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행심의 천의 얼굴정애자
무대 위의 배우 무대 밖의 배우
15년도 더 넘었다. 정행심씨가 부산연극제에서 조연상을 받아 그녀가 운영하는 가업의 가게를 찾았을 때, 그녀는 갓난아기를 업고 술안주 준비에 바빠서 인터뷰 나온 기자에게 시간의 짬을 내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대충 보고 느낀 것을 기사화한 적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가난한 연극배우로 평생을 살아온, 그녀의 무대 밖의 삶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연극 밖의 그녀는 작은 목로주점을 하며 '굳세어라 금순이'처럼 아이 둘을 공부시키기 위해 억척 같이 살아가고 있다.
무대 위에서 그녀가 타인의 삶을 대신 표현한 작품의 편수는 70~80편 이상이다. 대부분 조연이지만, 그녀의 조연은 언제나 주연보다 빛났다. '그녀가 조연을 해주지 않으면 저런 연극은 나오지 않았을 거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녀는 가히 천의 얼굴이다.
<태자 햄릿>에서 무당 역과 <환생구역>에서의 꼽추 천사의 역에 이르기까지, 최근 밀양연극제 <수전노>의 경찰 연기까지. 그녀의 연기는 천개의 가면을 바꾸어 쓰는 것 같다. 하나 같이 왜 그녀가 중앙(서울)에 진입하지 않고, 지역(부산)에 안주하고 있는가 의아해 한다.
황정민도 놀란 그녀의 연기
영화 <사생결단>에서 열연한 그녀의 역할은 마약 밀매 아줌마. 괴짜 형사 황정민에게 취조 받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없어서는 안 된다. 마약밀수범을 쫓는 괴짜 형사 황정민과 음부 속에 마약을 넣고 들어와서 그걸 황정민에게 빼앗기지 않으려 노력하는 그녀의 사생결단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맥 빠지지 않았을까. 이 영화를 함께 찍은 황정민마저, 그녀가 촬영장에서 사라진 뒤 스태프에게 '그 아줌마 진짜 연기 끝내준다'고 '그녀의 연기에 깜짝 놀랐다'고 했단다.
그러나 그녀의 연기는 소금이나 양념같은 조연의 연기에만 결코 머물지는 않았다. 그녀가 주연이라서 더욱 빛난 <늙은 창녀의 노래>는 그녀만이 갖고 있는 캐릭터를 충분히 발산해서 많은 관객에게 호응을 얻었다. 뿐만 아니라, 올 봄에 출연한 <백화>등 여타 다수의 작품 속에서 그녀가 보여준 주연 연기들은 예쁘고 꾸미고 몸짓이 큰 대사를 하는 연기와는 그 경계가 엄연히 다름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녀는 모노드라마의 주연을 꿈꾼다
연극은 무얼까. 연극은 일상과 예술적 일상의 혼합 양식이다. 어느 예술보다 현실과의 타당성이 교류되어야 한다. 그녀의 연극의 세계관은 "배우는 무대 위에서만, 무대에서 내려오면 철저한 생활인이 된다." 때문에 그녀를 연극 밖에서 만나는 관객들은 그녀의 이러한 일상성에 더욱 친밀감을 가진다. 그래서 그녀가 하는 목로주점은 부산지역의 문화예술인의 새 둥지 역할을 해 준다.
그녀의 삶은 오직 연극이라는 외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누구도 그녀의 이 외길에 조명을 비추지 않았다. 그러나 모두 그녀가 진짜 연기 잘 하는 배우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녀의 연기를 사랑하는 극단 61- '연사모' 회원들은, 그녀가 배우로써 그녀만의 캐릭터의 진면목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