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머프의 눈물. 홈에버 상암몰점 비정규직들은 스스로를 스머프라 부른다.오마이뉴스 남소연
"우와아~".
밖에서 새벽 잠을 깨우는 함성소리에 놀라 잠을 깼습니다. 손목시계를 보니 새벽 6시. 경찰투입이 예상되던 시간이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농성중인 이랜드 조합원들과 연대 나온 사람들, 취재나온 기자들이 홈에버 상암점 매장 바닥에 종이박스를 깔고 웅크리고 자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옆에는 민주노동당 문성현 당 대표와 천영세 의원단대표, 노회찬 의원과 심상정 의원이 잠들어 있습니다.
원래 풍찬노숙에 익숙한 민주노동당의 정치인들은 불편한 잠자리에서도 편히 잠을 자는 법을 터득해 왔습니다.
새벽 잠을 깨운 함성소리를 자세히 들어보니, 그 소리는 '바위처럼'이라는 노래소리였습니다. 매장 밖에는 연대 나온 노동자, 시민들 수십명이 밤샘 노숙농성을 했습니다. 밤을 꼴딱 새우고, 아침까지 농성장을 지킨 스스로가 장한 모양입니다. "비정규직 철폐하자"는 구호를 외치는 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 새벽에는 경찰력 투입이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상암점 홈에버 점거농성장은 또 하루 지켜졌습니다.
우리 '스머프 동지'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고 있습니다. 아, 농성 중인 이랜드 그룹 비정규직 동지들을 스스로를 '스머프'라고 부릅니다. 노조에서 맞춘 단체복 색깔이 파란색인데, 허리춤까지 오는 계산대 사이에서 잠을 자고, 고개부터 내밀고 나오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스머프입니다.
한편으로는 힘없고, 부지런하기만 했던 스스로의 모습이 스머프와 닮아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자신들을 부르는지도 모릅니다.
자신을 '스머프'라고 부르는 노동자들
어찌 이 나라는 힘없고 가난한 중년의 여성 노동자들을 20일 넘는 농성으로 내 몬 것일까요. 그 책임의 공방을 따지면,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을 하고 정치를 해온 제 책임도 있을 것입니다.
지난 밤 이곳 홈에버 상암점에 대한 경찰의 강제진압이 있을 것이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곳 농성장에 들어오는 과정은 정말 어려웠습니다. 제가 명색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입니다. 하지만 이 나라 경찰은 저 권영길의 출입도 번번히 막아서서, 한참 실랑이를 하고 난 후에야 농성장 안으로 들어오곤 했습니다.
지난 밤의 경우는 경찰의 저지선 앞 쪽으로 이랜드 그룹이 고용한 용역업체 직원들이 한겹 저지선을 다시 만들었더군요. 그들이 제 출입을 막았습니다.
막무가내, 안하무인이었습니다. 사실 자존심도 상하고, 국회의원인데 이러니 저러니하며 강짜도 부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들어오는 게 중요했습니다. 언젠가 이 책임을 분명히 묻겠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닙니다. 오늘은 '한신의 치욕'이라도 감내 할 수 있습니다. 가랑이 사이로 지나 들어가라면, 그렇게 할 것입니다.
이 비정규직들의 농성 사태가 파국으로 가는 것만은 막아야 하는데, 그 첫 번째 조건은 경찰이 강제해산에 나서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경찰투입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가지입니다. 조합원들 곁에서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들어온다면, 이 정권이 그래도 이곳으로 경찰력을 투입한다면, 그때는 어찌해야 할까요. 정말 그런 상황은 상상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곳 농성장은 사실 농성장이 아닙니다. 이미 여러 언론을 통해 알려졌듯, 최소한의 대피로조차 틀어 막힌 '감금실'입니다.
경찰버스와 경찰병력으로 이중 삼중으로 출입로가 막혀 있습니다. 거의 매일 새벽이면 용역 경비업체 직원들은, 무슨 수를 썼는지 들어와 농성장을 둘러보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합니다.
그럼 농성 중인 조합원들은 호루라기를 불며 이들에 대항합니다. 조합원들은 매일 밤 벌어지는 이 상황을 '민방위 훈련'이라고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