 자영업 등에 비해 노동조건이 상대적으로 좋으며 대체로 번듯한 직장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제조업 종사자 420여만명 중에서 고용보험 가입자는 67%에 이르지만 숙박 및 음식업은 9%, 도매 및 소매업은 23%, 건설업은 32% 수준이다. 6개월 이상 평소취업자 2284만명의 소득별 분포를 보면 월 100만원 미만이 33.9%, 200만원 미만은 71%다.

a


비정규직 문제, 자본가의 과잉 이윤 때문이 아니다

한국의 보수체계 혹은 동기부여(상벌) 체계는 지속가능한 발전 전략이나 정의의 원리에 따라 설계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강자(이익집단)들의 단기적이고 협소한 이해관계에 맞게 설계되었다.

예컨대 한국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상대적으로 단순한 업무에 종사하는 정규직 조직노동자들의 임금이 근속연수에 따라 혹은 단체협상에 따라 자동적으로 올라가는 구조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 이는 1987년 6월항쟁과 7~9월 대투쟁의 성과와 한계이자 모순이다. 과거에는 진보적이고 공공적이고 공평했겠지만, 지금은 너무나 반동적이고 불공평해서 부당한 격차와 혹독한 양극화와 지속가능한 발전의 위기를 낳고 있다.

임금체계를 직무(특정 직무에 요구되는 전문성과 난이도, 시장의 수급 상황), 숙련, 능력 등 직무수행성과에 연동하는 임금제를 채택하지 않는 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건 불가능하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과 정규직, 조직노동, 공공부문, 전문직이 합동으로 만들어낸 불공평한 구조에 대항하여 비정규직, 미조직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것엔 불가피한 측면이 있고 진보적인 측면도 있다. 하지만 자신들의 정당하지 못한 높은 처우와 고용경직성에 대해 전혀 문제의식도 없고, 자기 것을 내놓을 의사도 전혀 없이 직무급제를 반대하고 격차 해소를 부르짖는 사회적 강자들의 행태는 지극히 모순적이고 반동적이다.

요컨대 비정규직 문제는 사회적 상벌(incentive-penalty) 체계가 지속가능한 발전을 담보하지 않고, 특히 정규직을 늘리기 힘든 구조에서 비롯된다. 자본가의 과도한 탐욕이나 과잉 이윤 혹은 주주 중시 경영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열악한 자본의 조건에서 비롯된다. 단적으로 비정규직도 대체로 소규모 사업장에 많다. 5인 미만 사업장은 50% 이상이 비정규직이며, 전체 비정규직(정부 통계) 548만명의 3분의 2 이상이 29인 미만 사업장에 분포한다. 5인 미만 기업, 9인 미만 기업에서 무슨 놈의 주주 중시 경영인가?

a


선진자본주의국에 비해 한국이 유별난 것은 자본가의 탐욕, 과잉 이윤, 과도한 시장 의존, 주주 중시 경영 때문이 아니라 지극히 불공평한 사회적 상벌 체계 때문이다. 이것이 만든 현실이 바로 세계 최악의 양극화다.

예컨대 중위임금(median wage)의 3분의 2 이하를 저임금 근로자로 정의할 때 한국의 저임금 근로자의 비중은 26.8%지만 스웨덴(1993년)은 5.2%, 일본(1994년)은 11.4%다. 선진국 중에서 임금, 소득 격차가 가장 큰 미국(2005년)은 24.9%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한국은 상하 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간 유동성이 미국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양극화는 신자유주의와 시장만 심화시킨 것이 아니다. 양극화 반대, 공공부문 강화를 가장 소리 높여 외치면서 불공평한 상벌체계를 만든 우리의 사회적 강자들에게도 결정적인 책임이 있다.

무역의존도가 70~80%에 이르고 세계 경제 지각 변동의 진앙지인 중국과 여전히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인 일본에 인접한 한국은 핵심적인 사회적 자원인 돈, 인재, 권력, 관심의 배분(흐름)이 왜곡되어서는 조만간 거대한 파국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이는 환경, 생태보다 더 심각한 지속가능성 위기다. 지금 이랜드 그룹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이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

이랜드 그룹과 참여정부에 돌을 던지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랜드 정규직 노조, 진보 깃발을 든 사회적 강자와 보수 깃발을 든 사회적 강자들에게도 돌을 던져야 한다. 기득권을 거머쥔 자들, 한 주먹 있는 자들 모두 자신의 기득권을 상당 정도 내놓지 않고는 이 크고 질긴 격차를 해소할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김대호 기자는 '대우자동차 하나 못 살리는 나라'(2001년 사회평론) '한 386의 사상혁명'(2004년 시대정신) '진보와 보수를 넘어'(2007년 백산서당) 등의 저자로 현재 '사회디자인연구소' 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김대호 기자는 '대우자동차 하나 못 살리는 나라'(2001년 사회평론) '한 386의 사상혁명'(2004년 시대정신) '진보와 보수를 넘어'(2007년 백산서당) 등의 저자로 현재 '사회디자인연구소' 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현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전 김대호산업경영연구소 소장(2005) 전 대우자동차기술연구소 차장(2003) '노무현 이후-새시대 플랫폼은 무엇인가?-'(2009) '희망한국프로젝트'(공저)(백산서당, 2007) '진보와 보수를 넘어'(백산서당, 2007) '한386의 사상혁명'(시대정신, 2004) '대우자동차 하나 못 살리는 나라'(사회평론, 2001)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4. 4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5. 5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