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돼먹은 세상 "개념이나 퍼드세요!"

[리뷰] tvn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 세상을 향한 거침없는 외침

등록 2007.07.20 11:08수정 2007.07.20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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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막돼먹은 영애씨> 2시즌 제작 홍보 포스터

<막돼먹은 영애씨> 2시즌 제작 홍보 포스터 ⓒ tvn

이영애. 청순하면서 우아하고, 고운 목소리의 소유자. 산소 미인이나 대장금으로 통하는 그녀. 그런 그녀와 이름이 같다는 자체는 지옥이 아닐 수 없다. 적어도 우리의 막돼먹은 언니 영애씨에게 그렇다.

그녀도 이영애(김현숙 분)란 이름이 싫다. 병원에 가서 자신의 이름이 울려 퍼지고, 당당히 나가보지만 모두들 힐끗힐끗 쳐다보거나, 대놓고 웃는다. 취직 면접 때도, 선을 볼 때도 이영애란 이름과 자신의 얼굴과 몸매를 보면 어안이 벙벙해지는 사람들 때문에 싫다. 그런 그녀는 나이가 들수록, 살이 더 찔수록 그런 세상의 편견에 부딪힐 때마다 이야기한다.

"개념이나 퍼드세요!"라고. 다큐와 드라마의 장르 혼합으로 6mm 카메라와 솔직담백한 리얼리티를 표방한 tvn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의 이야기다. 이 드라마는 현재 13회까지 방송되어 어느덧 종영을 맞이하고 있지만 인기에 힘입어 2시즌을 제작한다. 그래서 <친절한 금자씨>를 패러디한 포스터에 막돼먹은 영애씨가 출연해 "개념이나 퍼드세요!"라며 공익광고를 펼쳐 또 한 번 화제가 되고 있다.

우리의 완소녀, 영애씨와 영채!

사실 이 드라마가 이렇게 인기를 얻으리란 상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도 '출산드라' 김현숙이란 개그맨이 배우로 전업하고, 주인공은 뚱뚱하고, 연애 한 번 해보지 못한, 거기에 직장은 그저 그런 전단지 광고 디자이너. 참 이제까지 우리가 만난 주인공들 중에 최악의 여주인공이 아닐 수 없다.

적어도 삼순이 언니, 김선아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 혹자는 그래서 그녀를 막돼먹은 영애 씨라 부른다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았다. 오히려 멋들어진 여주인공들 속에 당당히 여주인공으로 등장한 사실 자체만으로도 박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제목만 '막돼먹은 영애씨'지, 막돼먹은 세상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대한민국의 여자를 대표하는 영애씨다. 모든 드라마에서 청순가련형, 혹은 섹시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판타지는 질렸다. 뭇 남성들이 심은하와 이영애를 좋아하는 것도, 김태희와 이효리를 좋아하는 것도.


그래서 막돼먹은 영애씨는 사랑받을 수 있었다. 판타지가 신물날 때쯤 그녀는 우리의 옆집 언니처럼 혹은 우리 자신의 도플갱어와 같은 모습으로 당당히 드라마 주인공으로 분했기 때문이다. 사실 삼순이 언니도, 병희 언니도, 달자 언니도 30대의 노처녀들이지만 모두가 예뻤다. 어떻게 망가져도 그녀들의 미모는 감출 수 없었다.

a 백마 탄 왕자는 사라지고 야동이나 즐겨보는 회사 직장 동료들만 등장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백마 탄 왕자는 사라지고 야동이나 즐겨보는 회사 직장 동료들만 등장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 tvn

더욱이 극중에서 노처녀라지만 늘 남자들이 꼬였다. 백마탄 왕자님부터 자상한 연하남까지. 어쩌면 하나 같이 본인들은 가만히 있는데 남자들이 좋아서 어찌할 바를 모르니, 제아무리 판타지를 통해 대리만족을 한다 해도 정도가 있다.


