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문화재를 찾아 헤맨 적이 있나요?

[부여 홍산 일대 답사 04] 홍양리 5층석탑

등록 2007.08.29 13:49수정 2007.08.29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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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답사에서 가장 힘든 기억을 꼽으라면 홍산동헌을 떠나고 나서의 기억을 꼽을 수 있다. 홍산동헌을 떠난 뒤 기자는 홍산향교를 찾아 떠났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에게 길을 묻지 않고 정확한 지리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사람들에게 물어보면서 찾아 나섰으면 되리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땐 마을과 정반대방향으로 향하면서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게 되었다. 그때부터는 사람들에게 물어서 찾고자 해도 찾기가 힘든 상황이 되었고, 결국에는 길을 헤매는 꼴이 되었다.

문화재를 찾아 길을 헤맨다는 것을 무엇이라고 말해야할까? 사실 이는 제대로 된 준비를 하지 못한 내 잘못이 전적으로 크다고 해야겠다. 그러나 대중이 구하기 쉬운 관광안내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는 유적을 주소 하나로만 찾아 나선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기자는 문화유적 답사를 즐기며 요 근래 몇 년간 디카와 남에게 별로 자랑할 것도 못 되는 얄팍한 지식 하나로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녔다. 기껏해야 교통편 조금과 어떠한 문화재가 있는지 정도만 알고 가는 경우도 허다했는데, 그래도 결국에는 웬만한 곳은 다 둘러보았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버릇은 기자가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하는 게 가당 합당하리라. 그러나 굳이 핑계를 들자면, 모르고 떠나서 현지에서 길을 찾고 문화재를 찾아다니는 답사가 더 재미있다. 미리 알고가면 마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필요성도 떨어질뿐더러,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문화재가 나왔을 때의 쾌감을 느끼기도 힘들다. 그래서인지 기자는 답사를 갈 때 모르고 헤매면서 찾아보는, 그러한 답사를 한번 해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그러면서 생기는 여러 에피소드들은 추억의 주머니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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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를 찾아 헤매다 만난 장승 부부들. 사전조사가 미미하면 여러 실수를 하기도 하지만, 이런 생각치도 못한 다른 것들과 조우하기도 한다. 그때의 반가움과 쾌감은 답사의 또 다른 매력이다. ⓒ 송영대

결국 기자는 사전 준비 미비로 홍산향교를 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신 길을 헤매면서 장승들을 보게 되었다. 세운 지 얼마 안 된 장승이었지만, 쌍쌍이 찻길 옆에 자리 잡고 있어서 지나가는 이들을 조금이나마 즐겁게 해준다. 익살스런 표정에 하얗게 칠한 얼굴, 빨갛게 충혈 된 눈에 입을 벌리며 무서운 척을 하고 있으나 천하대장군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빠진 이빨들이 도리어 웃음을 자아낸다.

천하대장군 옆의 지하대장군께서는 더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천하대장군은 무엇이 무서운지 몸을 살짝 꼬고 있는데, 아마도 어젯밤 종일 지하대장군께 바가지를 긁혔기 때문이 아닐까? 나무로 간단하게 만든 장승들과 굽은 소나무들이 함께 어우러져 춤판을 벌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 모습에 절로 흥이 난다. 지하대장군 뒤의 소나무는 가장 흥에 취해서인지 두 팔을 하늘을 향해 벌리고 춤을 춘다. 지나가는 바람은 춤사위를 돋우는 음악이던가!

장승들의 흥겨운 춤사위를 보니 어느새 길을 헤매고 있다는 것을 깜빡하였다. 다시 논두렁을 지나 천천히 걸어가니 마을이 나왔다. 그래서 그냥 홍산향교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이젠 석탑을 찾아가기로 하였다. 마을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먹으면서 홍양리가 어디냐고 물어보니 저기 건너편으로 가면 된다고 말해 주셨다. 천천히 그곳으로 걸어가니 도로가 나왔다. 길이 몇 갈래여서 또 지나가는 아주머님께 홍양리가 어딘지 친절하게 가르쳐 주셨다. 홍양리는 마을에서 산하나 넘으면 되는 곳으로 생각보다 가까웠다.

길가에서 천천히 살펴보니 표지판이 하나 보인다. 갈색 표지판임을 보아 쉽사리 문화재를 지칭하는 것임을 알고 서둘러 달려가니, 예상대로 홍양리 5층석탑이라고 써 있었다. 표지판도 보이거니와 이제는 거의 다 왔구나란 생각에 길을 재촉하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석탑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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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양리 5층석탑을 찾으러 마을 사람에게 물어보자, 그 할아버지께서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셨다. 이게 그때 할아버지가 타고 길안내를 해 주시던 경운기로서 시골의 인심이 느껴진다. ⓒ 송영대

왼쪽엔 논이요, 오른쪽에도 논이다. 작은 도랑 하나가 흘러가고 주위에 사람이 없나란 생각에 둘러보니, 마침 뒤에서 한 할아버지께서 경운기를 몰고 오신다. 덜덜거리는 소리와 함께 기자 옆을 지나가자, 마침 잘 됐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할아버지에게 말씀을 여쭈었다.

“저기, 어르신. 이 마을에 석탑이 어디에 있나요?”
“석탑? 저 쪽에 있지. 나 따라오면 되유.”

결국 이번에도 무작정 경운기를 따라 시골길을 걸어갔다. 경운기에 얻어 타고 싶었지만 비료가 가득히 쌓여있어 얻어 타기가 좀 그랬다. 경운기를 따라 걸어가니 길이 두 갈래로 나 있었다. 할아버지는 거기에서 손가락으로 양계장을 가리킨 후, 그 뒤편에 석탑이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기자는 감사하다는 말을 하곤 양계장 옆을 돌아 올라갔다.

