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빛 배롱나무에 한껏 취하다

[경북 서남부 여행] 달성 여행 ②

등록 2007.08.22 09:58수정 2007.08.22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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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는 듯한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낮. 챙 넓은 모자를 눌러썼는데도 후끈한 기운이 얼굴을 비벼댄다. 땀방울이 알알이 얼굴을 타고 흐르는데 유난히 갈증이 찾아온다. 용연사에서 멀지 않은 인흥마을에 도착한 것은 눈이 부실 정도로 햇빛이 강렬한 정오 무렵이었다. 인흥마을은 남평 문씨가 모여 사는 집성촌이다. 모두 일가친척인 9가구가 모여 사는 인흥마을은 마을이라 부르기에는 다소 애매하다.

인흥마을은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 스님이 머무른 적이 있는 인흥사터에 지어졌다. 인흥마을의 지명도 여기서 붙여진 듯하다. 고려말 원나라로부터 붓두껍에 숨겨 들여온 목화씨로 일대 의류혁명을 일으켰던 문익점의 18대손인 문경호가 집을 짓고 그 후손들이 분가하여 집을 지으면서 집성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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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봉정사로 드는 솟을 삼문. 삼문 앞에는 빨간 고추를 말리고 있다. ⓒ 문일식

좁은 아스팔트좌우로는 어울리지 않게 논과 밭이 이어진다. 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니 문화유산 해설사의 집이 우선 눈에 띈다. 비어있는 걸보니 먼저 온 여행객들과 함께 마을구경을 간 모양이다. 논길이 끝나고 작은 공터가 나오는데 시야는 거기서 턱하니 막혀버린다. 단단한 흙벽이 막아서고 있고,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려면 발걸음을 살짝 옮겨야 한다. 흙담이 끝나고 단단하게 생긴 솟을 삼문이 눈에 들어온다. 허한 공터에는 붉은 기운을 가득 머금은 고추들이 쨍한 햇볕 속을 나뒹굴고 있다.

이곳은 인흥마을의 재실 가운데 하나인 수봉정사가 있는 곳이다. 인흥마을 안내판이 있고, 주인장의 조심스러운 바람이 적힌 글귀가 붙어있다. 마당에는 어르신 한분이 인기척에는 신경도 안 쓰시고 일에 열중이셨고, 둘러봐도 되겠냐는 물음에 작은 쪽문으로 투박한 손짓을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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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봉정사의 전경. 수봉정사 앞 둔덕에는 여러 나무들이 옹기종기 군락을 이루고 있다. ⓒ 문일식

'끼익'하며 나무 맞물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고, 열려진 쪽문사이로 널찍한 공간이 나타났다. 널찍한 마당에 저편에 정면 6칸의 큼직한 수봉정사가 넉넉하게 앉아있고, 앞으로는 인위적인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그대로의 여러나무들이 작은 둔덕위로 옹기종기 모여 하나의 군락을 이루고 있다. 수봉정사라는 건축물보다는 수봉정사를 아우르는 전체적인 경관이 무척 조화롭다. 수봉정사에서 대문으로 이르는 길은 자연석을 박석처럼 깔고 적당하게 굴곡을 주었다.

수봉정사는 인흥마을의 입향조인 문경호의 후손인 문영박이 1930년대 지은 건물이다. 수봉정사의 '수봉'은 문영박의 호다. 현재는 수백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 또한 문영박의 호이다. 정면6칸 측면2칸의 팔작지붕을 이고 있는데 12칸 중 5칸은 방을 만들고, 앞의 6칸은 마루를 내었으며, 1칸은 계자난간을 돌린 누마루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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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봉정사의 거북모양 빗장둔테...두 마리의 거북이 서로를 힐끔 쳐다보고 있다. ⓒ 문일식

수봉정사에는 유난히 거북이가 많다. 수봉정사의 대문에는 거북이모양을 한 빗장둔테가 있다. 전통가옥의 잠금장치는 양쪽 대문짝에 빗장을 걸 수 있도록 짧은 나무토막을 붙이고 가운데 구멍을 뚫어 빗장을 질러 잠기도록 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 빗장을 잡아둠으로써 잠금 기능을 해주는 것이 바로 빗장둔테다.

웬만한 전통가옥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빗장둔테로 크기도 크거니와 정교함과 생동감에 이어 고급스러움까지도 느껴진다. 마치 살아있는 거북을 매달아놓은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다. 특히 거북의 정교한 귀갑문 가운데에는 건괘와 곤괘가 새겨져있다. 또한 대문의 앞쪽에 있는 작은 바위에도 온전한 거북이가 한 마리 새겨져 있다. 귀갑문양은 갖춰지지 않았지만, 둥근 머리와 짧은다리와 꼬리 그리고 몸통을 갖춘 온전한 거북이다.

