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속 뺑소니 운전자, 딱 걸렸어!

양촌지구대 남궁영준 경사·신명곤 경장의 그날 밤 이야기

등록 2007.08.06 13:39수정 2007.08.06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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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2일 밤 9시 30분경. 김포 경찰서 양촌지구대로 급박한 사건 하나가 접수되었다. 뺑소니 사건이었다.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남궁영준(46)경사와 신명곤(35) 경장은 사고 현장의 처참함에 순간,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앞이 분간되지 않을 만큼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 이리저리 쓰러져 있는 사람들의 신음소리가 거센 빗소리마저도 삼키고 있었다.


긴급히 119에 구조요청을 하고 곧바로 도착한 소방대원들을 도와 환자들을 이송하던 중 "다친 사람이 한사람 더 있다"는 뜻밖의 한마디를 사고자로부터 듣게 되었다. 즉시 수색을 시작했다. 수색한지 5분, 사고 현장으로부터 500m떨어진 곳에 처참히 널 부러져 있는 사고자 한명을 더 발견, 긴급히 병원으로 이송했다.

비오는 날의 사고

"천만다행이다. 조금만 늦었어도 위험할 뻔했다"는 의사의 한마디에 남궁영준 경사와 신명곤 경장은 순간, 화가 났다. '도대체 누가 이런 몹쓸 짓을 했단 말인가. 그것도 네 사람씩이나….'즉시 수사에 착수했다.

신고자의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어 차 번호판의 두 자리 숫자를 겨우 알아내 차적 조회를 실시, 천만다행으로 김포관내엔 비슷한 번호판을 가진 차량이 그리 많지 않았고 더 다행인 것은 사고지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인근에도 비슷한 번호판을 가진 차량이 있음을 알아냈다. 곧바로 인근지역부터 탐문에 들어갔다.

밤은 점점 깊어가고 빗줄기는 점점 더 거세지고, 그 와중에도 암흑천지인 시골동네를 샅샅이 뒤졌다. 탐문수사는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웃집 숟가락 개수까지 훤히 꿴다는 시골동네 인심은 이미 옛말이 된지 오래. 토박이보단 외지 사람들이 더 많이 살고 있는 게 요즘 시골동네인지라 옆집에 누가 사는지 도통 모르고 있는 와중에 이웃이 무슨 차를 가지고 있는지, 차번호가 뭔지는 더더욱 모르는 일.


할 수 없었다. 칠흑 같은 폭우 속을 뚫으며 차를 찾아 동네를 이 잡듯 뒤졌다. 차는 없었다. 탐문수사가 별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남궁영준 경사와 신명곤 경장은 잠복에 들어갔다. 뿌연 미명에 시골동네가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도 차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 탐문수사에 착수한 남궁영준 경사와 신명곤 경장. 드디어 비슷한 차번호를 가진 차주의 집을 찾아냈지만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그러나 부인이 식당을 운영한다는 이웃 주민들의 이야기에 곧바로 식당으로 내달렸다.


식당에 당도해 식당 구석방에서 자고 있는 운전자를 깨웠다. 그때까지도 술 냄새가 진동했다. 수사상 필요하니 소유차량을 좀 볼 수 없겠느냐고 했다. 지방에 사는 지인에게 차를 잠시 빌려줬다는 운전자의 말에 지인의 연락처를 알려줄 것을 요구했다.

알려줄 수 없다는 운전자와 수사상 필요하니 알려달라고 요구하는 경찰들 사이에 잠시 실랑이가 오가는 사이 운전자가 툭 한마디 던졌다.

"많이 다쳤습니까?"

뺑소니 사건이 접수된 지 10시간 만인 오전 7시 30분경, 4명의 부상자를 내고 그중 2명을 중태에 빠뜨린 음주 뺑소니 운전자는 그렇게 남궁영준 경사와 신명곤 경장에게 덜미가 잡혔다. 검거 당시 운전자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15%였다.

"경찰로서 당연한 일 했을 뿐..."

a 경찰차 조수석에 앉아 환하게 웃는 남궁영준 경사(왼쪽). 사진을 찍기위해 다시 지구대를 찾아간 다음 날 아침. 남궁영준 경사와 신명곤 경장은 서로 다른 지구대에 파견 되어 있어 함께 사진을 찍지 못했다. 남궁영준 경사의 웃음 속으로 그런 아쉬움이 묻어나는 듯하다.

