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울음 그치면 다시 구름 높은 가을 올까

[시 더듬더듬 읽기] 최승호의 시 '뭉게구름'과 김신용의 시 '구름장 여관'

등록 2007.08.29 17:49수정 2007.08.30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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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기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구름의 종류에 대해 배웠던 것은 초등학교 4학년 자연 시간에서였다. 선생은 새털구름, 안개구름, 양털구름, 삿갓구름, 뭉게구름 등 구름의 형태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했다. 그런 다음 교실 창을 열고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그때 하늘엔 새털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늘에 떠가는 갖가지 구름에 매 처음 이름을 붙인 사람은 누구일까. 내가 구름에 이름을 붙여준 사람이 누구인가를 안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리처드 험블린이 쓴 <구름을 사랑한 과학자>(사이언스북스, 2004년)라는 책을 읽은 뒤였으니까.

'구름을 사랑한 과학자' 루크 하워드(1772~1864)는 19세기 영국 런던 변두리에서 살았던 평범한 약제사였다. 그는 하늘에 떠다니는 '무정형의 물체'인 구름을 모양에 따라 분류하고 이름을 붙인 최초의 사람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나라마다 나름대로 구름에 이름을 붙여 부르고 있었을 테지만.

그의 구름 분류법은 대단히 정확하고 체계적이었다. 스케치북과 연필만으로 구름을 분류했다고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아마추어 과학자에 지나지 않았던 하워드는 1802년 한 과학극장에서 '구름의 분류에 관하여'라는 강연을 하게 된다. 현대 기상학의 탄생을 알리는 고고의 성이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1820년에 쓴 시 속에서 "그러므로 내 노래에 날개를 달아 고마움을 전하네/ 구름과 구름을 구별해 준 그 사람에게"라고 그의 공로를 치하하기도 한다.

"구름은 권운·적운·층운 등 세 과(科)로 나눌 수 있으며 모호한 형태로 생긴 구름들을 그 과(科) 속에다 명확하게 분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예를 들면 새털구름은 권운에 속하며 소나기 구름은 적란운, 비구름은 난층운에 속한다,

방랑과 구도의 아이콘으로서의 구름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뭉게구름은 적운에 속한다. 수평보다 수직발달이 우세한 구름으로 대기가 불안정할 때 생기는 구름의 형태가 뭉게구름이다. 빈번한 생성과 스러짐이 묘하게 인간의 심리 깊숙이 내재한 방랑벽과 유목민적 기질을 충동질한다.

최승호의 시 '뭉게구름'은 구름에 빗대어 인간의 운명과 고통, 생의 덧없음을 마치 곁에 있는 사람에게 이야기하듯 사근사근 들려주고 있다.

나는 구름 숭배자는 아니다
내 가계엔 구름 숭배자가 없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구름 아래 방황하다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구름들의 변화 속에 뭉개졌으며 어머니는
먹구름들을 이고 힘들게 걷는 동안 늙으셨다

흰 머리칼과 들국화 위에 내리던 서리
지난해보다 더 이마를 찌는 여름이 오고
뭉쳐졌다 흩어지는 업의 덩치와 무게를 알지 못한 채
나는 뭉게구름을 보며 걸어간다

보석으로 결정되지 않는 고통의 어느 변두리에서
올해도 이슬 머금은 꽃들이 피었다 진다
매미 울음이 뚝 그치면
다시 구름 높은 가을이 오리라

-최승호 시 '뭉게구름' 전문


197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최승호 시인은 <대설주의보> <세속도시의 즐거움> <반딧불 보호구역> <눈사람> <여백> <모래인간> 등의 시집을 상자하며 괄목할 만한 시세계를 선보였다. 그가 즐겨 시의 소재로 삼는 것은 욕망에 찌든 세속도시에 대한 비판과 공해와 생태학적 관심, 소멸과 무 등 존재의 근원에 대한 탐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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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표지. ⓒ 열림원

시 '뭉게구름'은 시집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열림원, 2003)에 실려 있는 여러 시편들 가운데 하나다.

최승호 시인은 이 시집 속에서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나는 구름 숭배자는 아니다/ 내 가계엔 구름 숭배자가 없다"라고 커밍아웃한다. 나 역시 구름 숭배자도 아니며 내 가계를 아무리 훑어봐도 구름 숭배자는 찾을 수 없다. 그러나 내겐 구름의 인자가 있다. 가계로부터 유전된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획득된 것이다.

내가 고향에서 보았던 뭉게구름은 솜사탕만큼 규모가 작은 것이었다. 내가 집채보다 큰 뭉게구름을 본 것은 초등학교 졸업 후 군산으로 이사 간 뒤였다. 전주에서 군산을 오가는 군산선 기차를 타고 임피나 오산리 역을 지나갈 때쯤이면 끝없이 펼쳐진 김제·만경 평야가 저절로 눈 속으로 들어온다. 너른 들 너머에 있는 지평선에선 뭉게구름이 마치 커다란 꽃봉오리처럼 피어올랐다.

내게 맨 처음 방랑의 맹아를 이식한 것이 김제·만경 평야의 뭉게구름이었다면 나의 뇌신경에 구름의 인자를 본격적으로 이식한 것은 독일의 작가인 헤르만 헤세였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난 헤르만 헤세에 푹 빠져 있었다. 무엇인가를 끝없이 갈구하면서 일생을 방황의 여정들로 채웠던 <페터 카멘친트>를 읽으면서 난 내 생애 역시 온갖 방황으로 점철되리라는 걸 눈치 채고 말았다.

