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통해 본질을 묻다

[서평]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4 <크라튈로스>

등록 2007.07.23 09:13수정 2007.07.23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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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이북스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4번째 작품인 <크라튈로스>에는 '이름의 올바름에 관하여'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플라톤 자신이 아닌, 후대 사람들에 의해 붙여진 제목이니 부제를 통해 이번 대화편의 주제를 드러내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기원전 5세기 후반 소피스테스들 사이에서 이름의 올바름에 대해 아는 것은 커다란 관심거리로 이름의 올바름에 대한 주제로 돈을 받고 강의를 하거나 돈을 내고 강의를 듣는 일 또한 흔했던 것 같다.

작품의 내용 중에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어 그러한 사실이 언급되고 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이번 작품의 주제는 이름의 올바름에 대한 상반된 두 견해를 규약주의 대변자 헤르모게네스와 자연주의를 옹호하는 크라튈로스의 입을 빌어 이야기 하고 있다. 또 소크라테스가 이름의 올바름을 통해 두 견해 중 어느 것이 올바른지, 또 상반된 두 견해가 갖는 맹점은 무엇인지를 논거를 빌어 설명해나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

소크라테스는 먼저 본질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면서 프로타고라스의 만물척도론을 비판한다.

이번 대화편은 규약주의자인 헤르모게네스가 자연주의자 크라튈로스와 논쟁을 벌이다가 규약주의적인 견해를 바꾸기 쉽지 않은 헤르모게네스가 소크라테스에게 이름의 올바름이 무엇인지 가르쳐 달라고 요청하는 데서 시작된다.

헤르모게네스 : 소크라테스 선생님, 이 친구 크라튈로스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있는 것들 각각에는 저마다 올바른 이름이 본래 자연적으로 있다. 그리고 이름이란 사람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어떤 것의 이름을 부를 때, 그렇게 부르기로 합의하고 부르는 언어의 조각이 아니다. 오히려 이름을 붙이는 올바른 규칙은 본래 있는 것이며, 그것은 그리스 사람이든 이민족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똑같다"라고요.

소크라테스는 자신은 이름의 올바름에 관해 전문가에게 돈을 내고 강의를 들은 적이 없어 잘 모르겠다며 함께 살펴 볼 것을 제안한다.

그는 먼저 호메로스의 시에 나오는 신의 이름과 추상명사 등을 어원과 자모의 음절에 의해 분석하면서, 이름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형상화 한 것, 용도에 적합한 것, 자모와 음절에 따라 붙여지거나 변화한 것, 이민족의 언어로부터 온 것 등 다각도로 이름의 어원과 의미를 설명한다.

그리고 나서 북을 만드는 자와 북을 사용하는 자가 다르고 북을 사용하는 사람이 북의 본질을 잘 아는 것은 아니 듯 이름 역시 이름을 지은 사람(입법가)과 이름의 기능을 활용하거나 설명하는 사람(가르치는 사람)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이름들을 다각도로 살펴 본 후, 소크라테스가 잠정적으로 내리는 결론은 자연주의를 옹호하는 크라튈로스의 손을 들어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크라튈로스의 자연주의에 대한 비판 역시 잊지 않는다. 그는 화가의 예를 들면서 화가가 적합한 빛깔과 형태를 적절하게 표현할 수도 있지만 보태거나 빼므로 작품을 왜곡시키거나 격을 떨어뜨릴 수도 있음을 지적하며 이름 역시 어떤 것은 잘 붙여졌지만 어떤 것은 잘못 붙여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크라튈로스는 잘못 붙여진 것조차 이름의 범주에 넣는다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이의를 제기한다. 거기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상과 상의 모방물이 완전히 같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우쳐주면서 이름도 잘 붙여진 이름과 잘못 붙여진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라고 충고한다.

역자는 작품 해설을 통해 이름의 올바름에 관한 문제를 인식론적인 문제를 통해서 살펴본 것이며 플라톤은 사물들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가장 올바른 방법은 '사물들 자체를 통해서 배우는 것'이라는 소크라테스의 견해를 택하고 있다고 말한다.

결국 플라톤은 사물에 대한 앎을 얻는 방식(즉 인식론적 사고)을 이름의 올바름이란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했던 것 같다. 이 책 역시 쉬운 번역에도 불구하고 이해나 책장을 넘기는 일이 그리 수월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라튈로스>를 읽는 즐거움을 말한다면, 단어에 담겨진 의미를 어원이나 자모음의 변화를 통해 보여준다는 점일 것이다. 여느 플라톤 전집과 다를 바 없이 책장을 덮고 나면 자기 안의 사유의 나무가 불쑥 자라있음을 감지하는 것은 보너스로 덧붙여지는 즐거움이 아닐 런지.

덧붙이는 글 | 크라튈로스/플라톤 지음. 김인곤.이기백 옮김/이제이북스/9,000원

덧붙이는 글 크라튈로스/플라톤 지음. 김인곤.이기백 옮김/이제이북스/9,000원

크라튈로스

플라톤 지음, 김인곤.이기백 옮김,
이제이북스, 2007


#크라튈로스 #플라톤 #김인곤 #이기백 #이제이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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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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