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쁘긴 뭐가 기뻐, 아직 사죄도 안받았는데"

8·15 특별공연, 춤극 <꽃은 피어 웃고 있고> 공연 현장

등록 2007.08.15 10:55수정 2007.08.15 16:20
0
원고료로 응원
a <꽃은 피어 웃고 있고> 진혼의 춤

<꽃은 피어 웃고 있고> 진혼의 춤 ⓒ 성하훈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춤극 <꽃은 피어 웃고 있고>를 찾은 관객들은 빈자리가 얼마 보이지 않을 정도로 400여석을 웃도는 공연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낮시간 공연인데 왜 이리 사람들이 많냐'는 반응이 나올 만큼 춤으로 표현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은 커 보였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애처로움 삶을 표현한 진혼의 춤극 <꽃은 피어 웃고 있고>는 70여분이 공연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관객들을 춤속에 몰두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일본군에 의해 끌려간 조선처녀가 온갖 유린을 당한 뒤 비참하게 쓰러져 가는 스토리 라인은 누구든 쉽게 공감하는 알 수 있는 이야기 구조였다.

춤사위로 보여주려고 하는 게 무엇인지가 쉽게 이해되면서 관객은 춤으로 표현된 위안부 피해자들의 삶에 동화됐는데, 한편으로 그것은 안타까움 속에 지켜봐야 하는 지난날 우리가 겪어야 했던 슬픈 역사였다.

a <꽃은 피어 웃고 있고> 임응희 선생

<꽃은 피어 웃고 있고> 임응희 선생 ⓒ 성하훈

a <꽃은 피어 웃고 있고>

<꽃은 피어 웃고 있고> ⓒ 성하훈

더욱이 광복절을 앞에 두고 보는 공연이라는 의미 때문인 듯 관객들의 시선은 잠시도 흐트러짐없이 무대위에서 펼쳐지는 춤동작을 따라 움직였고, 몸짓과 표정을 통해 표현되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은 처절한 심정으로 전달됐다.

우리의 전통 가락이 배경음악으로 깔리며 때로는 발랄하게 때로는 서럽고 슬프게 이어진 춤꾼들의 춤사위가 공연내내 먹먹한 심정을 전달해준 것은 바로 이런 연유 때문이었다.


각기 다른 두개의 아리랑이 전해주는 가락은 춤에 섞여들며 슬픈 역사에 대한 안타까움과 한스러움을 전달했고 고통스런 역사에 대한 무게감마저 안겨주고 있었다. 춤의 선율은 아름다웠지만 그것은 애절함 속에 드러나는 아픔이었던 것이다.

<꽃은 피어 웃고 있고>는 마지막 부분에서 일본의 침략전쟁 도구로 끌려가 쓰러져간 조선처녀들을 위해 진혼의 살풀이를 펼친다. 상여꾼의 독무를 따라가는 여인에게 혼례복을 입혀 절을 올리게 함으로써 그들의 회한을 작게 나마 달래 주려는 모습은 억울하게 쓰러져간 넋들을 위로하기 위한 한판 씻김굿으로도 보였다.

a 혼례복을 입고 상여꾼을 따라 가는 여인

혼례복을 입고 상여꾼을 따라 가는 여인 ⓒ 성하훈

'역사적 현실을 새로운 형식의 춤극으로 표현해 냈다는 것에 의의가 있는 것 같으며 기존의 연극 등에서 볼 수 있던 무게성을 벗어난 참신한 시도'라는 평은 이번 공연을 본 관객들의 주된 시선이었다.


서툰 한국말로 "very gracefulness(단아)하고 슬펐지만 감동이 컸다"고 공연을 평한 미국 워싱턴 D.C에 거주한다는 재미교포 전지영씨는 위안부 역사에 대해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는 부분이어서 혼자서 공부해 알고 있다"면서 "작품이 이를 잘 표현해 낸 것 같다"고 말했다.

