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대선, 시민사회는 희망인가. 정대화는 “희망”이라고 확신했다. 정치학 교수에다 시민운동가, 이젠 정치인 타이틀까지 거머쥔 <대통합 민주신당> 대표 비서실장. 그는 무엇을 근거로 이렇게 말했을까.
<대통합 민주신당>을 창당하면서 시민사회의 일대일 지분을 약속받고 범여권과 통합을 이뤄낸 ‘성과’를 두고 질책과 지지 의견이 분분하다. 필자는 <미래구상>에 참여한 당사자로서 지난 8월 3일자에 기고한 정대화의 ‘희망’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를 밝히고자 한다.
<미래구상>이 정치운동의 장기적 비전을 가진 단체이기를 바랐던 필자로서는 정당의 길을 걷고 있는 현 상황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지켜보았던 터였다. 그런데 정대화의 글은 사실과 다르고 이치에도 맞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창당은 ‘시민사회의 정치세력화’이거나 ‘시민사회의 정치 참여’가 아니라 시민운동 출신 몇몇 인사들의 정치 입문으로 보아야 옳다. 이 핵심적 고리가 정대화의 글을 통해 왜곡돼 있다. 필자가 때늦은 반론을 쓰게 된 이유다.
진실의 둑을 트기 위해 다소 긴 얘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정확히 알려야 할 내용이기에 이해관계가 없는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재미가 없을 수도 있을 테지만, 진보의 미래를 모색하는 분들께는 완독을 당부 드린다.
참고로 정대화의 주장으로 인용한 부분은 <미래구상>의 준비 과정에서 작성되거나 대선토론회 등에서 그가 직접 발표한 글이다.
비전의 혼선, 정치인가 운동인가
<미래구상>은 “열린우리당의 개혁 실패와 한나라당의 집권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도 높은 시점에서 범 진보개혁세력의 연대가 절실하다”는 필요성에서 출발했다. 그렇다고 해서 <미래구상>의 성격을 ‘반한나라당’으로 규정지을 수는 없다. “개혁 부재와 사회 양극화 심화, 한반도 평화체제 요원, 증오의 정치에 따른 가치관의 혼돈, 지역주의 구조화, 민주주의의 토대 유실” 등 현실 인식은 복잡했다.
민주노동당의 집권 가능성은 현실성이 없고, 열린우리당 세력을 현실적, 정책적 대안으로 삼을 수도 없는 탓이었다. 마땅한 대안이 없는 조건에서 “반수구 반양극화연대”를 내건 <미래구상>의 ‘선(先)정책 후(後)후보’ 전략은 현실적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구상> 발족의 취지와는 무관한 범여권과의 통합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초창기 ‘정치 조직으로 갈 것인가, 운동 조직으로 갈 것인가’ 하는 정체성 논의는 해답의 일단을 보여준다. 정치 조직으로 간다면 정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운동 조직으로 간다면 진보개혁세력의 연대 등을 추구하며 정치운동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미래구상>은 구성원들과 함께 자기정체성을 합의하거나 결론 내린 바 없다. 의견이 상충되어 논의를 매듭짓지 못한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의제로 대접조차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필자를 비롯한 몇 사람은 논의의 진전을 위해 정대화 집행위원장에게 수차례 문제를 제기했었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다른 실무라인으로 책임은 미뤄지고 이렇다 할 진전을 보지 못하는 답보 상황이 계속됐다. 그나마 실무자 중심의 워크숍을 통해 거친 문제제기가 이어졌고 아무도 해소해주지 않는 갈증을 달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2월 말 전체 발기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워크숍에서조차 <미래구상>의 자기정체성 논의는 잠시 거론되는 수준을 넘지 못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정치를 하고 싶어 안달이었던 사람들과 진보대연합이든 뭐든 진보개혁세력의 연대를 뛰어넘는 운동을 도모하려던 사람들 사이의 동상이몽이 그렇게 계속되어선 안 될 일이었다.
운영에서의 ‘민주주의 실종’
한국사회의 미래를 논하기에 앞서 어떤 조직이든 비전을 세우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다. 그럼에도 앞서 말한 것처럼 <미래구상>은 내부의 서로 다른 생각을 풀어내거나 매듭짓지 못했다. 이유는 또 있었다. 부끄러워 입에 담기조차 싫지만 그 이유란 바로 ‘민주주의의 실종’이다.
진보적 활동을 하는 단체에서 ‘민주주의’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참담한 노릇이다. 인정하기 힘든 일이지만 민주주의 문제는 결국 괴물 <미래구상>을 낳았다. <통합과 번영을 위한 국민운동>과의 통합 과정에서 발기인들과 합의를 거치지 않아 뒤늦게 총회를 연 일은 예사에 불과하다. 정당 추진은 그야말로 ‘민주주의’가 철저히 무시되는 과정이었다. 정보의 유출을 막는다는 핑계로 정대화를 위시한 몇 사람이 정당 논의를 비밀스럽게 추진했던 것이다.
