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쿠리를 누가 발명했는지 무좀의 발가락 양말 만큼이나 창의적이라고나 할까 ㅋㅋ.. 예전엔 맨손으로 잡았는데 우연히 한번 사용하고 부터는 이젠 이것 없으면 고디 못 잡아.정명희
낚시는 얼마나 재미있는 것일까? 얼마나 재미있기에 모자하나 달랑 쓰고 땡볕에서 몇 시간이고 도를 닦는 것일까. 그리고 골프는? 골프는 또 얼마나 재미있기에 그 넓디넓은 잔디들판에서 기껏 한손에 쥐어지는 공 하나를 바라보며 역시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고행하는 것일까.
낚시와 골프처럼 남들 보기엔 지루해 보이나 한발 담그고 보면 무척 신나는 놀이를 나 또한 한 가지 가지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고디' 잡기이다. 지역에 따라서 다슬기, 올갱이, 골뱅이, 고둥 등으로 불리 우는 이 물건. 생각만 해도 동공이 커지고 마구 흡족해진다.
어린 시절, 한 살 위인 동네언니는 심심하면, '우리 고디 잡으러 갈래?'하면서 나를 꼬였다. 나는 잘 잡지 못하기에 언제나 들러리였음에도 '이번에는 기필코 내가 많이 잡을 거야' 다짐을 하며 따라나서곤 하였다. 그러나 매번 승리는 언제나 마을 언니의 몫.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고디를 잘 잡는 거야?"
"있잖아. 돌 같은 것 살짝 들어 올리면 그 속에 있어. 그리고 모래 속에도 있고."
그녀가 시키는 대로 돌도 넘겨보고 모래도 파보지만 내가 넘긴 돌에는 기껏 한두 개 밖에 없음에 반해 그녀가 넘긴 돌에는 항상 대여섯 마리 이상씩 고디들이 숨어있었다.
"돌 넘겨도 잘 없구만."
"그래도 잘 보면 있다."
어떤 때는 고디는 건성이고 그녀가 잡는 양을 관찰한 적도 있었다. 가만히 보면 그녀는 독수리가 뭐 낚아 챌 때처럼 눈을 크게 뜨고 정확히 목표물을 보고 손을 민첩하게 물속으로 집어넣었는데, 다시 물을 나온 손에는 어김없이 고디가 들려있곤 하였다.
하여간 두어 시간 냇가를 거슬러 올라가며 잡아낸 끝에 둘의 양을 비교하자면, 그녀가 100일 때 나는 항상 30수준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아아, 언제 저 언니를 함 이겨보나 앞이 암담, 깜깜 하여지곤 하였다.
그렇게 10전 10패를 하는 사이 유년은 지나갔고 뒤이은 청춘시절엔 더 이상 고디 따위는 잡고 싶지 않았다. 잘 잡히지도 않고 더 이상 실패도 지겹고 '나는 노력해도 안 되는 앤 가봐' 지레 힘이 빠지니 자연 흥미도 옅어졌다.
서른 넘어 다시 찾은 고디 잡기의 즐거움
그랬는데 결혼하고 정기적으로 친정엘 가면서 이 재미를 다시 찾게 되었다. 친정에 가서 점심을 차려먹고 엄마에게 이런저런 동네뉴스를 듣는 데는 두시간정도면 족했다. 내가 더 이상 물을 말도 엄마가 더 이상 해줄 말도 없을 즈음, 그러면 이제부터는 슬슬 고디나 한 번 잡아볼까?
"엄마, 내 오기 전에 누가 한번 훑었나?"
그럴 때면 엄마의 대답은 주로 두 가지였다.
'없다. 어제 OO할매가 다 주워뿟따.' 혹은, '몰라, 요새는 바빠서 다들 고디 주울 정신이 없어서 있지 싶다.'
이미 주웠다고 하면 김이 빠졌고 아무도 안 건드렸다고 하면 야호! 쾌재를 부르며 냇가로 달려갔다. 내 오늘은 기필코 만선(?)하리라.
뒤늦게 고디를 주우면서 그 옛날의 패착을 곱씹어 보자니, 그때는 집중력이 없어서 그렇게 못 주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덤벙대기만 하고 집중하지 않으니 일렁이는 물속의 작은 물체가 보일 리가 있나.
아무튼, 커서 줍다보니 또, 나를 안달 나게 만들던 마을언니가 없는 완전 독무대이다 보니 예전에 비해 고디 잡는 실력이 많이 늘었다. 묘한 것은 운동만 그런 게 아니라 이 고디 줍기도 회를 거듭할수록 요령도 생기고 집중력도 더 길러진다는 점이다. 때문에 내가 고디를 주워오면 엄마는 항상 '제법 주웠네'하며 칭찬해 주었다.
문제는 이 재미를 그동안은 1년에 기껏해야 3번 정도 밖에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어버이날 즈음 한 번, 초복에 한 번, 추석에 한 번. 친정엘 더 자주가면 더 잡을 수도 있겠지만 말처럼 쉽지가 않아 항상 세 번으로 끝났다.
이런! 명당을 지척에 두고 감쪽같이 몰랐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