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의 '골프 사랑'은 놀라워

[주장] '반값 골프장'은 재경부 관료들의 전시행정

등록 2007.08.02 10:35수정 2007.08.02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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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북부지역의 한 골프장. (항공촬영) ⓒ 오마이뉴스 권우성


노무현 정부 초기 130여개 수준이던 한국의 골프장 숫자는 이제 270개를 돌파하고 있다. 지금도 1백여 곳에서 골프장이 건설 중이고, 계획 중인 곳은 수백, 수천 곳이다. 노무현 정부 들어 수년 만에 한국은 골프장 개수 세계 16위, 국토면적 대비 골프장 넓이(0.2% 이상)로 세계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골프 공화국'을 건설한 셈이다. 기네스북 감이다.

그것도 모자라 정부는 지난 30일, 권오규 경제부총리(재정경제부 장관) 주재로 경제정책조정회의를 열고 '쓸모없이 버려졌던 농지(?)'를 활용해 '반값 골프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골프장 건설을 촉진하고 골프장 이용료를 반으로 낮추기 위해, '농민들에게 농지의 골프장 전용을 유도하겠다'고 한다. 골프장 사업자에게 법인세와 지방세는 물론 농지조성 부담금도 감면해 주고, 골프장에 있어야 할 부대시설과 운영시설 의무 설치로 자율로 하겠단다.

더 나아가 골프장 진입도로 공사비 50%를 국가에서 지원하고, 10월에는 범정부 차원의 골프장 지원팀을 발족시켜 추가 지원책도 마련하겠다고 했다.

참으로 노무현 정부의 골프 사랑이 놀랍다. 이미 정부는 2004년에도 골프장 지원을 위해 대대적인 정부혁신을 한 바 있는데, 3년 만에 또다시 새로운 이벤트를 시작하고 있다.

골프장 하나 만드는데 도장이 780개가 필요해?

노 정부의 골프장 지원이 본격 시작된 것은 2003년말쯤이다. 당시 '재계의 미스터 쓴소리'로 불렸던 박용성 대한상의 의장(전 두산그룹 회장)이 '한국은 규제의 백화점이다', '골프장 하나 만드는데 도장이 780개나 필요하다'라고 주장하면서, '3류 수준의 정치권'은 '2류 수준의 경제계'를 지원하기 위해 규제완화에 발 벗고 나섰다.

물론 도장 숫자를 어떻게 셌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골프장 업주 내부의 결재까지 포함한 것인지, 자문 인사들의 도장까지 다 합한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노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은 이 때부터 더욱 속도가 났고, '골프장 도장 780개'는 총리와 장관이 가장 애용하는 개념이 됐다. 골프장 지원은 '규제완화'의 상징이 됐고, 경제 정책의 방향이 됐다.

그러나 정부가 TF팀을 구성해 줄인 도장수는 신통치 않았다. 규제 때문에 골프장 건설이 어렵다는 경제계의 하소연은, 사실 돈줄이 부실해 공사와 부도를 반복하던 몇 업체의 변명에 불과했다. 골프장 사업의 수익을 확신하지 못하던 업체들이 투자를 망설였던 것에 원인이 있었다.

환경단체들의 반대 운동이 전개된 곳은 전국에 걸쳐 몇 건 정도였다. 때문에 거창하게 출발했던 골프장 규제완화는 '지자체들이 골프장을 위해 원스톱 창구를 개설할 것'을 요청하고, 환경영향평가 협의 기간을 축소하는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효과는 엉뚱한데서 나타났다. 절대로 대중적일 수 없는 골프가, 규제 때문에 비싸진 것으로 오해가 생기기 시작했다. 온 국민들이 행복한 스포츠를 즐길 수도 있는데, 터무니없는 환경단체들이 재를 뿌려온 것으로 선전됐다. 특히 대통령까지 나서 골프를 치며, 골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겠다고 앞장섰다. 이해찬 전 총리는 태풍의 와중에도, 설악산 지역에 불이나 국보인 낙산사가 불타는 중에도 골프장을 지킴으로써, 골프산업의 중요성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고서야 골프업체들이 움직였다. 노태우 정권 시절 골프장 허가를 받아 놓고, 10여 년간 사회의 눈치를 보던 그들이 돈을 굴리기 시작했다. 많은 지자체들이 골프장 유치에 팔을 걷어붙이고, 수많은 재력가들이 골프장 계획서를 만드느라 바빠졌다.