필자는 이즈음 조직을 정리했다. 남아있던 사람들의 전언에 따르면 통합된 조직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창당을 위해 급조된 <미래창조연대>가 발족하면서 통합조직이 막을 내리기까지의 두 달도 안 되는 기간은 구성원들 간의 불신과 언쟁으로 점철되었다.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만들어보고자 했던 <미래구상>의 ‘정치체·운동체’를 둘러싼 비전 논의는 자취마저 사라지고 말았다. “직접 민주주의의 확장”을 외칠 대상이 다름 아닌 바로 자신이었던 셈이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도 견지하지 못한 <미래창조연대>가 통합 신당 내에서 범여권과 중앙위원회를 동수로 구성했다는 사실만으로 “가장 민주적인 합의제 방식” 운운하는 것은 지나던 소가 웃을 소리다. 또 이는 <미래구상>에 지지를 보내고 참여했던 시민사회(일부라 할지라도)를 싸잡아 매도하는 일이기에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정대화는 민주주의 운운하기에 앞서 그토록 강조하는 “유일한 희망으로서의 시민사회” 실체를 우선적으로 밝혀야 할 일이다. 시민사회 진영이 쌓아 온 민주주의의 성과가 몇몇 정치인들의 행보에 활용되는 것은 온당치 못하며,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정대화는 시민사회와 어떤 비밀 협약이라도 있었던 마냥 기회 있을 때마다 시민사회를 거론하지만, 정작 시민사회는 <미래구상>을 자신들의 대표 선수로 인정한 바 없다. 만일 시민사회가 정대화의 ‘이름 팔아먹기’를 단체의 이름으로 굳이 반박하지 않는 이유가 따로 있다고 한다면, 나아가 정대화를 비롯한 신당 그룹에게 달리 기대하는 바가 있다고 한다면, 정치권의 이중대 의혹이나 운동의 위기 타령을 넘어 궤멸적 상황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시민사회의 냉철한 판단이 요구되는 대목이다(필자 또한 <미래창조연대>를 만들기 전에 사퇴를 했다고 해서 <미래구상>의 내적 의제를 지켜내지 못한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는 것도 그 책임의 일환인 셈이다).
전략의 번복과 폐기
<미래구상>의 비전 논의와 함께 전략의 폐기 과정은 <미래창조연대>와 범여권의 통합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단면이다. 실무자들은 외부 전문가들과 함께 ‘미래구상 로드맵’을 만들어 온라인을 가장 중요한 전략으로 채택했다. 온라인을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언론에는 ‘국민정책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공개된 바 있다. 온라인 전략은 ‘선정책 후후보’ 전략과 맞물려 정치체가 아닌 운동체로서 <미래구상>의 비전을 만들어 갈 핵심 방도였다. 하지만 전문가를 발굴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청취하여 정책화하자는 ‘국민정책네트워크’는 끝내 시도조차 못하였다. 대신 정치적 이벤트였던 ‘전국순례’에 재정을 투입했다. 이는 사실상 핵심전략을 폐기했다는 점에서 운동체로서의 비전을 접고 정치체로 가자는 우회적 표현에 불과했다.
통합 신당에 들어가 “(통합 신당이)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정책을 가감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설득력을 갖기에 이미 때는 늦었다. 대선을 불과 4개월 남겨놓고 시민사회의 참여로 정책선거를 치르겠다는 말을 과연 몇 사람이나 납득하겠는가. 더구나 통합 신당 세력이 대권을 쥔다고 한들 그들의 면면은 이미 4대 개혁 입법안을 망쳐먹은 전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정대화가 지칭하는 ‘시민사회’도 분명치 않거니와, 대선용 정책자료집 수준을 뛰어넘는 ‘<미래창조연대>를 위한 정책’을 제안해 줄 시민사회도 거의 없어 보인다. 차라리 ’범여권과의 동등한 지분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진영이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호소하는 편이 한결 솔직하지 않겠는가.
‘대국민 사기극’ 혹은, ‘정신분열’
정대화를 비롯한 <미래구상>에 몸담았던 통합 신당 추진 세력은 ‘반한나라당’이라는 대목에 와서 자신들이 <미래구상>의 취지를 통합 신당에서도 일관하게 유지하고 있음을 자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년 10월 그들은 <미래구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냉전=양극화세력’인 반면 열린우리당은 ‘평화=양극화세력’이다.”
앞서 확인했듯 2월 말 워크숍을 통해서도 <미래구상>은 ‘반한나라당 연대’가 아닌 ‘반수구 반양극화연대’의 기치를 내걸었다. 이는 범 진보개혁세력의 연대는 무엇보다 시민사회를 비롯한 ‘사회운동의 위기’를 내부로부터 점검하고 자기반성에서 새롭게 출발해야 했던 사정과 관련된다. 이는 만일 한나라당 집권 가능성의 위기감만 조성하여 반사이익을 보고자 한다면, 아무런 대안 없이 사이비 개혁세력에게 또다시 집권을 연장해주는 결과를 낳을 게 분명하다는 예측에서 비롯된 문제의식이었다.
