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팍하고 음침한, 그리고 섬뜩한

[서평] 기리노 나쓰오 단편집 <암보스 문도스>

등록 2007.08.27 12:03수정 2007.08.27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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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보스 문도스>겉표지
<암보스 문도스>겉표지황금가지
<아임 소리 마마> <아웃> 등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기리노 나쓰오의 단편집 <암보스 문도스>는 장편소설만큼이나 뾰족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음모와 배신, 왕따와 복수 등 저자의 단편소설도 장편소설과 맥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동일 작가의 것인 만큼 어느 정도 그런 경향을 보이기야 하겠지만, 기리노 나쓰오는 그 정도가 심하다. 정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장편소설에서 다룬 주제들을 날카롭게 집약한 것이다. 덕분에 <암보스 문도스>는 장편소설처럼 섬뜩한 느낌을 주면서도, 단편소설답게 그 느낌이 강렬하다. 인간들 사이의 그 '원한'들을 포착한 것이 공포소설이 우습게 보일 정도로 녹록치 않은 것이다.


<암보스 문도스>에는 7개의 단편소설이 담겨 있는데 첫 번째는 어디에서나 왕따를 당하는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 '식림'이다. '식림'의 그녀는 기리노 나쓰오의 유명 작품에 등장한 '그녀들'의 특징을 모두 지닌 여인이다. 쳐다보면 기분이 나빠지게 만드는, 음울함을 달고 다니는 여인이라고 할까? 그녀는 직장은 물론 집에서도 왕따다. 물론 그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학생 시절에도 그랬다. 그녀를 좋아해주는 것은 오직 조카 카나 뿐이다.

그런데 카나가 자신처럼 왕따를 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카나가 성장해서 자신처럼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된다. 그녀는 카나를 괴롭히는 학생에게 찾아간다. 그녀는 어떻게 복수할까? 어른으로써 아이를 폭행하는 것? 혹은 납치? 그런 것들과는 전혀 다른, 약간은 천진난만한 방법인데 생각해보면 섬뜩하기 이를 데 없는 복수다.

두 번째 소설 '루비'는 배신에 대한 소설이다. 노숙하는 사람들 사이에 여자가 나타난다. 여자는 갈 곳이 없다고 하고 노숙자들은 그녀를 공유하는 조건으로 함께 살기로 한다. 하지만 그녀를 가장 처음에 발견한 주인공은 그것이 싫다. 사랑은 아닐지라도, 순수한 관계로 살고 싶어 한다.

그는 가진 것, 비록 노숙하는 처지에 갖고 있는 것은 종이집 같은 것뿐이라 해도 그 모든 것을 놔두고 그녀와 함께 도망치려고 한다. 애틋하다면 애틋한 사랑이지만, 저자는 다른 이들로 하여금 그것을 잔인하게 비웃어준다. 배신이 난무하는 세계에서 순진한 사람이 파괴된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이 말이다.

또 다른 소설 '사랑의 섬'은 비밀에 대한 이야기다. 여자 셋이 여행을 떠났는데, 그곳에서 그녀들은 각자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주제는 성과 관련된 것이었는데,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에 나오는 여자들답게 그녀들이 하는 말은 거침이 없다. 은밀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소설로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다운 작품인 셈이다.


표제작 '암보스 문도스'는 이 모든 것들이 축약된 소설이다. 이제 막 초등학생들의 담임이 된 여선생은 교감 선생과 함께 비밀스러운 여행을 떠난다. 그런데 그 사이에, 반의 학생 한 명이 사고로 죽는다. 여선생과 교감 선생이 돌아왔을 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그들은 모두 처참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죽은 아이의 가족이 여선생을 찾아와 아이가 죽은 것이 석연치 않다는 말을 한다. 사고로 죽은 것이 아니라 함께 있던 아이들이 무슨 짓을 한 것이 아니겠냐는 식으로 말한다. 초등학생들이라고 하지만 이성적인 판단이 부족한 만큼 더 잔인한 짓을 할 수도 있는 법인지라 여선생도 그것을 알아보기로 하는데 알면 알수록 사건의 이면에는 두려운 사실들이 가득하다. 누군가를 노린 음모, 음모를 위한 동맹, 극악한 잔인함 등이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유유히 떠다니고 있던 것이다.


그 외의 단편소설들도 문체나 주제, 소재 등이 앞의 것들과 비슷하다. 이래저래 기리노 나쓰오의 팬이라면 즐거움을 한껏 얻을 수 있을 작품인 셈이다. 물론, 이런 독특한 소설집이라면 기리노 나쓰오의 팬이 아니라도 즐기는데 지장은 없을 터이다. 이렇게 괴팍하면서도 음침한, 동시에 고급스러운 섬뜩함을 주는 소설집은 쉽게 만나기 어려울 테니까.

암보스 문도스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황금가지, 2007


#기리노 나쓰오 #암보스 문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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