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내년이면 정규직 된다고 생각했는데..."

연세의료원 파업 장기화, 무엇이 문제?... 병원 "적자예산 짜란 말인가"

등록 2007.08.05 21:59수정 2007.08.05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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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어느 날 아침, 햇살은 어김없이 밝았지만 조원호(가명·30대·물리치료사)씨의 마음은 먹먹하기만 했다.

"이상했어요. 아침에 일어났을 때 출근할 데가 없고 내가 원해서 (직장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나는 최선을 다해서 몸이 부서져라 일했는데…."

그러나 몇 년전 3월의 아침은 그에게 자랑스럽고 새로운 희망의 날이었을 것이다.

"샤워를 했죠. 땀으로요…. 내가 치료를 하는건지, 뭐하는지 모르고 하루가 지나갔어요. 개인적으로 부담스러웠지만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4년동안 4점대가 넘는 학점으로 과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조원호씨는 졸업을 앞두고 국가고시인 물리치료사 시험에 합격했다. 시험을 치른 조씨는 전국에서 내로라 하는 인재들이 모인다는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재활병원 인턴치료사에 지원했다.

100대 1에 이르는 경쟁률을 뚫고 당당하게 합격한 조씨.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재활병원 인턴치료사는 물리치료사가 되기 위한 출발에 있어 절반의 성공인 셈이었다.

"인턴들은 오전 7시까지는 출근을 해야돼요. 원래 업무는 오전 8시 30분부터인데 그렇게 늦게 출근하면 찍히죠. 일단 아침에 출근해서 문 열고, 컴퓨터 켜고, 청소하고, 가습기 갈아주고, 수건 교체하고…. 아! 부장님이 키우는 화분들에 물도 줘야 해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오전 7시 40분 정도가 되고 다른 선생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죠."


당시의 인턴 생활의 일상을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매년 3월과 대학병원의 인턴치료사


매년 12월 중순경이 되면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재활병원은 재활치료사 인턴 모집을 공고한다.

이에 따라 전국의 물리치료학과 졸업학기에 있는 학생 중에서도 학과 점수가 뛰어난 학생들이 인턴에 지원하고, 서류전형과 면접을 통과한 최종 합격자들이 2월부터 각 분과별로 해당 물리치료팀 치료사들에게 교육을 받는다.

이렇게 약 1개월 동안 교육을 받은 인턴치료사들은 3월부터 실제 치료업무에 투입된다. 이들은 크게 물리치료사와 작업치료사로 나뉘어 주로 중추신경계(뇌에서 척추 부분)에 손상을 입은 환자들을 치료하게 된다.

대학병원은 질높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인 동시에 학생들의 '실습의 장'이기도 하다.

대학병원의 3월은 의사들뿐 아니라 간호사와 각 분야의 치료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인턴과 레지던트들이 배치된다. 인턴들은 긴장 속에서 치료행위에 임하게 된다고 조씨는 설명했다.

"치료 과정에서 골절사고가 난 적이 있어요. 물론 저는 아니었지만. 인턴치료사들은 뇌손상을 입은 환자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몰라서 넘어뜨릴 수도 있고, 혹은 긴장해서 노인분들 같은 경우 뼈를 꽉 잡아서 부러뜨릴 수도 있어요. 그래도 제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그런 하루하루를 잘 버텼기 때문일 거예요."

조씨는 인턴 중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아 몇 명 되지 않는 계약직 직원으로 뽑힌 뒤 다음해에도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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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한은희


치료사들의 열악한 근무 조건, 그것까지도 견뎠지만...

재활병원 안의 시계가 매 시간의 정시와 30분을 가리킬 때, 환자들과 환자 보호자들 그리고 치료사들은 치료대에 모인다. 병원이 짠 시간표대로 30분으로 정해진 치료시간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 시간표대로 밀어닥치는 환자들을 받느라 치료사들은 거의 종일을 꼼짝없이 치료대에 묶여있게 된다.

2일 재활병원 1층에서 만난 환자 보호자 서경주(40·6세 딸 작업치료중)씨는 물리치료사들의 작업시간에 불만을 토로했다.

"주로 오후 2시부터 치료가 집중적으로 시작되는데, 90%가 5분도 안 쉬고 치료하고 있어요. 병원에서 짠 스케줄이 30분하고 정시하고 나뉘어져 있거든요. 그러니까 선생님들 오줌누러 갈 시간도 없고.

제가 치료받을 시간에 선생님이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하면 5분이잖아요. 제가 돈내고 치료받아야 할 시간인데 노동자들이 쉬어야 할 시간을 제가 감당하는 거예요."

비정규직으로 일했던 조씨의 경우 노동환경은 더 심각했다.

"베드사이드 피티(bed side physical therapy)라고 있어요. 15분씩 환자 치료를 하는건데, 병실에 직접 찾아가야 하는 거라서 주로 비정규직이 가요. 내가 봐야 하는 환자는 환자대로 보고, 또 베드사이드 피티는 이것대로 해야하는 거죠. 혼자서 많을 때는 운동치료 환자 10명 하고, 베드 사이드 피티만 20명을 본 적도 있어요."

