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m 고공의 목소리 "인간답게 살고 싶다"

[인턴기자 첫 현장 취재기] 50여일 파업 벌인 타워크레인 노동자를 만나다

등록 2007.07.23 14:43수정 2007.07.25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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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인턴기자 생활을 하면서 사회부에 배치된 뒤 첫 취재현장이 결정됐다. 전국건설노동조합 노동자들의 '타워크레인 고공농성' 현장이다. 타워크레인 위에서 점거농성 중인 조합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사회부장의 조언이 있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건설노조 타워크레인분과 1700여 명의 조합원들이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그야말로 '목숨 건' 요구를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7월 20일이 전국건설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한지 무려 57일째 되는 날이었다는 것이다.

a 지난 7월 20일 새벽, 타워크레인 비정규 노동자 350여 명이 전국 공사현장의 타워크레인 110대를 점거하고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지난 7월 20일 새벽, 타워크레인 비정규 노동자 350여 명이 전국 공사현장의 타워크레인 110대를 점거하고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 전국건설사업노동조합

지난 5월 25일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법정노동시간 준수, 위험수당 신설, 국공휴일 보장 등의 요구조건을 내걸고 총파업투쟁을 선언한 지 거의 두 달 접어든 시점이다. 그랬는데도 언론이 무관심하고 사측은 무성의로 일관하자 이날 1700여명의 조합원들이 타워크레인에 올라간 것이다.

서둘러 보도자료를 검토하고 인터넷을 통해 그간의 상황을 체크하는 것으로 사전취재를 마쳤다. 타워크레인분과 교육선전국장 박종모씨에게 전화를 걸어 취재 가능한 현장을 알아봤다. 많았다. 연세대, 이화여대 후문, 서대문, 강남, 광명 등 서울에서만 무려 마흔다섯 곳에서 타워크레인 점거농성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상암동 현장을 취재하기로 결정했다. 박 국장은 "왜 멀리까지 가냐"며 “이대나 연세대가 가까우니 그리로 가라"고 권유했지만 내 마음은 이미 '상암동' 현장에 가 있었다. 공권력 투입이 임박한 홈에버 상암점과 건설노동자 점거현장을 비교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11시 30분] 상암동 도착

상암동 건설 현장에 가려면 이랜드 노조 파업농성이 진행 중인 월드컵 경기장을 지나야 한다. 10시부터 시작된 공권력 투입으로 파업 조합원 전원이 연행된 시점이었다.


'서울에 있는 전경들이 여기 다 모였나' 싶을 정도로 경찰과 전경들이 월드컵 경기장 주변을 새까맣게 메우고 있었다. "시민과 기자분들은 안전한 장소, 보도로 올라가 주세요"라는 경찰의 안내방송이 도로 한 가운데 서있는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월드컵 경기장 왼쪽으로 타워크레인이 보였다.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크레인 점거 농성이 진행중인 공사현장은 어른 키보다 훨씬 높은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었다. 입구를 찾아 주변을 돌다보니 문틈으로 안전모를 착용한 노동자가 보였다. 당연히 조합원 중 한 명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현장관리자였다.


"오마이뉴스 인턴기자 입니다. 고공농성 중인 현장을 취재하러 왔는데 들어가도 될까요?"
"안됩니다. 못 들어와요."

a 세 명의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고공농성을 진행중인 서울 마포구 상암동 건설 현장을 찾았으나 현장 직원들로부터 출입을 저지당해 취재할 수 없었다.

세 명의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고공농성을 진행중인 서울 마포구 상암동 건설 현장을 찾았으나 현장 직원들로부터 출입을 저지당해 취재할 수 없었다. ⓒ 최재인

청천벽력. "타워크레인에 올라갈 때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사회부장의 말을 떠올리며 긴장하고 있었는데 이런, 현장 근처에도 못 가게 생겼다. 타워크레인 위에서 두 명의 조합원이 농성 중이었지만 너무 멀어 모습조차 볼 수 없었다. 타워크레인분과 최석환 쟁의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다.