그러나 <미래구상>은 결국 그들과 손을 잡았으니 ‘대국민 사기극’을 벌였거나 ‘정신적 분열’ 상태에 놓여 있는 셈이다. ‘집권세력에게 면죄부를 주는 데 그칠 수 있다’는 일부의 우려는 기우가 아니었다.
확인하다시피 <미래창조연대>의 인식은 정확히 시민사회세력이 우려하던 상황에 놓여 있다. 정대화가 대선을 “전시상황”에 비유했던 근거도 ‘한나라당과의 “전투”’에 있었던 셈이다. 지난 7월 KBS <심야토론>에 나온 그는 “이번 대선에서 통합 신당이 집권을 한다면 그 정권의 성격을 무엇으로 볼 수 있습니까?”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며 이렇게 말한다. “정권재창출이라고 볼 수 있지요.”
‘한미FTA 유보’가 시민사회 입장?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원칙에서의 한발 양보는 결국 원칙을 저버리는 결과를 낳기 마련이다. <미래창조연대>는 통합 신당 창당 과정에서 ‘한미FTA 연내 처리 유보’라는 이상한 결론을 맺었다. 이에 대해 정대화는 “통합 과정에서 한미FTA 문제로 상당한 입씨름을 했지만 접근이 쉽지 않았다”고 속사정을 말한다.
이쯤에서 지난 기억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가 ‘새로운 정치운동 조직 건설과 대선 대응’이라는 문서를 돌리며 <미래구상>을 도모할 즈음 그의 주장은 선명했다. “한미FTA를 통해 사회적 양극화를 가속화하는 시스템이 완성되고, 정치적 보수화가 진행되다면 대부분 국민들의 삶의 질은 극도로 악화될 것이다.” 또 “노무현 정권의 사회적 약자 및 진보적 가치에 대한 담론적, 물질적 공격(귀족노조 담론, 시민운동에 대한 요구, 경찰의 과잉진압, 새만금 등)은 극우세력과 동일한 것이었으며, 이는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개발동맹이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고 일갈했다. 결론에 이르러서는 “진행 중인 한미FTA 협상을 즉각 중지하고 개방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까지 피력했다.
신자유주의에 그토록 단호한 입장을 취하며 극단적 사회 양극화를 우려하던 이들이 어느새 그 추진세력의 편에 서 있는 꼴이다. 설령 한미FTA를 통해 국부를 창출할 수 있다는 가설에 종이를 벨 듯 벼린 응수는 없더라도 지금 당장 도륙 날 것이 예상되는 민중의 삶을 옹호해야 할 입장만은 포기해선 안 된다. 그것이 바로 운동이며,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적 DNA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당을 주도한 시민사회가 자부심을 갖고, 안도해도 좋을 것”이라며 외려 ‘시민사회’를 위로하는 정대화의 모양새는 보는 이들을 참으로 무색케 한다. 백번을 양보해 우선 집권을 하고 나중에 원칙과 내용을 채우겠다는 논리라고 해도, 이는 직면한 사회 부조리를 외면하고 출세하여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식의 유치한 발상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시민사회 팔아 정치 진출
“제도 정치권과 연합하여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정책적으로도 이롭지 않다”며 새로운 정치운동을 주창했던 <미래구상>은 “노사모보다 더 생산적이고 지속적”일 것이란 바람과는 달리 6개월도 못되어 용도 폐기되었다.
<미래구상>의 후신인 <미래창조연대>의 정대화는 “시민사회의 지분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참여”했음을 강조하며 “시민사회의 참여를 수혈이나 들러리로 생각하는 관점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이미 그들은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설령 그가 주장하는 ‘대선 승리’가 실패로 돌아간다 할지라도 정치학자로서 행한 ‘정치적 실험’의 결과는 그에게 엄청난 자산을 남겨줄 것이다.
비록 일부에 불과하지만 시민사회가 모아낸 소중한 사회적 지분마저 정치적 기득권 확대를 위해 마음대로 바꿔치기하지 않았는지 의구심이 드는 건 필자만의 생각일까.
물론 ‘국민의 정부’에서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기득권을 누릴 목적에 원칙과 신념을 저버린 사례가 운동바닥에 하나둘이었던가. 그렇지만 “주체적으로” 나서서 사이비 개혁세력에게 면죄부를 주고 판을 꾸렸다는 점에서, 정대화의 말을 빌면 “나라 안팎 어디에도 이런 사례는 없을” 뿐만 아니라,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대선 승리’가 달성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세력에게 ‘시민사회’를 양도하고서 사회운동의 위기를 논하는 건 한심한 노릇이다. 선거가 끝난 뒤, 정치 입문을 그토록 바랐던 그들이 정치적 단물을 다 빨아들이고 나서 ‘대중(언론)이 진보운동을 싸잡아 매도한다’고 하소연해봐야 누가 들어주겠는가. 시민사회는 만시지탄의 후회 대신 지금 분명하게 돌아서야 한다. 그들이 가고 있는 길은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프레시안>, <참세상>, <민중의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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