조씨의 일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각종 차트를 정리하고, 소모품이나 비품들을 관리하며 기기들을 체크를 한다. 원래 정해진 노동시간인 8시간을 넘기는 일은 허다했다.

이렇게 1개월을 일하고 그가 번 돈은 인턴이었을 때 약 60여만원, 계약직이었을 때 약 150여만원 정도였다. 그러나 1년차 정규직 물리치료사가 한 달을 일하고 버는 돈은 약 300만원 정도다. 당시의 기분을 조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정규직이 될 수 있다. 나는 내년이면 저걸 받을 수 있다. 지금 내가 이렇게 받고 일하는 건 당연히 거쳐가야 하는 과정이다. 지금 이런 게 다른 사람들도 거쳐간거니까 기분 나빠하지 말자고 생각하죠. 먼저 들어온 사람이 벌써 정규직 월급을 받고 있고…. 회의가 들죠. 나는 뭔가? 나는 저 사람들과 뭐가 다른가? 일은 똑같이 하고 어떻게 보면 더 많이 하고 있는데…."

그는 정말 정규직이 되기에는 자질이 부족했을까?

그래도 "선배들도 그렇게 했기 때문에" 조씨는 다른 선배들의 업무 부탁을 처리했고, 묵묵히 계약기간을 견디며 평가자인 정규직 선배들 사이에서 정규직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정규직 공채에서 떨어졌다.

"미리 짐작했어요. 흘러가는 분위기가 그랬으니까요. 이미 내부에서는 다 알고 있는 셈이었죠. 낙담은 그 전에 다 했죠.

그런데 발표를 듣고 나니까 여기 왜 내가 그동안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근데 그것보다는 병원을 마치고 나서 그 주에 쉬고 월요일에 아침에 일어나잖아요. 그 때가 기분이 이상하죠. 이상했어요. 아침에 일어났을 때 출근할 데가 없고 내가 원해서 나온것도 아니고 나는 최선을 다해서 몸이 부서져라 일을 했는데 결과는 이렇게 나오고 내가 갖고 나온 것은 없고…."

조씨에 대한 정규직 선배들의 평가는 긍정적이었다. 지난달 31일 연세대학교 구내 청송대에서 만난 김진만(가명·30대, 물리치료사)씨는 "조원호씨는 점수도 아주 높았고, 일도 잘했다"며 "그 해에 뽑힐 수 있었을텐데 너무 아쉽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씨는 또 "우리가 파업에 나선 이유는 비정규직 문제 때문"이라며 "비정규직의 현실을 10년 이상 지켜보면서, 이미 우리는 그걸 거쳤지만 후대에는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 나왔다"고 강조했다.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는 주성기(가명·40대)씨는 "인턴제도의 처음 의도는 좋았지만 지금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걸 보면 그 원래의 의미가 퇴색되었다고 볼 수 있다"며 "계약직은 '인건비 절약용'으로 이용당하는 것으로 이들의 업무 강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병원 내 '치료행위'를 하는 비정규직의 문제는... 결국 환자에게로

뇌성마비 6세 딸이 재활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는 한 어머니는 현재 장기화되고 있는 연세의료원의 파업 사태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비정규직은 병원 입장에서만 생각한 것이지, 환자는 생각하지 않은 행태라고 생각을 해요. 자기들의 이익 실현을 위해서 비정규직을 하고 싶으니까 선생님들이 2년정도 있다가 다시 또 나가시고 새로 들어오시고 이러니까 치료를 받는 환자 입장에서는 선생님이 바뀌는 게 별로 안 좋죠.

차라리 2년 정도 지나서 비정규직 선생님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서라도 고정적으로 질높은 서비스를 제공을 하려면 원래 있던 선생님들을 유지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병원 "230억 남는데 500억 쓰라고?"

"우리는 그동안 7월 1일 비정규직 법안 시행과 관련해서 워크숍도 하고, 노조에 브리핑도 여러차례 했다. 또 7월부터는 정규직의 70%이던 비정규직의 임금을 85% 수준으로 인상하고, 복지혜택도 정규직과 동일하게 부여했다.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남궁기 연세의료원 홍보실장은 노조측의 비정규직 문제제기에 "무엇을 요구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이와 같이 설명했다.

남 실장은 "우리가 한 해 1조원을 투입해서 얻는 이익이 230억"이라며 "노조 측이 주장하는 1200억 이야기는 회계용어를 잘못 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1년 이상된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간호 1등급 상향 조정을 위해서 간호 업무 인력을 더 뽑게 되면 최소 500억 정도가 든다"며 "그것은 적자 예산 짜서 가라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그는 인턴제도에 불만을 표시하는 환자들에 대해 "세브란스 병원의 존재이유는 환자 치료가 아닌 학생 교육을 위한 실습의 장"이라며 "우리도 미국 같으면 고용의 융통성이 있어서 채용을 많이 할 수 있겠지만, 현재의 시스템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세의료원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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