조금 가자 과연 석탑이 하나 보였다. 나름 고생고생해서 찾아온 격인데, 석탑으로 가는 길에는 여러 기와파편이 있어, 이곳이 절터였음을 추측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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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양리 5층석탑. 백제계 석탑으로 1층 탑신부는 후대에 수리된 것으로 보인다. 무량사 5층석탑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데, 충청도와 전라도엔 이런 백제계 석탑들이 다수 보인다.(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 29호) ⓒ 송영대

흥양리 5층석탑은 고려시대 탑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석탑이다. 현재 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29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석탑은, 지붕돌이 얇고 넓으며 1층 탑신부에 비해 2층부터는 그 높이가 점차 줄어든다. 낙수면이 얕고 층급 받침이 큰 점을 보아 백제 계통의 석탑양식이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1층 탑신부는 모서리 기둥, 즉 우주석이 새겨져 있지 않아 후대에 수리된 것으로 보인다. 기단석을 보면 갑석과 면석은 있으나 그 아래에 있는 갑석이나 지대석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 후대에 유실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탑은 충남지역에 남아있는 백제양식을 가진 고려 석탑이다.

충남지역에는 이런 백제양식을 가진 고려 석탑이 다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부여 무량사 5층석탑이다. 부여에는 이렇게 백제계 석탑들이 여럿 있는데, 예전에 기자가 다룬 바 있는 진도의 금골산 5층석탑도 역시 백제계 석탑에 해당한다. 그러나 충남지역에 있다고 무조건 백제계 석탑이 있는 것은 아니다. 부여 대조사에 가면 대조사 3층석탑이 있는데, 이는 백제계 석탑과 거리가 먼 전형적인 신라계 석탑이다.

주변에 안양사(安養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나 절터 흔적을 찾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석탑 주위에서는 수많은 기와조각과 토기조각, 그리고 자기조각들이 쉽게 보인다. 석탑 주위를 정비하면서 석탑 둘레에 돌을 두르고 속에 자갈을 넣어 두었는데, 그 위에는 이런 유물들이 널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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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조각들. 홍양리5층석탑 주위엔 이런 기와 파편들이 여럿 보이며 자기편과 토기편도 더러 보인다. 이는 예전에 절터가 있었음을 보여주나, 현재 절터의 정확한 위치는 확인되지 않았다. ⓒ 송영대

위의 사진은 그러한 기와파편들을 모아놓은 모습이다. 왼쪽 위와 오른쪽 아래의 유물은 어골문이라는 문양을 타날 한 것이다. 타날이라는 것은 좀 더 내구성을 강하게 하기 위하여 무엇인가로 두드린 것으로서, 문양이 있는 것으로 타날 할 경우 미관상에도 괜찮고, 그냥 한 것보다 더 낫기 때문이다. 오른쪽 위와 왼쪽 아래는 격자문으로, 격자문은 쉽게 말해서 바둑판을 연상하면 된다. 네모난 게 촘촘히 있는 게 격자문으로서 이보다 좀 더 규모가 크고 마름모꼴로 되어 있는 것을 사격자문이라고 한다.

이곳은 안양골로서 부여 문화원에서 나온 <부여의 구비설화 2>라는 책에 보면 여기에 얽힌 전설이 하나 있다. 본래는 홍산동헌의 자리가 현재 있는 곳이 아닌, 바로 이곳에 세우려고 하였다고 한다. 지리적으로도 홍산골보다 이 안양골이 더 나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다가 동헌을 세우려고 하자(전설에선 도읍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고을터라고 보는 게 합당하다) 갑자기 산이 솟아올랐다고 한다. 그 산이 바로 용심산이라는 산으로서, 이 용심산 아래에는 탑이 하나 있다고 하는데, 그게 바로 이 홍양리 5층석탑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남이 무슨 잘되는 일에 샘을 내는 것을 용심이라고 한다고 한다.

문화재를 찾아 헤매는 것은 힘들지만, 그러면서 얻게 되는 것도 많다. 예전 몇몇 분들은 자신의 차에 태워 문화재가 있는 곳까지 데려다 주기도 하였으며, 땡볕 아래에서 열심히 공부한다고 하며 수박을 먹으라고 준 기억도 있다. 절에서 내려와 버스를 타려고 할 때, 그 절의 노승께서 내려와 반갑게 이야기를 나눈 기억도 있고, 산성에 올라가 둘러볼 때 마침 하안거 전에 산성과 사찰은 찾은 스님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은 기억도 있다.

현대인들은 각박하다고들 하지만 정작 사람과 사람끼리 만나면 그렇기보다도 어느 정도의 정이 있는 것 같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 정으로서 반갑게 맞아주고, 또 친근하게 대해줄 때면 이게 과연 인심이구나란 생각이 든다. 기자가 사전조사를 간단히 하고 답사는 현장에서 이런저런 정보를 알아보면서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인심을 찾고 싶어서이다. 그리고 하루 종일 돌아다니는 답사 끝에는 늘 그 지역의 맛있다는 음식을 먹고 끝내니, 풍류라는 걸 멀리서 찾을 필요가 있겠는가! 요새 사람을 찾아 나서고, 옛 사람의 정취를 찾아 나서는 게 풍류가 아닐는지….

덧붙이는 글 | 2007년 5월 19일 홍산일대를 답사한 것에 대해서 쓴 것입니다. 이상으로 홍산 일대 답사를 마무리짓습니다.

덧붙이는 글 2007년 5월 19일 홍산일대를 답사한 것에 대해서 쓴 것입니다. 이상으로 홍산 일대 답사를 마무리짓습니다.
#부여 #홍산 #홍양리5층석탑 #안양골 #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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