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 미국영화를 너무 많이 본거 아냐?

진영논리에 함몰된 네티즌의 신 메카시즘

등록 2007.08.02 08:49수정 2007.08.02 08:50
0
원고료로 응원
피랍된 젊은이들은 죽을 만큼 큰 죄를 짓지 않았다.

아프간 인질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벌써 아직 살아남은 21명의 목숨을 놓고 인질들의 책임론을 거론하는 네티즌들의 댓글은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최소한의 성찰도 보이지 않는다. 여론은 처음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왜 그들이 위험한 지역을 스스로 찾아갔는가?"라는 당사자 책임론과 기독교 단체의 부적절한 선교행위를 비판하는 여론이 주류를 이루었고 필자 또한 그런 취지의 기사를 쓴 바 있다. 필자가 그런 내용의 기사를 쓰게 된 배경은 '탈레반이 인질을 모두 살해하기까지 하겠는가?'라는 기대 섞인 '설마?' 심리가 작용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은 비극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처음 살해된 배목사가 "몸이 아파서 사살했다"던 탈레반이 두 번째 희생자인 심상민씨를 어떤 이유로 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또 다른 여성 인질 두 사람이 위독한 상태라고 전해지는 등 인질사태는 대형 살해극이란 엄청난 비극으로 연결될 개연성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인질들이 굶주림과 질병 그리고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다가 살해당할 만큼 그들은 큰 죄를 짓지 않았다. 피랍된 인질들 대부분이 2~30대의 꽃다운 젊은이들이다. 비록 교회의 선교방법이 잘못되었고, 탈레반이 이슬람 지역에서의 기독교 포교활동이 사실상 종교적 침략으로 간주한다 할 지라도 우리까지 그들과 같은 논리로 그들의 죽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면 우리 사회가 너무 비정하고 무책임하다.

그들이 단지 이런 상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선교를 너무 막연하고 안이하게 생각했다는 이유로 우리가 그들의 생명을 쉽게 포기한다면 그들의 조국으로서 그들의 어른으로서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그들의 부적절한 행동을 꾸짖는 것은 무사히 돌아왔을 때 해도 늦지 않다. 하지만 경각에 달린 그들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대해서도 진영논리에 함몰된 적지 않은 수의 네티즌이 그들의 죽음을 기정사실화 하거나 "우선 생명을 살리고 보자"는 주장에 대해 메카시적 이지메를 가함으로서 또 다른 네티즌 댓글 테러로 이어지는 것은 개탄할 일이다.

"미국이 테러리스트와 협상 않는다고?"

인질 사태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위험지역을 방문한 그들 스스로에게 있지만 그 근본에는 아프간을 무력으로 침공하고 한국의 파병을 강요한 미국의 패권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또한 탈레반이 협상조건으로 제시한 포로교환 대상자 중 중요 인질은 미국의 관리하에 있으며, 사실상 자주권이 없는 아프간 정부로서는 미국의 사인 없이는 협상조차 제대로 진행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오늘날 아프간의 현실이다.

피랍사태가 장기화 되고 비극적으로 발전하면서 우리 사회가 미국의 책임론을 거론하고 인질을 구하는 데 미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요구하는 것은 원치 않는 파병을 한 동맹국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기본적인 요구이다.

a

영화 '에어포스 원'의 한 장면 "테러리스트와 협상하지 않는다"는 말은 할리우드 대테러 영화의 가장 상투적인 대사이다. ⓒ 영화홈페이지


그런데 우리 네티즌들은 아무래도 다이하드나 에어포스원 같은 할리우드 영화를 너무 많이 보고 할리우드 식 사고에 동화된 것 같다. 미국이 먼저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서 "테러리스트와 협상하지 않는 것은 미국의 원칙"이라고 떠벌이며 그것이 대단한 철학이라도 되는 듯 여기저기 몰려다니며 인질을 구출하자는 주장에 대해 비난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절대 테러리스트와 협상하지 않는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미국이 지난해 1월 이라크에서 납치된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지의 '질 캐롤' 기자를 석방하는 조건으로 포로 5명을 석방하고 웃돈까지 얹어주었다"는 '서프라이즈' 기사는 "테러리스트와 협상은 없다"는 미국의 원칙이란 것이 그들이 필요할 때만 지켜지는 사실상의 무원칙임을 잘 증명하고 있다.

사지에 방치된 경각에 달려있는 21명의 젊은 목숨을 놓고 "미국은 테러리스트와 협상하지 않는다"며 미국의 입장을 두둔하느라 목청을 높이는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이 네티즌이다 보니 영화 속의 가상현실과 실제상황을 구분하지 못하는 가상현실 중독증에 빠진 게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물에 빠진 사람은 건져 놓고 볼 일이다.

네티즌들이여! 제발 경망스런 그 입을 잠시만이라도 자제할 수 없겠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한겨레,다음,더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인터넷한겨레,다음,더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탈레반 #심상민 #아프가니스탄 #인질 #네티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와 음악 오디오 사진 야구를 사랑하는 시민, 가장 중시하는 덕목은 다양성의 존중, 표현의 자유 억압은 절대 못참아,


AD

AD

AD

인기기사

  1. 1 3일마다 20장씩... 욕실에서 수건을 없애니 벌어진 일
  2. 2 참사 취재하던 기자가 '아리셀 유가족'이 됐습니다
  3. 3 23만명 동의 윤 대통령 탄핵안, 법사위로 넘어갔다
  4. 4 [단독] '윤석열 문고리' 강의구 부속실장, 'VIP격노' 당일 임기훈과 집중 통화
  5. 5 김흥국 "'좌파 해병' 있다는 거, 나도 처음 알았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