수봉정사를 나와 마을을 둘러보는데 왠지 낯선 이방인이라는 생각에 괜히 움츠러든다. 유난히 길고 높은 담장 때문에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인흥마을의 집들을 돌아보기 위해서는 갔다가 다시 돌아 나와야 하는 수고로움을 맛봐야 한다. 마치 미로처럼 직선으로 곧게 들어갔다가 꺾이고, 다시 돌아 나오고를 반복해야하는데 대부분 문이 잠겨 있어서 웬만한 정성 아니면 돌아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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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흥마을 담장에는 능소화가 아름답게 피어있다. 마침 능소화에 벌 한마리가 날아든다. ⓒ 문일식

인흥마을 담장에는 유난히 능소화가 많이 피어있다. 흙담의 황토빛과 어우러진 주황빛의 능소화는 눈을 편안하게 해준다. 담 안쪽으로부터 담을 너머 세상구경을 하려는 듯 살포시 올라와 있기도 하고, 담장을 너머 줄기를 늘어뜨린 채 하늘을 향해 주황빛 발산하기도 한다.

마을을 다 돌아보고 나오는데 왠지 허전함이 들어서 생각해보니 광거당을 쏙 빼놓고 마을을 나서는 길이었다. 마침 문화관광 해설사의 집을 지나는 길이라 책을 읽고 계시는 해설사분께 광거당은 어디에 있는지를 여쭤보니 같이 가야만 볼 수 있는 곳이라며 잠시 후 같이 가자신다. 옥수수를 건네시며 잠시 앉아 있으란다. 바위에 걸터앉아 옥수수를 씹고 있노라니 시원한 바람이 주변을 계속 맴돈다. 책을 읽고 계시던 해설사분이 여유롭게 이곳에 앉아 있던 이유를 그제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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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거당 입구에서 바라본 풍경... 꽃 한송이가 새겨진 헛담 뒤로 대숲에 안긴 광거당이 보인다 ⓒ 문일식

광거당은 해설사분이 열쇠를 가지고 계시면서 인흥마을을 찾는 사람들에게만 해설을 들려주고 보여준다. 광거당은 인흥마을의 가장 바깥에 위치한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가장 먼저 담장이 눈에 띈다. 담장 고유의 기능이 아닌 행랑채와 광거당을 분리해주는 헛담이다. 진흙과 기와를 겹겹이 쌓은 헛담에는 기와조각으로 꽃 한 송이를 새겨 넣었다. 단순하고 밋밋할 뻔한, 어쩌면 큰 의미 없이 만든 담장이었을 텐데 기와조각으로 꽃까지 새겨 넣었으니 만든이의 깊은 배려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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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숲에서 이는 바람소리가 일품이다. 드라마 황진이를 찍었던 곳이기도 하다. ⓒ 문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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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거당의 지붕과 어울린 분홍빛 배롱나무 ⓒ 문일식

광거당은 정면 5칸의 'ㄱ'형건물이다. 앞으로 꺾어 누마루를 내었고, 광거당 뒤편으로 빽빽하게 우거진 대나무 숲이 일품이다. 담장안쪽으로는 분홍빛의 배롱나무가 화사하고, 담장너머로는 노송이 우거져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한다. 다소 음울한 느낌도 들지만 대나무 숲에서 바람과 함께 어우러져 들려오는 일렁임이 그저 좋다. 솨아~~ 사각사각거리는 대나무 숲의 소리를 듣고, 분홍빛 배롱나무의 강렬한 기운을 보고 있노라니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다. 기어이 이곳에서 오감만족을 하는구나 싶었다.

대구와 성주의 틈을 따라 태고정이 있는 육신사와 삼가헌을 찾았다. 태고정이 있는 묘동은 순천 박씨의 집성촌이라고 한다. 집성촌이 된 데에는 조선 세조의 왕위찬탈에 이은 단종복위운동으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하고, 영화에서나 나옴직한 역사적 사실을 접해야 한다. 성삼문,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와 함께 박팽년은 흔히 사육신이라 부른다. 단종복위운동이 김질의 밀고로 무산되고, 모의자들은 삼족지화를 입고, 집안이 풍비박산이 된다. 박팽년의 집안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둘째 며느리는 관비가 되어 대구로 내려왔는데, 마침 임신중이었다. 어명에 의해 아들이 태어나면 죽이고, 딸이 태어나면 관비로 삼을 운명에 처해졌는데, 같은 무렵 딸을 낳은 여종과 바꿔 기르게 되어 다행히 목숨을 건지게 되는데, 이 사람이 박팽년의 손자인 박일산이다. 이모부 이극균의 자수 권유로 당시 임금인 성종에게 사면을 받고 뿌리를 내리게 되는 곳이 바로 이곳 묘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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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사 입구... 배롱나무가 일렬로 늘어서 있어 분홍빛 느낌이 화사하다. ⓒ 문일식

육신사는 절의묘라는 이름으로 박팽년을 배향하던 사당이었는데, 박팽년의 후손이 여섯 선생이 사당문 밖에서 서성이는 꿈을 꾸고 나서 하빈사를 세우고 사육신을 함께 배향하게 되었단다. 흥선대원군 때 훼철되었다가 박정희 대통령시절 유적정화사업의 일환으로 육신사로 바뀌게 된다. 정형화된 듯 반듯반듯한 계단과 획일적인 붉은 기둥과 지붕들이 유적정화사업의 단면을 보는 듯하다.

