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학력을 의심하지 말라

아내가 갖추어야할 첫 번째 미덕

등록 2007.08.10 14:21수정 2007.08.11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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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며칠 전 올린 기사 '<더 워>가 아니고 <디 워>거든!'을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린다.

그 기사가 공개되기까지는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 기사를 작성한 날 저녁, <오마이뉴스>에 올리기 전에 일단 아내에게 먼저 보여줬다. (아내의 지식수준과 관련이 있었던 관계로) 뭐 일종의 '사전 검열'이랄까?

아내는 강하게 항의했다. "뭐 이런 게 기사가 된다고…. 이런 걸 쓰고 그러세요. 그럴 시간에 부동산기사나 하나 더 쓰세요", <오마이뉴스>에 보내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내의 강한 반대에도 나는 결국 그 기사를 편집부로 넘겼다.
"괜찮아. 독자들이 강민엄마를 아는 것도 아닌데 뭐."

다음 날 저녁.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마친 아내가 방으로 들어왔다.
"혹시 댓글 올라온 것 없어요?"

난 순간 무척 당황했다.
"어?! 댓글? 없어! 하나도!"

내 표정이 좀 이상했던지 아내가 "없어요? 어디 좀 보게"하며 나섰다. 나는 반사적으로 아내를 막고 나섰다.

"없다니까 왜 그래?"
"어디 좀 보게요!"
아내도 물러서지 않았다.

아내는 결국 그 댓글을 보고 말았다.

'The War'라고 하더라도 발음은 '더 워'라고 해야 맞습니다. W로 시작되는 단어 앞의 정관사 The는 '더'로 발음한답니다. 'The War'라고 생각하여 '더 워'라고 했다면 필자 부인 병원 사람들의 발음이 맞는 겁니다. 그러니 아내에게 체면은 깎이겠지만 사과 한번 하시구요.....^^

내 기사에 붙어있던 모 독자님의 댓글이다.

댓글을 본 아내는 고소하다는 듯한 표정이다.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그리고는 내 가슴을 찌르는 한 마디 독설을 내뱉었다.

"강민 아빠! Y대학 나온 거 맞아?"

괜한 기사를 써 가지고 이게 웬 망신이냐. 전국적으로 독자들에게 망신당하고, 아내에게 망신당하고. 그 날 밤 편치 않은 마음에 날까지 더워 한참을 잠을 못 들고 뒤척거렸다.

다음 날 아침. 즉, 어제 아침이다. 출근길에 아내가 느닷없는 질문을 했다.
"강민 아빠! '꿈' 있잖아요?"
"응, 꿈이 왜?"
"우리가 '희망을 가지다', '꿈을 가지다' 할 때 dream이라는 말을 쓰잖아요?"
"응, 그렇지"
"그럼 '잠잘 때 꾸는 꿈'은 영어로 뭐라고 해요? 그것도 dream이에요?"
"잠잘 때 꾸는 꿈?"

느닷없는 질문에 나는 잠시 멈칫거렸다. 중요한 순간이다. 어제 영어 때문에 크게 망신을 당했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답변을 해야 한다. 만약 이번에도 틀리면 정말 체면에 큰 손상을 입게 된다. 운전하느라 정신이 없는 가운데서도 열심히 머리를 굴린다.

'잠잘 때 꾸는 꿈이 따로 있나?' 아무리 생각해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섣불리 드림(dream)이라고 말하기도 겁난다. 틀리면 큰일이니까.

"그게 말이야…."

내가 좀 더듬는 기색이 보이자 아내가 쏘아댄다.

"아니! 몰라요?"
"모르는 게 아니라 갑자기 물으니까 얼른 생각이 안 나서 그렇지! 운전하는 사람한테 그런 걸 물어보면 어떡해!"

나의 답변이 궁색한 변명으로 들렸던 모양이다. 아내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강민아빠! 진짜 Y대학 나온 거 맞아요?"

아내는 또 다시 학력의혹을 제기한다. 이번에는 좀 진지한 태도로 물어보는 것 같다.

"아, 정말 이거 뭐야. 어제부터 영어 단어가지고 왜 이래. 정 의심되면 직접 확인해 보세요!"

생각할수록 섭섭했다. 그깟 영어단어 좀 모른다고 내 학력에 의혹을 제기하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굳이 아침 출근길에 잠 잘 때 꾸는 꿈이 dream이 맞느냐고 묻는 것이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 잠자리에 들 시간이면 또 몰라. 생뚱맞게 아침 출근시간에 dream을 왜 물어봐.

'이 사람이 정말로 나의 학력에 대해 의심을 하는 건가?' 내 생각은 점점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불쾌했다. 오전 내내 나는 이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오전 내내 혼자서 온갖 상상을 다 하던 나는 더 이상 이 상황을 그대로 둘 수 없다는 고뇌에 찬 결론을 내리고 과감한 실천에 돌입했다.

점심시간에 아내가 일하는 병원으로 전화를 했다. 직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던 아내가 헐레벌떡 달려와 전화를 받았다. 나는 준비한 원고를 차분히 읽어 내려갔다.

"정 의심나면 학적과에 알아보고. 다음부터는 다시는 그런 소리 하지 마. 알았지?"

그리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라도 하고나니 속이 좀 풀렸다. 뭐야 진짜! 그깟 단어 하나 가지고 하늘같은 남편의 학력에 의혹을 제기하다니!

그다지 썩 밝지 않은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오후 늦게 출판사에서 전화가 왔다. 두 번째 책이 나왔다는 것이었다. 출판 소식을 들으니 하루 종일 찜찜했던 기분이 확 풀렸다. 그래서 바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두 번째 책 나왔대."
"그래요?! 축하해요. 오늘 출판기념으로 외식 한 번 해요."
"좋아. 이따 봐."

전화를 끊고 저녁에 뭘 먹을까 생각을 하면서, 저녁에 아내를 만나면 하필 아침 출근길에 dream을 물어본 진정한(?) 의도가 뭐였는지 꼭 물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아내를 만나서는 먹는 데 정신이 팔려서 깜빡해 버렸다. 오늘 저녁에는 꼭 물어봐야겠다.

"강민엄마! 생뚱맞게 아침 출근길에 dream을 물어 본 이유가 뭐야? 숨기지 말고 사실대로 말해봐", 이렇게….

'근데 강민 엄마! 나 서울 신촌에 있는 Y대학 경제학과 86학번 맞거든!' 남편의 학력을 의심하지 마세요! 아내가 갖추어야할 첫 번째 미덕이랍니다.
#학력 #남편 #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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