어린 딸과 함께 공연장을 찾은 한 주부는 "일본에게 저런식으로 당한 것에 억울한 생각도 많이 들었고, 역사의 고통을 알게 해 준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공연이 할머니들의 한을 풀어준 것 같다"고 말하고 "이 작품을 보면서 그 시대로 다시 돌아간 느낌도 들었다"고 덧붙였다.

대구에서 올라왔다는 원영민씨는 "참 뭐라 말하기 힘들 만큼 감동적"이라면서도 춤으로 표현된 역사적 현실에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a <꽃은 피어 웃고 있고> 일본군 병사

<꽃은 피어 웃고 있고> 일본군 병사 ⓒ 성하훈

a <꽃은 피어 웃고 있고>의 한장면

<꽃은 피어 웃고 있고>의 한장면 ⓒ 성하훈

한편 이날 공연에는 나눔의 집 할머니들이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4시 공연을 찾은 할머니들은 총연출을 맡은 김진환 감독에게 "우리를 울리려고 만든 것 아니냐"면서 "너무 고맙다. 이런 공연 만들어 줘서 고맙다. 공연내내 눈물만 났다"면서 자신들의 삶이 표현된 춤극에 대한 소회를 드러냈다.

할머니들을 모시고 온 나눔의 집 안신권 사무국장은 "밝은 내용이 나올 때는 좋아하시다가 나중에는 눈물을 흘리시더라"며 공연을 보던 할머니들의 표정을 전하고 "할머니들이 이런 공연을 보면서도 좋다는 표현을 많이 안 하시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 안됐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a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 ⓒ 성하훈

또한 "젊은층들에게 잊혀져가는 위안부 피해 역사를 문화 예술쪽에 계시는 분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알렸 나갔으면 한다"면서 "문학이나 미술 등의 예술적 도구를 사용해 위안부 피해자의 아픔이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이날 공연장을 찾온 이옥선 할머니는 미 의회의 결의안 통과가 기쁘지 않느냐는 한 방송기자의 질문에 "기쁘기는 뭐가 기뻐! 아직 사죄도 안받았는데. 우리에게 아직 전쟁은 안 끝났어. 우리는 제대로 된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요청할 뿐이야"라고 말해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이뤄지지 않는데 대한 답답한 심정을 드러냈다.

중국 연변에서 일본군에게 모진 고통을 당했다는 이옥선 할머니는 자신의 상처 흔적을 보여주면서 "당시 11살난 애들도 끌고 갔으면서 돈벌러 갔다고 말한다. 말도 안되는 소리다. 11살 먹은 애가 뭘 아냐. 엄마 품에 있어야 할 나인데"라며 사죄없는 일본정부에 대해 강하게 분노하는 모습이었다.

춤극 <꽃은 피어 웃고 있고>의 마지막 장면은 일본 천황으로 분한 연기자가 독백으로 변명스런 사죄를 하는 모습이다. 느릿느릿 걸어나와 어쩔 수 없이 사죄를 하는 일본 천황의 모습은 극의 형식을 빌려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로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지만 일본에게 잘못된 과거를 속히 반성하고 정중히 용서를 구하라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대내외적인 압력에도 불구하고 반성하지 않는 일본이 언제쯤 제대로 된 사과를 할 지는 지켜볼 일이지만 그에 앞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눈물이 우리 사회에서 잊혀져 가는 역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그것을 알리려는 노력이 펼쳐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관점에서 <꽃은 피어 웃고 있고>는 매우 의미깊고 소중한 작품이었다.

a <꽃은 피어 웃고 있고>

<꽃은 피어 웃고 있고> ⓒ 성하훈

a <꽃은 피어 웃고 있고>

<꽃은 피어 웃고 있고> ⓒ 성하훈



"위안부 할머니 아픔 널리 알려나갈 생각"
[인터뷰]<꽃은 피어 웃고 있고> 총연출 김진환

▲ <꽃은 피어 웃고 있고>연출한 김진환 선생
ⓒ성하훈
덥수룩한 수염을 깍지도 못한채 낡은 모자를 쓰고 정신없이 움직이는 김진환 선생에 대해 그의 부인이자 안무를 담당한 임응희 선생은 "이 공연에 미쳐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 표현대로 김진환 선생은 <꽃은 피어 웃고 있고>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었다. 단 한마디일지라도 절절하게 토해내는 그의 마음은 이 작품에 대한 열정을 잘 표현해 주고 있었다.

