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꽃 '자마구'를 본 적이 있으신가요?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139] 벼꽃

등록 2007.08.12 18:18수정 2007.08.13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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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꽃-벼에도 꽃이 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 김민수


'자마구'는 '곡식의 꽃가루'를 일컫는 말입니다. 농촌에서는 흔히 벼꽃을 일러 자마구라 하지요. 벼에도 꽃이 핀다고 하면 "벼에도 꽃이 피냐?"고 묻는 사람이 태반이지만, 분명 꽃이 피고 꽃가루(하얀 부분)도 있어 수분이 이뤄지고 그 결과로 벼의 낟알이 생기는 것입니다. 가을이면 잘 영글어 고개 숙인 쌀알 하나하나는 모두가 수분이 이루어진 결실인 것이죠.

요즘 들판에는 벼이삭이 한참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쌀알의 껍질이 될 아래 위의 껍질이 벌어져있고 그 사이에 꽃가루가 달려있습니다. 즉 쌀알의 껍질은 꽃잎인 것이고, 자마구는 꽃가루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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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논에 치렁치렁 아침이슬을 달고 있는 거미줄 군락을 만났다. ⓒ 김민수

그런데 하필이면 이렇게 꽃가루 자마구가 필 무렵이면 벼메뚜기가 날기 시작합니다. 군것질거리가 많지 않던 시절 벼메뚜기는 최고의 영양간식이었습니다.

논에 들어가 메뚜기를 잡을라 치면 동네 어른들이 노발대발 달려오셔서 "이눔들! 자마구 다 떨어진다!" 소리를 지르곤 하셨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어른들의 눈을 피해서 논두렁을 살금살금 다니면서 메뚜기를 잡곤 했습니다.

메뚜기를 잡아 강아지풀에 꿰어 두어줄씩 되면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두르고 소금을 살살 뿌려가며 메뚜기를 튀깁니다. 그러면 아주 맛난 군것질거리가 되었지요. 간혹 뷔페식당에서 중국산 메뚜기가 등장합니다.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서 먹어보면 그 맛과는 전혀 다른 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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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이파리에 거미집 주인이 자리하고 있다. 밤새 잘 쉬었는지 그들의 몸에도 이슬이 맺혀있다. ⓒ 김민수

강촌에서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산책삼아 논두렁을 걷다가 아침이슬을 달고 그네 침대처럼 축축 늘어진 거미줄들을 만났습니다.

맨 처음에는 그저 별 생각 없이 봤는데 논 전체가 거미줄에 걸렸다고 봐도 될 만큼 거미줄이 많았습니다. 농약을 치지 않는 논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지요. 얼마나 오랜만에 본 풍경인지 이른 아침 바라보았던 논이 이런 모습이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살았습니다.

집주인 거미들의 모습과 곤충들의 모습이 벼 이파리에 숨어 있습니다. 작은 우주가 논에서 꿈틀대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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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집은 예술작품이다. 이슬이 맺히는 아침이면 물방울 보석을 단다. ⓒ 김민수

거미줄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언제일까요?

개인적으로는, 아침이슬을 송글송글 맺고 있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물방울 보석들을 주렁주렁 달고 축 늘어진 모습은 먹이를 잡는 덫으로 보이지 않고 사랑하는 연인에게 선물한 물방울 보석처럼 보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곤충들이 거미줄에 걸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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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귀도 가만히 먹이를 기다리고 있다. ⓒ 김민수

그런데 거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마귀도 먹잇감을 기다리고 있고, 잠자리· 벼메뚜기 등 수없이 많은 곤충들이 논에서 공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자연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 있었는데 인간의 욕심으로 오직 하나의 종만 자라게 하는 논으로 만들었구나 생각하니 그들에게 죄를 진 듯 미안해집니다.

벼가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벼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소출이 조금 적어도 이렇게 많은 것들과 공존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자라 밥상에 올라오는 것이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자연의 마음을 닮아가게 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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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를 잡은 거미가 아침식사를 하고있다. ⓒ 김민수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 거미를 만났습니다. 이 논에 사는 거미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몇 마리의 잠자리가 필요한 것일까 생각하면서 점점 그 영역을 넓혀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잠자리가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모기나 하루살이는 몇 마리일까…. 이렇게 영역을 넓혀가다 보니 옛날 우리 산하에 야생 호랑이가 살고 있을 때 얼마나 자연이 풍성하게 맞물려 돌아갔는지를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먹이사슬을 생각해 본 것이지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침식사를 하는 거미를 보니 잠자리가 불쌍하긴 하지만 거미가 밉지만도 않습니다. 그렇게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살면서 이젠 저 잠자리가 거미가 되는 것이구나, 거미는 또 사마귀가 되기도 하고, 새가 되기도 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작은 논에 우주의 섭리가 다 들어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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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약을 치지 않은 논은 작은 우주다. 작은 곤충들이 수도 없이 많다. ⓒ 김민수

농부에게 가장 예쁜 꽃이 뭐냐고 물으면 그들은 뭐라고 대답할까요? 그들은 "꽃 중의 꽃은 벼꽃 자마구지요"라고 하지 않을까요? 예쁠 것도 없는 꽃, 그러나 일용할 양식을 제공해 주는 꽃이니 예쁘지 않을 수 없겠지요. 한 톨의 쌀이라도 더 얻기 위해서 벼꽃이 필 적에는 농부들조차도 논에 들어가질 않는다고 합니다. 철없던 시절 어른들의 눈을 피해 벼꽃 피어난 논에 들어가 메뚜기를 잡던 일이 미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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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 세상이다. 그 만큼 이 논이 생태적이라는 증거다. 이런 논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 김민수

거미줄 가득한 논, 이렇게 살아있는 논에서 생산된 쌀을 먹어야 우리도 건강할 텐데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이 옛말이 된 이 시대에 땀 흘린 수고를 빼앗기다보니 농사를 짓는 이들이 적어지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벼꽃, 자마구는 예쁜 것으로 치면 예쁜 구석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품고 있는 속내를 보면 예뻐하지 않을 수 없는 꽃입니다. 황금물결 넘실거리는 풍요로운 들판, 가을 들판을 생각하니 절로 휘파람이 납니다.
#벼꽃 #거미줄 #사마귀 #자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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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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