[1시 20분] 이화여대 후문 건설 현장, 조합원들 '겨우' 만나다

"이화여대 쪽은 출입하기 쉬울 것이다"는 최 부장의 연락을 받고 부리나케 이동했다. 현장은 역시 가려 있었지만, 다행히 출입문이 열려있었다.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현장관리자 두 명이 무전기를 들고 서있었다.

취재하러 온 인턴기자임을 밝히자 관리자 중 한 사람이 타워크레인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저 사람들이 얘기하는 거 믿지 마세요. 하루에 300~400만원씩 버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면 제가 위에 계신 분들을 직접 만나서 사실관계 확인 좀 해 볼게요."

그러자 관리반장 김모씨가 나와 "위에는 못 올라가니까 우리 사장이랑 만나서 얘기하라. 지금은 회의중이니까 잠깐만 계시라"며 나를 밀어냈다. 출입문을 나서는 순간 '다시 못 들어오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지만, 나는 혼자고 저들은 네 명이라 순순히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a 이화여대 후문 건설 현장. '근로기준법 적용하라'는 펼침막이 50m 상공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의 목소리를 대신하고 있다.

이화여대 후문 건설 현장. '근로기준법 적용하라'는 펼침막이 50m 상공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의 목소리를 대신하고 있다. ⓒ 최재인

'아파트' 말고 '아파트 짓는 사람들'의 이야기

오후 3시 15분. 다시 한 번 최 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조합원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없겠냐고 물었다. "식사보급을 맡은 조합원들을 그리로 보내겠다"는 말을 듣고, 한 시간 뒤 현장 근처로 온 조합원들을 만났다. 승용차 안에서 타워크레인 조합원 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 현재 전국의 농성 진행상황은?
"전국에서 350명 정도의 조합원이 110대의 크레인을 점거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100여 명 이 45대를 점거하고 있다. 광주 전라 지역에는 18대, 인천에 15대, 대전 충청지역에 28대가 점거중이다."

- 노동시간, 안전문제 등 요구조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하루 8시간 노동에 2시간 연장근무가 거의 강제적으로 요구된다. 거기다 토요일까지 일을 해야 추가수당 포함 230만원정도를 받는다. 어떤 사람들은 400~500만원 받으면서 파업한다고 비난하지만 누가 타워기사에게 그 많은 돈을 주나. 우리는 주 5일제 꿈도 안 꾼다. 1주일 동안 60시간 일하는 거 44시간만 할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만 지켜달라는 것이다.

파업기간 동안에만 타워가 넘어가서 네 명이 다쳤다. 기사가 동물원 원숭이도 아닌데 한번 올라가면 마음대로 내려올 수도 없다. 화장실 가고 싶어도 무전을 보내야 관리자가 와서 열쇠로 열어준다."

- 주기적 실업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
"1년에 3개월 정도는 실업상태다. 쉬고 싶어서 쉬는 게 아니라 짤리는 거다. '현장공사종료'를 기준으로 회사와의 계약이 종료되기 때문이다. '현장종료' 시점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사측은 무조건 1년 이하로 하려하고, 노조측에서는 타워가 철거되는 시점까지를 '현장종료'로 보고 있다. 1년 이상 고용하면 퇴직금을 줘야하기 때문에 그 전에 다 자른다.

정규직으로 고용되어야 실업문제 해결되지만, 거기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 이랜드 노조 사태처럼 정부와 사측이 강경하게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한테는 관심조차 없는 것 같다. 타워가 멈추면 공사가 마비된다고 야단이고, 아파트 분양가도 계속 올리고 있으면서 왜 무관심한지 모르겠다. 3개월이 될지, 4개월이 될지 모르겠지만 사측과 협상될 때까지 위에서 버틸 것이다."

