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책상에서 피어난 사랑

넉넉함보다는 부족함이 인생을 더 성숙하게 만든다

등록 2007.08.16 09:42수정 2007.08.16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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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 방치된 부서진 책상과 의자로 피워올린 모닥불에서 노는 교사와 아이들
대학교에 방치된 부서진 책상과 의자로 피워올린 모닥불에서 노는 교사와 아이들최종수
육체와 정신의 건강을 위해 조금 부족한 것이 좋겠지요. 특히 육체는 넘치는 것보다 조금 부족한 것이 낫지 않을까요. 맑은 정신도 넘치는 삶에서 오지 않고 조금 부족한 삶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요.


특히 요즘 아이들의 문제는 부족함에서 오는 문제보다 풍족함에서 오는 문제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청하는 대로 들어주고 사 달라는 대로 다 사 주면, 모든 물건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함부로 하게 되겠지요.

지하철 분실물 센터에 물건이 넘쳐난다는 군요. 이삼십만 원짜리 핸드폰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고의로 지하철에 놓고 간다는 군요. 분실한 학생들의 소지품들이 넘쳐나지만 찾아가는 학생들은 그리 많지 않다는 군요. 학교도 예외는 아니라더군요.

물장난 싸움을 하고 있는 교사와 아이들
물장난 싸움을 하고 있는 교사와 아이들최종수
비단 물건만의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먹는 것도 도가 지나칠 정도로 함부로 합니다. 밥이나 국을 남기는 것은 다반사고요. 한번 배어먹은 빵도 맛이 별로면 쓰레기통으로 갑니다. 청하는 대로 다 들어준 아이들의 모습이 그러하지 않을까요.

초중고생들은 물론 대학생들도 예외는 아니겠지요. 또한 어른들도 음식을 함부로 하기에 한 해 음식물 쓰레기가 8조원이나 되겠지요. 그러기에 음식물을 재활용하거나 물건을 대물림하는 전통은 먼 옛날이야기가 된 것 같습니다.

지월 스님은 넘치는 물도 아껴 쓰면 용왕님이 복을 주고, 널려있는 나무도 아껴 때면 산신님이 복을 준다고 귀에 딱지가 붙도록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나 아는 진리를 인자한 할아버지처럼 지극정성으로 가르쳤습니다. 음식과 물건을 함부로 하는 우리들에게 지월 스님의 말씀은 큰 깨달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름수련회에 참가한 학생과 교사들이 서로에게 회람식 편지를 쓰고 있다.
여름수련회에 참가한 학생과 교사들이 서로에게 회람식 편지를 쓰고 있다.최종수
재정이 넉넉하지 못한 저희 성당의 이야기입니다. 성당의 제대와 감실, 앰프와 에어컨, 의자와 탁자 등 대부분의 비품은 여러 곳에서 가져온 중고품입니다. 활동이 중단된 노동자의 집 회의실을 수리해서 쓰는 조립식 성당도 중고품이니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런 성당의 교리교사 이야기입니다. 교사는 재학 중인 대학교 건물 한 쪽에 방치된 책상과 의자를 보았습니다. 후텁지근한 장마철에 20여 차례 계단을 오르내리며 부서진 책걸상들을 3층 동아리 방으로 옮겼습니다.


망치로 부셔서 준비한 비닐 포대에 차곡차곡 담았습니다. 6포대를 한 포대씩 어깨에 메고 낑낑거리며 현관 앞으로 옮겨 놓고 자동차를 가진 친구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15분은 무료주차이기에 작전을 수행하듯이 잽싸게 트렁크와 뒷좌석에 실고 학교를 빠져 나와야 했습니다.

순창군 쌍치 성당에서의 기념촬영, 오른쪽 상단 두 번째 흰색 티셔스를 입고 있는 교사가 모닥불의 주인공.
순창군 쌍치 성당에서의 기념촬영, 오른쪽 상단 두 번째 흰색 티셔스를 입고 있는 교사가 모닥불의 주인공.최종수
그 부서진 책상과 의자를 봉고차에 싣고 중고등부 수련회를 갔습니다. 탑처럼 쌓은 책걸상 속에서 폭죽이 분수처럼 하늘로 솟아올랐습니다. 밤하늘에 또 하나의 오색 모닥불이 피어났습니다. 알뜰한 교사의 아름다운 희생, 아이들의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는 모닥불을 피워놓았습니다.

반쪽씩 자른 닭을 알루미늄 호일로 쌓아 모닥불에 묻어 두었습니다. 활활 타올랐던 책걸상의 숯들이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여름밤 통닭구이의 추억을 맛있게 익혀 주었습니다. 조별로 모여 앉아 숯불 통닭구이를 먹었습니다. 아이들의 얼굴에 모닥불처럼 행복한 미소가 피어났습니다.

반쪽씩 자른 닭을 호일에 싼 통닭구이, 지글지글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익어 간다.
반쪽씩 자른 닭을 호일에 싼 통닭구이, 지글지글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익어 간다.최종수
입추가 지난 2007년 여름도 우리들의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상의 어떤 곳에서 이런 모닥불을 찾을 수 있을까요. 흥청망청 쓰고 버리는 대한민국, 그 어디에서 이토록 아름다운 절약을 찾을 수 있을까요.

그 어느 식당에서 그렇게 맛있는 통닭구이 맛을 볼 수 있을까요. 영원한 추억으로 간직될 부서진 책상과 의자의 모닥불, 넉넉함보다는 조금 부족함이 우리네 인생을 더 성숙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자리도 조금 부족한 곳, 비운 곳이 아닐까요?
#절약 #낭비 #행복 #부족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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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 기자는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일꾼으로, 불평등한 소파개정 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으로 2000년 6월 20일 폭격중인 매향리 농섬에 태극기를 휘날린 투사 신부, 현재 전주 팔복동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하고 있습니다. '첫눈 같은 당신'(빛두레) 시사 수필집을 출간했고, 최근 첫 시집 '지독한 갈증'(문학과경계사)을 출간했습니다. 홈피 http://www.sarang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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