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보다 귀한 땀방울을 찾아서

등록 2007.08.14 11:05수정 2007.08.14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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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의 일을 사랑하라.
그러나 그대들의 업적을 사랑하지 말라. - 마야코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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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도장가게아저씨 ⓒ 송유미

#1. 무더위도 잊는 일의 삼매경

이 무더운 여름, 노는 사람보다는 일하는 모습이 역시 훌륭해 보인다. 더구나 정상인도 아닌 몸으로 열심히 일을 하는 분을 만나면 잠시 겸허해 진다. 찜통 같이 푹푹 찌는 반평도 안되는 공간에서, 아저씨는 이마에 굵은 땀을 흘리며 한 획 한 획 수공으로 목도장을 파신다. 아저씨는 하반신이 성치 않으시다. 그래도 하루도 쉬지 않고 휠체어에 의지해 정확한 시간에 출근해서 이열치열 가족들을 위해 돈벌이로 바쁘게 보내신다.

낮은 지붕 탓에 가게 안은 사우나탕보다 뜨겁지만 열심히 일을 하는 아저씨의 손끝에서 누군가의 이름 석자가 하얀 A4 용지에 인주밥을 먹고 낙관으로 선명히 찍힐 때, 아저씨는 땀의 보람을 느끼신다고. 하지만 귀찮게 말을 자꾸 거는 게 내심 싫으신지 더 이상 질문에는 대답 하지 않으시고 일의 삼매경에 빠지셔서 고개도 한번 들지 않으신다. 어떤 꽃이 이보다 귀할까. 아저씨 입가에 하얗게 어린 소금꽃만큼 값진 꽃이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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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장사아줌마 ⓒ 송유미

# 2. 지하철 1호선 입구 김밥장수 아줌마

세네카는 그의 <서간집>에서 "일은 고귀한 마음의 영양"이라고 하였다. 헤시오도스는 "일이 체면을 손상시키는 것은 없고, 면목이 없는 것이 게으른 것"이라고 <일과 나날>에서 기술하고 있다. 어떤 일이든 일이 있다는 것은 행복하다.

새벽 일찍 일어나서 김밥을 말아 나온다는 좌판 김밥 아줌마. 김밥 24시 점이 생기고 나서부터 김밥 장사에 지장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비가 오나 땡볕이 내려쬐이나 아줌마는 1호선 지하철 입구를 지키며 하루도 빠짐없이 나온다.

한 줄에 1000원 하는 김밥 맛은 먹어 본 사람만 찾는다. 안 먹어 본 사람들은 불량식품이라고 아예 사지 않아서 어느 날은 속이 까맣게 탈 정도라는 아줌마의 말. 그러나 일부러 찾아오는 고마운 단골도 있어, 늘 같은 자리에 나와 김밥을 팔지만, 거리단속원의 눈을 피해 팔기 때문에 말 못할 고충도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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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수선가게 여사장 ⓒ 송유미

#3. 구두·가방 수선방

요즘은 여름이라 더 일거리가 없다는 구두 수선방 여사장 말씀이다. 여름은 정장을 입는 사람들이 적어 구두 수선이 별로 없단다. 아무리 멋쟁이 여성이라도 샌들화를 많이 신어서, 통 일거리가 없다는 구두 수선방 여사장은 하루 종일 신문을 보는 게 일이라면서 경기가 너무 안 좋다고 한다.

그래도 얼굴은 여사장님답게 환하기만 하다. 일이 없지만 가게를 지킬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고 한다. 일거리가 없는 여성보다는 일이 있는 여성이 훨씬 아름답다는 것을, 구두 수선방 여사장의 얼굴에서 느낀다.

여름철은 비수기라 하루 종일 아무도 찾지 않는 구두 수선방, 모두들 수선보다는 새 신발을 사고 만다고. 그래도 명품 가방과 구두를 수선하기 위해 찾는 사람들이 있어 점포세는 간신히 나온다고 한다. 구두방에서 수선방으로 바뀐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요즘은 수제화를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라고. 남편이 직접 구두를 수선하고 여사장은 가게를 지키는 점원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어쨌든 일을 가진 여성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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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근로자 ⓒ 송유미

#4. 공공근로자

초로의 이 아저씨는 공공게시판이 아닌 전봇대나 건물 벽이나 지정된 벽보판이 아닌 곳에 부착된 여러가지 벽보를 말끔히 떼어내는 일을 하시는 공공 근로자 아저씨. 풀칠이 아닌 본드로 부착된 종이벽보도 있어 뜯어내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뻔히 불법인줄 알면서도 깨끗이 뜯어내고 나면 또 내일 갖다 붙이는 얌체족 때문에 아저씨의 일은 끝이 없단다. 뜯어내고 나면 전봇대에 흉하게 남아 있는 흔적 때문에 다시 물칠을 하고 또 본드로 부친 것은 여간해서 잘 뜯어지지 않아, 칼로 긁어내기도 한다는 아저씨의 말씀. 공공근로자 수당을 묻자, 아저씨는 싱긋 웃기만 한다. 놀면 뭐하겠느냐고 일을 해야 사는 맛이 난다는 아저씨의 나이는 육십 전후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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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화원 아줌마 ⓒ 송유미



#5. 지하철 여미화원

하루에도 헬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밟고 다니는 지하철 계단이며 지하철 화장실 안을 청소하는 미화원 아줌마의 일은 정말 힘들고 고충이 많은 모양이다. 특히 여자 화장실 청소는 같은 여자라도 너무 지저분해서 힘들다고 한다.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업종이 미화원자리라서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아줌마의 말. 이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다고 한다. 돌아서고 나면 금방 지저분한 게 공공장소의 청소를 하는 미화원의 일. 남자들을 성자청소부로 불린다면, 여성미화원은 성녀(聖女) 미화원이라고 부르고 싶다.

#6. 이 세상이 이나마 깨끗한 거 누구 덕분이지?

이 세상 일을 가진다는 것은 보람 있고 아름다운 일이지만, 남이 선뜻 택하기 어려운 거리와 공공장소의 청소일을 맡아하는 사람들은 다 성자, 성녀가 아닐까. 우리 사회 구석구석 성자, 성녀들의 미화원이 있기에, 우리가 다니는 거리와 골목길은 이 정도나마 깨끗한 것인데, 휴지나 껌 따위를 함부로 버리고 뱉었던 일이 새삼 부끄럽다.

사람들 가마타는 즐거움은 알아도
가마 메는 괴로움을 모르고있네.
가마꾼 숨소리 폭포소리에 뒤섞이고
해진 옷이 땀이 베어 속속들이 젖어가네.
나의 덕이 너에게 미친 것 없었는데
내 어찌 너의 은혜 혼자 받으리
정약용의 <가마꾼> 中 발췌

덧붙이는 글 | 사람과 일

덧붙이는 글 사람과 일
#공공근로 #도장 #김밥장사 #구두수선 #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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