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이 새로워지려면 이 후보 먼저 새로워져야'라는 제목의 <조선일보> 22일자 사설.<조선일보>
"간판 공약인 ‘한반도대운하’부터 손 댈 각오를 해야 한다."
<조선>이 마침내 말문을 열었다. 22일자 '당이 새로워지려면 이 후보 먼저 새로워져야' 제하의 사설에서다. <중앙>에 비해 하루 늦었지만 그간 논란이 되어온 이 후보의 경부운하 공약에 대해 뒤늦게나마 비판의 날을 세웠다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조선>, '경부운하 말싸움'만 중계하더니...
하지만 시점이 문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한나라당의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선출된 뒤에야 경부운하를 문제삼는 것은 뻔뻔한 짓이다. 영악한 짓이다. 그간 언론이기를 포기했었다고 자성부터 해야 옳다.
한나라당의 다른 대선주자 전원이 경부운하의 경제적 타당성과 실현가능성을 문제삼으면서 강하게 비판을 했는데도 지난 2달여동안 <조선>은 유력대권 후보의 대표공약인 경부운하에 대한 정책검증을 사실상 포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앙>도 마찬가지다. 두 보수 언론은 그간 경부운하를 둘러싼 정치권의 말싸움을 중계방송하는 데 아까운 지면을 할애해왔다.
하지만 <조선>은 이날 사설을 통해 "이 후보가 한나라당을 바꾸려면 이 후보 스스로가 먼저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바뀌려면 던질 줄 알아야 하고, 이어가려면 끊을 줄 알아야 하고, 더 소중한 것을 지키려면 나머지 것을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운을 뗐다.
이어 "이 후보는 던지고 끊고 포기하는 자세로 먼저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과 의문에 부딪쳐야 한다"면서 "의혹을 一刀兩斷일도양단하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래야 黨당도 바뀐다"고 강조한 뒤 본론으로 들어갔다.
"던지고 끊고 포기하는 자세로 안보와 경제 구상 모두를 새롭게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간판 공약인 ‘한반도대운하’부터 손 댈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런 각오 아래 재탄생한 공약이 아니고선 국민의 마음을 잡을 수 없을 것이다."
<중앙>, 이제와서 '경부운하'는 득표전략일뿐이라고?
<조선>보다 하루 앞선 21일, <중앙>도 '이명박 후보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제하의 사설을 통해 경부운하 공약의 재검토를 강력 촉구했다.
"공약도 다시 점검해 주기 바란다. 일부 공약은 경선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다른 후보들의 지적에 귀담아 들을 대목이 많다. 특히 경부 운하는 이미 많은 비판을 받아 왔다."
그리고 <중앙>은 지도자로서의 자세까지 언급하면서 이 후보가 경부운하 공약에 대해 결단을 내려줄 것을 충고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잘못을 알면서도 머뭇거리면 기회를 놓치게 된다. 명분에 얽매여 국민을 곤경에 몰아넣는 것은 지도자로서 성실한 자세가 아니다."
<중앙>은 한발 더 나아갔다. 이명박 후보의 대표 공약 경부운하가 수도이전과 같은 '득표 전략'일 뿐이라고 평가절하 했다.
"단지 표에만 관심 있다면 수도 이전을 득표 전략으로 내세웠던 현 정부의 행태와 다를 바 없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부운하가 '제2의 국운융성'을 가져올 것이라는 이 후보의 그간 발언을 의식한 듯 한마디 덧붙였다.
"차제에 모든 공약을 전부 원점에서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과거가 아니라 21세기에 대한민국이 어떻게 해야 번영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명박 후보, <조선> <중앙>의 훈수 받아들일까?
이 후보가 그의 우군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과 <중앙>의 이런 훈수를 들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또 두 보수언론이 사설을 통해 한목소리를 낸 것은 이 후보가 자연스럽게 경부운하 공약을 폐기처분할 명분과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사전초석일 수도 있다.
두어 달전에 만난 박근혜 캠프의 한 핵심 참모는 "이명박 후보는 그의 대표공약이며 지역에서 얻은 표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경선 이전에는 절대 경부운하를 폐기하지 못하지만 이 후보의 주변에는 경부운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합리적인 참모들이 많다"면서 경선 이후 경부운하 공약 폐기 가능성을 점치기도 했다.
문제는 두 보수언론의 그간 보도 태도이다. <조선>과 <중앙>의 사설로만 보면 이들은 이 후보의 경부운하 공약의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 이 정도로 알고 있는 두 보수언론이, 이 정도로 경부운하에 대해 비판적인 이들이 왜 그동안 사실상 침묵해 온 것일까?
뒤늦게나마 언론으로서 마땅히 문제제기할만한 주장을 편 것에 대해서는 환영하지만, 선거시기 언론의 보도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이 사설은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명박 후보를 향해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일이 부끄러운 게 아니다"고 충고하기에 앞서 자신의 그간 잘못된 보도 행태에 대한 반성부터 해야 한다. "공약도 다시 점검해 주기 바란다"고 주문하기에 앞서 이제라도 경부운하 공약 검증에 스스로 나서야 한다.
언론은 마땅히 유력 대권 후보의 공약을 검증해야 한다. 검증은 가혹하리만치 철저할수록 좋다. 그게 바로 언론의 본령이다. 엉뚱한 데 가서 국민의 알권리를 외칠 게 아니라 정치인들의 공약이 현실 가능한지, 아니면 국민을 현혹하려는 것인지에 대해 파헤쳐야 하는 것이다.
최근 '경부운하, 축복일까 재앙일까'(오마이뉴스 발행)라는 제목의 책을 펴낸 박진섭 생태지평 부소장은 "경부운하 보도를 보면 <조중동>은 언론도 아니다"면서 "이런 중요한 문제에 대해 객관성을 유지하지도 않고 여과 없이 정치인들의 발언만 보도하는 언론은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대선 게임의 링에 막 오른 이명박 후보가 경부운하를 계속 고집할 경우 이 두 보수 언론의 보도태도가 어떻게 달라질 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