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군대는 측정의 연속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매년 반복되는 측정으로 간부들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사진은 필자가 군재직 시 평가를 받고 있는 모습. 이론시험도 치렀지만 이렇게 편제화기에 대한 측정에서도 예외일 수 없었다.김동이
특히, 1년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실시하는 전투력 측정에서는 각 분야의 실기측정 이외에도 각종 이론시험도 치른다. 군대에서 무슨 이론 시험이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줄로 안다.
군대에서 이론시험하면 적전술에 대한 이론 등의 군 교범 내용과 아군의 위치와 적의 주요 시설물과 지명을 백지 위에 그리는 백지전술 평가 등이 있다. 이중에서도 특히 교범내용은 책을 보고 공부해서 암기를 하면 되지만 백지전술은 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지 지형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우리 지역이야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지형을 숙지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북쪽지역은 가보지 않아서 지형을 파악하기 어렵다. 따라서, 북쪽지역의 지형과 시설물은 무조건 외우는 수밖에 없다.
2000년 중위 시절 포천에 있는 부대에 소속되어 있던 나 또한 측정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비전투병과(쉽게 말하면 행정병과라고 할 수 있다)였던 나는 전투력 측정 대상 선정 시 단골손님이었다. 아마도 잘 모를 거라 생각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비전투병과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역시 행정병과는 안돼'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 다른 간부들보다 더 열심히 측정준비에 임했다.
공부를 하면서 다행히도 어려워했던 과목에서 열외 된 나는 백지전술 시험에 부대대표로 나섰다. 열심히 암기를 했지만 측정을 마치고 나니 지명 몇 개가 누락되었다. 그래서 누락된 내용을 상급자에게 보고했더니 그 자리에서 대뜸 "대학 나온 놈이 그거 하나 100점 못 맞냐? 하사관들도 다 맞는데"하는 것 아닌가.
'학력을 떠나서 갸들은 훈련을 많이 했고 지금 몇 년째 이 부대에 근무하고 있잖아요. 다 맞는 게 당연하죠'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부대 평균점수를 까먹은 나로서는 자존심이 상해 결국 이 말도 하지 못하고 꾸지람만 들었다.
군사령관 스피치라이터 자리가 비었는데 한번 해 볼래?
이후에도 국방부 시계는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갔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부대를 떠나 다른 부대로 옮겨야 하는 시기가 왔다. 이곳저곳을 수소문하고 있던 어느 날 군사령부 비서실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군사령관 스피치라이터 자리가 비었는데 한번 해볼래? 지금 후보자 모집하는데."
"네,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래? 그럼 몇 가지만 물어보겠는데, 이런 일 전에 해본 적 있나?"
"네, 해본 적 있습니다. 그리고 잘할 자신 있습니다."
"경험이 있다니 다행이군. 그럼 학교는 어디 나왔지?"
"학교요? 아니 학교는 왜?"
"왜는? 그냥 보고용이지 뭐."
"그래요? 지방에 있는 대학교 나왔는데요. ○○대학교요."
"알았어, 조만간 연락주지."
"학교 때문에 안 될 수도 있나요?"
"......"
이후 군사령부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한참을 기다리던 나는 군사령부가 안 됐으면 다른 부대라도 알아볼 양으로 군사령부 비서실에 전화를 했다.
"선배님! 전데요 스피치라이터 뽑았나요?"
"그렇지 않아도 연락하려고 했는데 ○대위가 왔어. 다른 좋은 부대 있을 거야."
더 이상 묻지 않고 그냥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아무리 생각해도 떨어진 이유가 지방 대학 출신이라는 점 때문인 듯했다. 나중에 아는 선배를 통해 알아 본 바로는 선발된 ○대위는 서울의 유명한 모대학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억울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직책에 대한 경험은 내가 더 많이 쌓았을 것인데 어느 대학 출신인지가 뭐 그리 중요하다고! '경험이냐? 출신 학교냐?'의 싸움에서 '출신 학교'가 KO승을 거둔 꼴이 되고 만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바로는 학력이 높은 사람보다도 경험이 많은 사람이 일을 잘한다. 사회가 학력을 중시한다면 군대만큼이라도 능력을 중시해야 하지 않을까? 전투는 학력이 아닌 개개인 또는 부대의 능력으로 하는 거니까.
덧붙이는 글 | <내가 겪은 학력 콤플렉스> 응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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