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당신의 그 넓은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포토에세이] 제주의 바다

등록 2007.07.30 17:49수정 2007.07.3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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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에서 바라본 등대 ⓒ 김민수

언제 찾아가도 그 자리에 당신이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입니다.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넓은 품을 가지고 있는 당신, 까치발을 들지 않고도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하늘과 연인처럼 포옹을 하고 있습니다.

여름이 오면 더욱 더 당신이 그리워집니다. 바다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내게 바다같은 바다는 제주의 바다뿐인가 봅니다. 사실, 당신이 그리워 며칠 전 어느 바다를 다녀왔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하나인 그 바다임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더 그리워지는 것은 오랜 시간 당신과 함께 했던 추억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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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절리 ⓒ 김민수

가까이 가지 못하고 먼발치에서만 바라볼 수 있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냥 바라본다는 것, 때론 그것도 사랑이라는 것을 그대를 떠난 뒤에야 알았습니다. 그래요. 당신이 떠난 것이 아니라 내가 떠난 것입니다. 변한 것은 당신이 아니라 나였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그립다고 하면서도 당신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 거짓말일지도 모릅니다.

타오름달로 달려가는 햇살이 따갑습니다. 많은 이들이 당신에게로 달려가겠지요. 그들 하나하나 품어줄 수 있겠지요? 예전에 나를 품어주었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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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화바다에서 바라본 우도 ⓒ 김민수

당신은 한결같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지만 단 한 번도 같은 모습으로 다가온 적은 없었습니다. 단 하루도 새롭지 않은 날이 없었으면서도 한결같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모습은 모순이 아니라 충만한 합일이었습니다.

그날 새벽은 참으로 추웠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렇게 저리게 당신이 그리울 줄 알았더라면 그 날 더 오래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을 그랬습니다. 당신을 만나는 일이 일상이었을 때에는 그것이 그렇게 소중한 것인지 몰랐었지요. 어렴풋하게 느꼈을 뿐입니다. 떠나면 당신이 많이 그리울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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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화방파제 ⓒ 김민수

어떤 날은 하늘과 하나인 듯 하다가도 어떤 날은 너무나 분명하게 당신은 선을 그었습니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너무도 또렷해서 날이 잘 선 칼날같이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날은 흐리멍덩하게 살아가는 나를 돌아보았습니다. "예"와 "아니오"를 분명하게 말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당신을 보면서 그렇게 살고 싶다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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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리앞바다 ⓒ 김민수

어떤 날 당신은 더 깊은 바다로 달려갔지요. 당신 품에 더 많은 이들을 품고 싶어 하는 당신의 속내를 드러냈는지도 모르겠군요. 당신이 속내를 드러내면 그 곳은 풍성한 텃밭이었습니다. 골갱이 끝으로 느껴지는 느낌과 '탁!'하며 들려오는 작은 소리로 당신이 주는 선물들을 하나 둘 바구니에 담기도 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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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앞바다의 방파제 ⓒ 김민수

그러나 늘 그렇게 잔잔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범접하지 못할 높은 파도로 온 속내를 다 뒤집어 새 생명 움트게 하는 당신을 보면서 내 삶에 닥쳐오는 폭풍우가 나를 새롭게 변화시켜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폭풍우, 그것은 당신이 그랬듯이 홀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더러운 것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였던 당신이 새롭게 되는 거룩한 시간이 바로 폭풍의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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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 광치기 앞바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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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지코지 ⓒ 김민수

그리고 다시 잔잔한 바다, 사람들을 당신 곁에 세우곤 하지요. 언제 그랬냐는 듯 당신은 시치미를 떼지만 당신을 오랫동안 바라본 사람들은 알지요. 당신은 뭔가 끊임없이 우리에게 뭔가를 주고 싶어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간혹 바다에 홀로 선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 사람 하나도 허투로 대하지 않는 당신을 봅니다. 그 많은 사람의 속내를 다 털어놓아도 다 받아주는 당신은 바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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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리에서 바라본 성산방파제의 등대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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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지코지 ⓒ 김민수

바다, 당신의 그 넓은 품에 안기고 싶은 계절입니다. 그 언젠가 그랬듯이 어두운 밤바다에서 소리로 당신을 보고, 미명의 아침에 눈으로 당신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고, 파도에 실려 온 바람에 온 몸 흠뻑 젖고 싶은 그런 계절입니다.

많은 이들이 당신이 그리워 당신을 찾아가겠지요. 그리움에 목마른 사람들, 당신이 넉넉히 안아주겠지요. 나도 그들과 함께 당신의 그 넓은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바다 #제주항 #등대 #방파제 #섭지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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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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