유적정화사업 중 하나인 육각비는 무척 독특하다. 각 면마다 사육신의 행적을 적었는데, 행적을 적은 육각기둥 앞으로 거북모양의 귀부가 여섯 개고, 상부를 장식하는 이수부분도 육면 모두를 용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왕 사육신에 대한 행적을 적어놓았다면 이곳에 들르는 여행객들을 위해 그 분들의 행적을 잠시 음미할 수 있는 안내판을 하나 설치해 놓았으면 어땠을까 싶다.

육신사의 내삼문을 들어서면 홍살문 왼편으로 배롱나무의 분홍기운이 화사하게 펼쳐져 있다. 홍살문을 들어서면 왼쪽으로는 사육신을 배향하는 사당이 자리 잡고 있고, 오른쪽으로는 박팽년의 후손인 박일산이 이곳에 내려온 후 지은 99칸 대궐집중 남은 태고정이 자리 잡고 있다.

태고정은 박일산이 지은 99칸 종택이 임진왜란으로 불타고, 일부 남아있던 것을 1614년에 다시 세워 지금에 이르고 있다. 태고정은 다른 건축물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건출물이 팔작지붕 아니면 맞배지붕인데, 이 건축물의 경우 대청쪽은 팔작지붕을 방이 있는 쪽은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맞배지붕 옆으로 부섭지붕을 달고 있다. 지붕의 3가지 유형을 골고루 볼 수 있는 건축물이다. 태고정은 보물 554호로 지정되어 있다.

육신사에서 가까운 곳에는 조선 후기 때 지어진 삼가헌이라 불리는 집이 있다. 평범한 시골마을 길에 평대문을 통해 들어가면 널찍한 마당과 함께 여느 시골집과 같은 삼가헌을 만난다. 오른쪽 초가문을 들어서면 바로 안채의 영역이 된다. 마당에 들어서자 세 마리의 개들이 일제히 짖어대기 시작하는데 발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안에는 아무런 인기척도 없고, 개들은 마을이 떠나가라 짖어대니 내 발걸음은 갈지자로 방황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일단 녀석들을 달래는 게 급선무였다. 두 마리는 얼추 달랬는데 한 마리는 경계의 빛을 풀지 않고 계속 짖어대기만 한다. 어쩔 수 없다. 짖던 말든 난 내 갈 길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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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헌 내 하엽정과 어울리고 있는 배롱나무... 예전에는 연지에 연꽃이 가득했다지만. 지금은 없다. ⓒ 문일식

삼가헌 좌측에는 담장너머로 삼가헌의 별당채인 하엽정이 있다. 하엽정에는 연못이 하나 있는데 비 오는 날 하엽정의 툇마루에 앉아 듣는 연꽃잎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그렇게 일품이었단다. 하지만, 지금은 안타깝게도 연꽃은 하나도 없다. 연못 주변을 감싸 안듯 심어놓은 배롱나무의 분홍빛만이 하엽정의 운치를 대신하고 있었다.

때마침 한두 방울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난데없이 소나기가 거칠게 내리기 시작했다. 연못에 연꽃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며 진한 아쉬움을 연못위로 던지고 만다. 연못 위로 떨어지는 빗줄기가 한두 방울 떨어질 때는 동심원을 그리는 폼이 그렇게 예쁘더니 무심한 소나기는 잔잔한 연못 위 수면을 장난꾸러기 물 튀기 듯 하염없이 때리기만 한다. 비 내리는 연못과 배롱나무, 하엽정의 모습이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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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내린 소나기로 꽃잎에 올라탄 빗방울이 싱그럽다. ⓒ 문일식

하엽정을 나와 바삐 문을 나서는데 나를 보고 그렇게 짖어댔던 녀석이 갑자기 내린 비에 몸둘 바를 모르고 있었다. 나를 향해 무섭게 짖어댔던 죄 값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샘통이다. 바쁜 걸음으로 차안에 들어와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데 나름 운치가 있다. 와이퍼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마을의 모습이 선명하게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진다. 사방으로 사물을 쳐서 소리 내는 빗소리도 일품이다. 의자를 젖히고 편히 앉아 연꽃 가득한 하엽정의 옛 모습을 정중하게 더듬어 본다.

덧붙이는 글 | 8월 3-4일에 다녀왔습니다.

덧붙이는 글 8월 3-4일에 다녀왔습니다.
#남평 문씨 #인흥마을 #태고정 #육신사 #배롱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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