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북부지역의 한 골프장. (항공촬영)
오마이뉴스 권우성
노무현 정부 초기 130여개 수준이던 한국의 골프장 숫자는 이제 270개를 돌파하고 있다. 지금도 1백여 곳에서 골프장이 건설 중이고, 계획 중인 곳은 수백, 수천 곳이다. 노무현 정부 들어 수년 만에 한국은 골프장 개수 세계 16위, 국토면적 대비 골프장 넓이(0.2% 이상)로 세계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골프 공화국'을 건설한 셈이다. 기네스북 감이다.
그것도 모자라 정부는 지난 30일, 권오규 경제부총리(재정경제부 장관) 주재로 경제정책조정회의를 열고 '쓸모없이 버려졌던 농지(?)'를 활용해 '반값 골프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골프장 건설을 촉진하고 골프장 이용료를 반으로 낮추기 위해, '농민들에게 농지의 골프장 전용을 유도하겠다'고 한다. 골프장 사업자에게 법인세와 지방세는 물론 농지조성 부담금도 감면해 주고, 골프장에 있어야 할 부대시설과 운영시설 의무 설치로 자율로 하겠단다.
더 나아가 골프장 진입도로 공사비 50%를 국가에서 지원하고, 10월에는 범정부 차원의 골프장 지원팀을 발족시켜 추가 지원책도 마련하겠다고 했다.
참으로 노무현 정부의 골프 사랑이 놀랍다. 이미 정부는 2004년에도 골프장 지원을 위해 대대적인 정부혁신을 한 바 있는데, 3년 만에 또다시 새로운 이벤트를 시작하고 있다.
골프장 하나 만드는데 도장이 780개가 필요해?
노 정부의 골프장 지원이 본격 시작된 것은 2003년말쯤이다. 당시 '재계의 미스터 쓴소리'로 불렸던 박용성 대한상의 의장(전 두산그룹 회장)이 '한국은 규제의 백화점이다', '골프장 하나 만드는데 도장이 780개나 필요하다'라고 주장하면서, '3류 수준의 정치권'은 '2류 수준의 경제계'를 지원하기 위해 규제완화에 발 벗고 나섰다.
물론 도장 숫자를 어떻게 셌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골프장 업주 내부의 결재까지 포함한 것인지, 자문 인사들의 도장까지 다 합한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노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은 이 때부터 더욱 속도가 났고, '골프장 도장 780개'는 총리와 장관이 가장 애용하는 개념이 됐다. 골프장 지원은 '규제완화'의 상징이 됐고, 경제 정책의 방향이 됐다.
그러나 정부가 TF팀을 구성해 줄인 도장수는 신통치 않았다. 규제 때문에 골프장 건설이 어렵다는 경제계의 하소연은, 사실 돈줄이 부실해 공사와 부도를 반복하던 몇 업체의 변명에 불과했다. 골프장 사업의 수익을 확신하지 못하던 업체들이 투자를 망설였던 것에 원인이 있었다.
환경단체들의 반대 운동이 전개된 곳은 전국에 걸쳐 몇 건 정도였다. 때문에 거창하게 출발했던 골프장 규제완화는 '지자체들이 골프장을 위해 원스톱 창구를 개설할 것'을 요청하고, 환경영향평가 협의 기간을 축소하는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효과는 엉뚱한데서 나타났다. 절대로 대중적일 수 없는 골프가, 규제 때문에 비싸진 것으로 오해가 생기기 시작했다. 온 국민들이 행복한 스포츠를 즐길 수도 있는데, 터무니없는 환경단체들이 재를 뿌려온 것으로 선전됐다. 특히 대통령까지 나서 골프를 치며, 골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겠다고 앞장섰다. 이해찬 전 총리는 태풍의 와중에도, 설악산 지역에 불이나 국보인 낙산사가 불타는 중에도 골프장을 지킴으로써, 골프산업의 중요성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고서야 골프업체들이 움직였다. 노태우 정권 시절 골프장 허가를 받아 놓고, 10여 년간 사회의 눈치를 보던 그들이 돈을 굴리기 시작했다. 많은 지자체들이 골프장 유치에 팔을 걷어붙이고, 수많은 재력가들이 골프장 계획서를 만드느라 바빠졌다.
이제 지자체들조차도 학교나 병원시설에 대해서는 딴지를 걸 수 있어도, 골프장에 대해서는 뭐라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용감하게 골프장 건설 계획을 반려했던 천안시, 여주시 등은 모두 행정소송에서 졌고, 결국 사업 허가를 해줘야 했다. 환경단체들은 노 정부 들어 단 한 개의 골프장도 막아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