그래서 우리의 영애씨는 반갑고, 축하해 주고 싶은 존재다. 그래서 극중에서 그녀가 막돼먹은 사회에서 당하는 모든 일들에 함께 격분하고, 욕하고 소리치며, 그녀를 동정하고 함께 울어줄 수 있었다. 이 점이 <막돼먹은 영애씨>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고은찬 역에 윤은혜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중성적인 캐릭터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며 받아야 하는 여러 가지 불합리한 처사와 일들에 대해 거침없이 "야! 이 XXX야!"라고 소리칠 수 있는 영애씨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반면 영애씨와 정반대인 영채는 어떠한가? 우선 그녀는 여성들의 질투를 받을 만한 미모를 지녔다. 하지만 멍청하다. 그래서 영채도 영애씨만큼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이제껏 등장한 언니들은 미모도 출중하고 착하고, 현명했다. 즉, 미모는 예쁘지만 멍청한 점이 영채가 가진 현실성이다.

더욱이 미모도 출중한데, 남자 복이 그야말로 '꽝'이다. 남자친구였던 마준오는 짠돌이에 고시준비생으로 영채에게 유독 돈을 아끼고, 새로 만남 남자는 이혼남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 끝에 새롭게 사랑을 키워갈 대상인 혁규 오빠는 백수다. 어쩜 이렇게 남자 복이 없는 것일까? 하지만 시청자들은 그래서 좋아한다. 미모도 출중한데 백마 탄 왕자님이 하나가 아닌 둘, 셋이 있는 드라마 속 주인공 언니들은 싫증 났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막돼먹은 영애씨>가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비결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실적인 캐릭터 영애씨와 영채 때문이다. 판타지를 걷어내고 현실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우리의 모습을 투영한 점이 시청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만들어 낸 것이다.

판타지는 가라! 오직 리얼리티다!

a 영애씨는 막돼먹은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고 있다.

영애씨는 막돼먹은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고 있다. ⓒ tvn

하지만 이와 함께 극의 내용에 판타지를 걷어내고 오직 리얼리티로만 승부하는 점 또한 <막돼먹은 영애씨>가 가진 매력이다. 버스 치한이 오히려 "당신 같은 사람 엉덩이를 미쳤다고 만져!"하며 소리치고, 멀쩡한 이름이 있지만 회사 사장은 영애씨를 늘 '덩어리'라 부르며, 여직원이 앞에 있는데도 포르노를 보면서 "같이 볼래? 배워둬야 하잖아" 하는 성폭력과 성희롱이 일상화된 회사의 모습이 등장한다.

또한 회사 일 때문에 나가지 않던 교회에 나가 새벽기도를 드리고, 성가대에 들어가 회사 일을 따내야 하고, 토요일 날 하는 일 없어도 출근해야 한다. 이처럼 영애씨가 맞닥뜨린 세상은 우리의 세상과 쌍둥이다.

그래서 판타지가 사라지고, 그 안에 현실이 담겨 한층 <막돼먹은 영애씨>는 공감대를 형성한다. 현실을 보여주면서 그것에 대처하는 영애씨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짜릿한 쾌감을 선사하며 동시에 판타지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드라마가 빛나기 시작했다.

오직 리얼리티를 표방하는 <막돼먹은 영애씨>다. 그런 <막돼먹은 영애씨>가 리얼리티를 극적으로 살리고자 다큐멘터리 기법을 사용해 색다른 재미를 선사해 주고 있다. 모자이크 처리를 해 인터뷰하는 영애씨나, 남자친구의 바람 현장을 습격하는 영애의 모습은 그야말로 리얼리티를 제대로 살린 한 편의 다큐멘터리다. 혹은 현장 르포처럼 구성해 드라마와 다큐, 르포의 만남을 완성시켰다.

또한 곳곳에 내레이션을 삽입해 마치 '인간극장'을 보는 듯한 형식을 취하며 진짜 우리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그래서 <막돼먹은 영애씨>는 평범한 현실 속의 일상이야기를 꺼냄으로써 판타지를 걷어내고 비로소 이복 자매 언니들과는 닮은꼴이면서도 차별화에 성공했다.

그래서 막돼먹은 영애씨와 영채는 현실적인 캐릭터로 분했으며, 환상을 깨고 우리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이런 <막돼먹은 영애씨>가 1시즌으로 종영한다면 무척이나 서운하리라. 앞으로도 지금 모습만큼만 보여준다면 2시즌에서도 인기는 문제없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데일리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데일리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막돼먹은 영애씨 #김현숙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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