사실 김진환 선생은 연출가이기 보다는 춤꾼이다. 그 역시도 "연출은 체질에 안맞는다. 나는 춤을 추고 싶다"고 말한다.

"우리가 노가다도 아니고 김진환 선생이 연출을 맡지 않으면 일을 돕지 않겠다"는 제작진의 강요가 없었다면 어쩜 그를 이번 춤판에서 봤을지도 모른다.

그는 꽤 실력있는 무용가다. 1998년 중요무형문화재 제40호 학연화대무 이수자로 선정되었으며, 국립국악원 파견강사로 러시아, 카자흐스탄, 호주 시드니, 일본 고베 등에서 재외동포를 위한 강습을 지도하기도 했다.

대학에서 무용을 공부할 당시에도 신동소리를 들을 만큼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장고와 북 등 악기를 잘 다루던 그의 재주는 운동권 후배들에 의해 유용하게 활용돼 적지 않은 도움을 주기도 했다는 것.

하지만 그것은 주홍글씨가 돼 그의 대학원 진학을 어렵게 만든 요인이 됐고, 결국 40대 늦은 나이에 국립국악원에 들어가게 만든 원인이기도 했다. '무용과에서 운동권을 도왔다는 것'이 괘씸죄가 돼 버린 것이다.

<꽃은 피어 웃고 있고>를 준비하며 김진환 선생은 여러 곳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관련부처의 산하기관에 공연 후원단체로 이름을 올려줄 것을 부탁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민감한 사안이라 외교문제가 될 수 있어 어렵다'는 말 뿐이었다.

'정부차원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말한마디 못하는 정부부처의 모습은 참 실망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공연을 준비하면서 그가 나름 힘이 됐던 것은 작품의 취지를 이해하고 도우려는 사람들 때문.

"조명과 무대 등에서 자원봉사 형태의 도움을 받았다"고 밝힌 그는 지방 순회공연 계획은 없냐?고 묻자 "전국을 돌며 하고 싶지만 제작비 부담이 커 어렵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차라리 반기문 사무총장이 있는 유엔본부로 직접 가서 공연해 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는 김진환 선생은 "춤극이라는 쟝르를 잘 발전시켜 <꽃은 피어 웃고 있고>를 통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널리 알려나가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우리의 춤으로 우리의 전래소리와 전래음악으로 춤극을 만들면서 열린생각, 열린마음, 열린행동으로 우리민족의 정서를 표현하고자 애'를 쓰겠다는 그의 자세는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춤극 <꽃은 피어 웃고 있고>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꽃은 피어 웃고 있고> #위안부 피해자 #나눔의집 #김진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독립영화, 다큐멘터리, 주요 영화제, 정책 등등) 분야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각종 제보 환영합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추석 앞두고 날아드는 문자, 서글픕니다 추석 앞두고 날아드는 문자, 서글픕니다
  2. 2 "5번이나 울었다... 학생들의 생명을 구하는 영화" "5번이나 울었다... 학생들의 생명을 구하는 영화"
  3. 3 에어컨이나 난방기 없이도 잘 사는 나라? 에어컨이나 난방기 없이도 잘 사는 나라?
  4. 4 "독도 조형물 철거한 윤석열 정부, 이유는 '이것' 때문" "독도 조형물 철거한 윤석열 정부, 이유는 '이것' 때문"
  5. 5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