경찰차 조수석에 앉아 환하게 웃는 남궁영준 경사(왼쪽). 사진을 찍기위해 다시 지구대를 찾아간 다음 날 아침. 남궁영준 경사와 신명곤 경장은 서로 다른 지구대에 파견 되어 있어 함께 사진을 찍지 못했다. 남궁영준 경사의 웃음 속으로 그런 아쉬움이 묻어나는 듯하다. ⓒ 김정혜

지난 7월 16일, 남궁영준 경사와 신명곤 경장을 만나러 김포 양촌지구대 장기파출소를 찾아갔다. 바쁘게 순찰을 돌고 들어온 듯 두 사람의 이마엔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었다. 그날의 경위에 대하여 묻자 두 사람은 그저 마주보며 빙그레 웃기만 한다. 한참 만에 입을 뗀 남궁영준 경사.

"부끄럽습니다. 경찰로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

그럼에도 그날 밤의 신속한 대처와 거센 빗줄기 속을 마다않고 밤을 지새운 수사, 그리고 발 빠른 피의자 검거에 무슨 할 말이 있을 듯해 그날 밤의 기억을 떠올려 경위를 들려 달라 부탁했다.

그러나 지역 특성상 시골 구석구석 순찰을 돌려면 잠시라도 지구대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을 겨를이 없다는 이유로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럼에도 막무가내(?)로 졸라, 그것도 두 사람 중 한 사람만이라도 순찰을 돌아야 하기에 남궁영준 경사만 붙들고 잠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사고 현장을 보는 순간 화가 났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가만 생각해 보니 그 화란 것이 바로 자존심인 것 같았어요. 경찰로서의 자존심 말입니다. 한사람도 아니고 무려 네 사람이었어요. 자칫하면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그런 사고를 내고도 뺑소니를 치다니…. 반드시 찾아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밤새워 찾아다닌 뺑소니운전자를 찾아낸 순간, 어떤 기분이었을까.

"몇 마디 물음에 처음엔 모르일이라고 딱 잡아떼더니 불쑥 한마디 던지는 거예요. '많이 다쳤냐'고…. 순간 한없이 일그러지는 운전자의 얼굴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도망치지 말고 신속한 대처를 했더라면 사건이 이리 커지지는 않았을 텐데 하고 말입니다. 피의자 당사자에게가 아니라 피의자의 순간적인 우매함에 순간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숱한 사건을 접하는 게 경찰의 일상이겠지만, 네 사람의 중상자를 낸 이번의 사건은 어땠는지 궁금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위험할 뻔 했다는 의사선생님의 그 말씀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큰일을 당한 피해자들이나 그 가족들이 생명의 은인이라며 두 손을 꼭 잡아주었을 때, 당연한 일임에도 그리 감사해 하는 그 분들을 보며 도리어 저희들이 감사했습니다. 이럴 땐 정말 경찰로서의 보람을 느낍니다."

올해로 경찰 생활 20년째라는 남궁영준 경사. 경찰로서 보람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한마디 덧붙인다.

"사실 저 자신은 경찰관으로서 큰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에겐 늘 자격 없는 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 딸이 경찰 시험을 쳤습니다. 왜 하필 경찰이 되려고 하느냐는 제 물음에 딸아이가 그러더군요. '아빠 같은 경찰이 되고 싶다'고. 순간, 뜨거운 불덩이가 가슴 한복판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걸 보면 제가 경찰로서 살아온 20년 세월이 결코 헛된 세월은 아니죠?"

더 물어 볼 말이 많았다. 더 들어볼 말도 많았다. 하지만 서둘러 순찰차에 올라 쌩하니 멀어지는 남궁영준 경사를 바라보노라니 든든한 마음 이루 말할 수 없다. 경찰을 일러 '민중의 지팡이'라 했던가. 그러나 경찰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이 이래저래 빛바래져 가고 있는 요즘, 남궁영준 경사와 신명곤 경장을 일러 민중의 지팡이라 불러도 과함이 없을 것 같다.
#경찰 #뺑소니 #남궁영준 #음주운전 #교통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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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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