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 개학이 1주일 미뤄졌다고?"

객지 나가있는 딸과 함께 보낸 행복한 여름방학

등록 2007.08.20 12:11수정 2007.08.20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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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전남 담양에 있는 한빛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딸아이를 생각하면 항상 제 마음 한구석이 아파왔습니다.


지난해 11월, 딸아이가 한빛고등학교에 합격하고 그 학교에 입학을 결정한 후, 우리 가족에게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생겼습니다.

경남 창원에 살고 있던 저에게 서울에 살고 있는 여동생이 영어 학원을 저와 함께 운영해 보자고 제의를 해 왔습니다. 당시에 여러 이야기가 있었지만, 결론은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만 셋을 둔 동생이 서울에서 영어 학원을 개원하고 싶은데 제가 옆에 있어야만 가능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 또한 딸아이가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이 확정된 터라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니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어쩌면 반대 의견을 내세울 것 같았던 시댁 식구들과 아버님께서도 '한번 서울에 올라가서 일을 해 봐라'하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이 40이 훨씬 넘은 아줌마를 써 주겠다는 곳이 어디 있느냐고, 함께 일하자고 할 때 얼른 올라가라며 등을 떠밀어준 남편이 있었기에 올해 1월초, 저는 간단하게 가방 하나만을 챙겨 남편과 아이들을 뒤로 하고, 혈혈단신 서울로 왔습니다.

1월초, 서울 본사에서의 1주일 동안의 교육은 쉽지 않은 과정이었습니다. 젊은 20대들 속에서 이 중년의 아줌마가 아침 9시부터서 오후 6시까지 빡빡한 교육을 받으면서 느꼈던 것은 세상이 참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


교육을 받으러 가기 위해 이른 아침에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 추운 거리를 내달리면서, 혹은 2번에 걸쳐 지하철을 갈아타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 속에서 이리저리 떠밀리면서 했던 크고 작은 생각 중 하나가 지금 변화하지 않으면 정말 나는 그냥 그렇게 세월에 떠밀리면서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위급함. 그런 생각들로 결코 만만치 않았던 5일 동안의 교육을 마쳤습니다.

하지만 학원을 처음 개원한다는 것이 마치 황량한 벌판에 땅을 파고, 건물을 짓고, 나무를 심어 정원을 가꾸듯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들이 힘들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2월 5일 개원을 하기 위해서 1주일 동안 거쳐야 했던 교육은 아무것도 아니었고,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일들이 더욱 많았습니다.


그런 일들에 집중하다보니 2월 13일에 있었던 딸아이의 중학교 졸업식에도 이 부족한 엄마는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3월 5일, 그렇게 기다리던 딸아이의 한빛고등학교 입학식에도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딸아이에게 함께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문자메시지만 보냈을 뿐. 남이 볼까 뒤돌아서서 눈물만 닦았을 뿐입니다.

그 후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은 전학을 와 제 곁에 있었지만, 창원의 집이 정리가 되지 않아서 서울에 마땅한 거처도 마련하지 못하여 친정 언니 집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딸아이 학교에서 실시되는 전원 귀가 때에도 서울로 오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그 기간이면 저는 아들과 함께 창원으로 내려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일요일 오후면 서울로 돌아와야 하기에 딸아이보다 먼저 집을 나서려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던 적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딸아이가 가장 엄마를 필요로 하는 시기에 함께 할 수 없었기에 저는 딸아이에게 마음의 빚을 잔뜩 지고 있다는 미안한 생각뿐이었습니다.

딸은 한빛고등학교에서 주최한 섬진강도보행사에 3박 4일동안 참여했다.
딸은 한빛고등학교에서 주최한 섬진강도보행사에 3박 4일동안 참여했다.한빛고등학교

딸아이가 여름방학을 맞이하면 그때만은 꼭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에 남편과 저는 무리를 해서라도 거처를 마련했습니다. 그리하여 7월 8일 서울로의 이사를 마쳤고, 이번 여름방학을 딸아이와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말이면 딸아이와 저는 마치 친한 친구처럼 영화관을 가거나, 한강변을 찾아가 시원한 강바람을 쐬기도 하고, 지하철을 타고 동대문에 나가 쇼핑을 하면서 딸이 골라주는 옷을 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3일은 엄마가 근무하고 있는 학원에 나와 영어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걸어오며 나누는 이야기는 그동안 엄마로서 딸에게 해 주지 못한 마음의 빚을 씻어내는 듯했습니다.

엄마 흰머리가 많이 늘었다면서 족집게로 뽑아주기도 하고, 그동안의 학교생활을 이야기하며 딸과 보냈던 여름방학이 순식간에 지나갔다고 주섬주섬 살림살이를 종이박스에 싸서 이번 토요일 아침 택배로 보냈습니다.

이제 월요일인 오늘 오후 1시에 서울역에서 학교까지 대절한 버스를 타야 하는 딸아이에게 '어떤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줘야 하나'하는 생각으로 비몽사몽 꿈속을 헤매는 새벽, 딸아이가 저를 흔들어 깨웁니다.

"엄마! 엄마! 우리 학교 개학이 폭염으로 일주일 연기 됐데요."
"아니 정말이야? 이게 무슨 일이라니?"


잠결에 벌떡 일어나서 학교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들여다보니 오늘(8월 20일) 오후 6시까지 학교에 귀교해야 하는 기존의 공지사항이 이번 일요일인 8월 26일 오후 6시까지 귀교하라는 내용의 '개학 연기 공고'로 실려 있습니다.

오늘 아침 담임선생님과 전화 통화를 딸아이를 보면서, 그래 세상 살다보니 이런 일도 다 있구나 하는 생각도 잠시, 며칠 전 제가 <오마이뉴스>에서 마련한 볼쇼이 아이스쇼에 시민기자 초대 이벤트에 당첨된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딸과 함께 관람하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으로 이벤트에 응모했다가 덜컥 당첨된 후, 오늘 오후 딸아이가 훌쩍 떠나버리면 '누구랑 함께 가지?'하고 아쉬워했는데 말입니다.

아마 그동안 딸아이에게 하지 못한 엄마 노릇 멋지게 하라는 하늘이 준 기회인 듯합니다.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고 볼쇼이 아이스 쇼를 관람할 수 있는 23일이 기다려집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다음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여름방학 #딸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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