50m 고공의 목소리, "인간답게 살고 싶다"

서울 공덕동 이수건설현장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정민호(전라도 지부장)씨와 전화연결을 시도했다. 밑에서 줄을 연결해 올려주는 식사로 하루 두 끼만 먹고 있다는 정씨는 "두 달째 무보수 상태다. 빌린 돈으로 집에 10kg짜리 쌀을 사서 보낸 조합원도 있다"며 "그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부장 다섯 명이 6월 26일부터 타워크레인 고공농성에 돌입했지만 어느 언론에서도 보도하지 않았다"고 말할 때 정 지부장의 목소리는 격앙되어 있었다. 그 떨림이 수화기를 타고 전해졌다.

a 타워크레인에 묶어 놓은 펼침막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타워크레인에 묶어 놓은 펼침막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 최재인

건강 주의하시라는 인사를 건네며 마지막 말씀을 부탁드렸더니 정 지부장은 "시간이 지나면 세상이 좋아져 저절로 8시간만 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가 직접 나서야 한다. 건설노동자 뿐만 아니라 더 어려운 조건에 있는 사람들 모두 인간답게 사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목숨을 건 50m 고공농성의 첫날 해가 저물어 가는 저녁 7시, 최석환 쟁의부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대전, 경기 광명의 고공농성 현장 주변에 있던 조합원 7명이 연행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타워크레인처럼 크레인 조종사들의 점거농성 역시 순탄치만은 않았다. 오죽하면 '고공농성'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을 택했을까.

타워크레인 위에서 위태롭게 일했던 이들. "이대로는 못 살겠다"며 세상의 무관심을 원망하면서 그들은 다시 그들의 사업장인 크레인으로 올라갔다.

기사 송고 전 들려온 반가운 소식, 타결

취재가 끝나고 기사를 작성했다. 그러나 기사 출고를 앞두고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내가 취재한 다음날(21일), 그러니까 타워크레인 조종사 총파업 58일째 되는 날, 노동조합과 사용자단체(한국타워크레인협동조합)사이에 극적으로 단체협상 타결이 이뤄진 것이다.

21일 오전 7시부터 서울지방노동청 남부지청에서 열린 본교섭에서 법정 노동시간 준수 등의 내용이 담긴 잠정합의안에 서명했다. 노사는 하루 10시간 근무하도록 돼 있는 기존 노동조건에서 2시간 강제연장노동을 폐지해 하루 8시간(주 44시간)노동을 원칙을 하는데 합의했고 면허수당 등 복직수당을 신설했다고 한다.

a 상암동에서 신축중인 건물. 뒤쪽으로 '농성장'인 타워크레인이 보인다.

상암동에서 신축중인 건물. 뒤쪽으로 '농성장'인 타워크레인이 보인다. ⓒ 최재인

또 그동안 일요일을 제외하고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이 보장받지 못했던 국공휴일 중 1월 1일, 어린이날, 석가탄신일, 성탄절 등 공휴일 4일을 유급 보장하기로 했다. 주 44시간 노동은 여러 파장을 고려해 10개월 유예기간을 둬 내년 5월 1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반가웠다. 물론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가 아닌 나로서는 반가울 수 있어도 크레인 노동자들에게는 많이 아쉬울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요구들이 총파업 58일 만에야 이뤄졌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서울경기 인천경인 대전충청강원 등 타워크레인분과 지부장들이 지난 6월 26일 서울 공덕동 아파트신축공사 현장에서 고공농성에 들어간 지 26일만이며 이것으로도 안돼 전국에서 동시다발 고공농성을 벌인지 하루 만에 일이었다. 다행히 고공농성 노동자들은 모두 크레인에서 내려왔다고 한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얻기가 이렇게 힘들구나 생각이 들었다.

서울 등 대도시 공사현장마다 높게 서있던 타워크레인. 그동안은 무심히 지나쳤으나 이제는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타워크레인 조종사 90%이상이 현장파견 비정규직이고 현장 종료 후에는 평균 3~5개월 주기적으로 실업이 반복되고, 하루 평균 10~12시간 노동으로 노동자 80%가 척추질환 등 직업병을 호소하고 있는, 우리나라 건설노동자들의 현실을 생생히 느꼈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타워크레인 재해로 건설노동자 150명이 사망하고 평균 13.5일에 한번꼴로 타워크레인 사고가 발생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은 언제 달라질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최재인 기자는 <오마이뉴스> 6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덧붙이는 글 최재인 기자는 <오마이뉴스> 6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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