이제 지자체들조차도 학교나 병원시설에 대해서는 딴지를 걸 수 있어도, 골프장에 대해서는 뭐라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용감하게 골프장 건설 계획을 반려했던 천안시, 여주시 등은 모두 행정소송에서 졌고, 결국 사업 허가를 해줘야 했다. 환경단체들은 노 정부 들어 단 한 개의 골프장도 막아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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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세


골프장 늘어나도 해외 골프여행은 줄지 않아

두산그룹 전 회장 박용성씨. 지난 20년간 170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외화를 밀반출하고, 형제간의 재산다툼을 법정에서까지 벌이다 사법처리를 받은 그의 유훈이, 노무현 정부를 통해 멋지게 집행된 것이다.

사실 한국에서 골프는 절대로 대중화 될 수 없다. 국토가 좁아 토지가격이 높고, 산악이 많아 대규모 환경파괴가 불가피하며, 혹독한 겨울에 이용이 어렵고, 골프 잔디에 적당한 기후가 아니라 많은 농약과 지하수를 사용하기 때문에, 골프 이용료가 극단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는 탓이다. 그럼에도 진행하겠다는 반값 골프장은 환경파괴와 국토난개발에 대한 비용을 물리지 않겠다거나, 국민의 세금을 부당하게 골프장에 지원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정부가 '나라 밖으로만 나가는 관광수요를 국내로 끌어들여 관광서비스산업을 육성하고, 고질적인 해외 여행수지 적자 문제도 해결하는 등 '1석2조'의 효과를 거두겠다'는 것도 전혀 사실과 다르다. 2004년에도 그렇게 주장했는데, 골프장이 두 배로 늘어난 지금 해외골프 여행객은 더욱 늘어나 있다. 해외 골프여행은 국내에서 골프를 칠 수 없는 겨울(12-2월)에 집중되기 때문에, 골퍼들의 증가는 해외 골프여행객의 증가로 이어진 때문이다.

특히, 기업도시에 대해 또 특혜를 주겠다는 것은 해도 너무했다. 말로만 기업도시인 태안기업도시, 무주기업도시, 전남 J 프로젝트 등은 모두 대단위 골프장을 건설하고 있다. 그런데도 노 정부는 기업도시 시행사에 주민들의 토지를 수용할 수 있는 권한까지 쥐어줬다. 그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기업도시에 세금감면은 물론, 도로지원까지 들고 나왔다. 골프장을 만들겠다는 기업들과 노무현정부 사이의 내밀한 관계가 궁금할 뿐이다.

또 정부가 일본의 골프장 숫자를 들먹이며, 신규 골프장 증설을 주장하는 것은 역사의 맥락을 외면한 악의적인 선전이다. 일본의 골프장 열풍이 결국 90년대 부동산 거품의 주요 원인이 됐고, 거품붕괴 과정에서 400여 업체가 망했다. 그런데 골프장 건설의 근거를 기껏 일본 골프장 숫자에서 찾다니, 정부의 근거찾기가 너무 불성실하게 보인다.

골프 부양론은 전 국토를 훼손하는 파괴적인 부동산 경기부양 정책일 뿐이다. 건전한 국민레저와도 맺어질 수 없고, 지속가능한 국토이용과도 연결되지 않는다. 해외여행에 따른 외화유출 억제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하다못해 골프장 업체들이나 부동산 업체들조차도 정부의 정책에 심드렁한 반응이다. 골프장의 과잉 공급이 그들에게조차 반갑지 않다.

'반값 골프장' 같은 황당한 발상은 얼치기 재경부 관료들이 생각해 낸 전시행정에 다름 아니다. 토건-개발주의 세력과 야합한 노 정부의 형편없는 정책능력을 보여주는 증거일 뿐이다. 골프장이 서비스산업을 대표한다는 발상도 놀랍거니와, 골프장 증설로 경제 회복이 가능하리라고 예상하는 단견에 할 말이 없다.

"가난한 이들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던 노무현 후보와 골프업체와 골프 애호가들을 위해 온갖 특혜를 조작하고 있는 노 정부는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세상에 이런 코미디 같은 일이 또 있을까 싶다.
#골프 #반값골프장 #재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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