또한 고독한 방랑자의 모습을 사실적이면서도 아름답게 그려낸 <크눌프>를 읽는 동안에는 다가올 나의 삶이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크눌프의 유목민적 삶을 닮게 되리라는 것을 예감하곤 했다.

아니, 난 그때 이미 고향을 상실한 한 사람의 '크눌프'였는지도 모른다. 2, 3년도 채 지나지 않아 내 고향은 광주호 물 아래로 잠수해버렸던 것이다. 광주호는 내 불길한 예감의 관에 더욱 확실하게 못박아 버린 셈이다.

구름은 예로부터 방황과 방랑과 구도의 의미를 띤 아이콘으로 받아들여졌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들은 구름의 이미지 그 자체였다. 시 '뭉게구름'에서 최승호는 뭉게구름을 우리의 삶을 짓누르는 운명의 알레고리로 차용하고 있다.

시인은 구름으로부터, 고단한 세상살이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인간의 욕망을 끄집어낸다. 우리는 고통스럽고 고단하게 삶을 살아가지만 정작 자신이 보듬은 "업의 덩치와 무게를 알지 못한 채"이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보석으로 결정되지 않는" 시시한 고통 들이다. 그러기에 시인은 "매미 울음이 뚝 그치면/ 다시 구름 높은 가을이 오리라"라고 낙관을 노래할 수 있는 것이다.

절망으로써 절망을 이겨내려는 시적 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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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표지. 시집 표지. ⓒ 실천문학사

최승호의 시 '뭉게구름'이 추상적인 개념을 직접 표현하지 않고 다른 구체적인 대상을 이용하여 표현하는 문학 형식인 알레고리에 의존하고 있다면 김신용 시 '구름장 여관'은 좀 더 직접적이고 구체적이다.

나의 생은 여관의 삶이었다
나는 수많은 여관을 거쳐 이 길 위에 서 있다
그러나 저 구름장 여관으로 가는 길은 모른다
내가 마지막으로 머물러야 할 저 여관,
그곳에서의 하룻밤으로 내가 무화(無化)되어야 할 곳!
나는 떠도는 물방울처럼 살아왔다
내 육체의 표면장력은 그렇게 떠도는 물방울끼리 만나
강을 이루는 것이었다. 강이 되어 흘러가
장엄한 바다의 세계를 이루는 것이었다
그러나 물방울이여, 허공에서 떨어져
사람 사는 곳의 지붕에 내렸다가, 홈통을 통해 물받이에 모여
찌든 삶을 씻는 걸레의 물 한 방울 되지 못했다 하더라도
바다는, 언제나 우리의 꿈이었다
그러나 나는 풀잎의 낯을 씻는 물 한 방울 되지 못했다
풀의 집의 초라한 식탁을 켜는 촛불 하나 되지 못했다
그냥 하수구를 통해 시궁창을 흘러왔다
그래도 바다로 가기 위해 이빨은 자라났고, 야행성의 눈은 반짝였다.
서로 증오하며 피비린내를 풍겨야 했다. 그 어둠 속에서
나는 언제나 혼자였고, 혼자 살아남아야 했다. 그리고 지금 빈 벌판에
혼자 서 있다. 뒤돌아보면, 내가 관통해왔던 도시의 길 위에서
수많은 여관의 불빛들이 반짝인다. 그 불빛은
쥐덫처럼 아름답다. 맛있는 생선 대가리를 매달고 나를 유혹한다
그러나 생쥐와 시궁쥐의 다른 점은 물어뜯는 이빨에 있다
피맛에 잘 깃들여진 그 이빨은 안다. 물방울의 길을.
어찌할 수 없는 표면장력의 힘으로 내가 떠나야 할 길을. 그 구름장 여관에는
이불이 없고 베개도 없고, 차가운 시멘트 침대 하나만 놓여 있을 것이다
그 소실점을 향해, 이제 나는 수증기가 되려 한다
그러나 나는 저 구름장 여관으로 가는 길을 모른다
그 구름장 여관에서 다시 물방울끼리 모여, 사람사는 곳의 마당 위로 내리고 싶은데

-김신용 시 '구름장 여관' 전문


김신용 시인이 시단에 나온 것은 1988년, 시 전문 무크지인 <현대시사상> 1집에 <양동시편-뼉다귀집> 외 6편을 발표하면서였다. 이후 그는 <개 같은 날들의 기록> <몽유 속을 걷다> <버려진 사람들> <환상통> 등의 시집을 상자 했다. 시 '구름장여관'은 시집 <몽유 속을 걷다>(실천문학사, 1998)에 수록된 시다.

그의 시에는 섬뜩할 만큼 처절한 실존적 고통이 날 것으로 드러나 있다. 1945년 부산에서 태어난 김신용 시인은 14세 때부터 부랑생활, 지게꾼 등 생의 밑바닥이란 밑바닥은 빠짐없이 전전하며 살아왔다.

그의 시 속에 등장하는 집 역시 고정된 장소도 안락한 보금자리도 아니다. 그는 공사장 '함바', 무허가 판잣집, 일세방, 공장, 시장 골목의 밥집과 술집, 감옥 등 거의 모든 장소를 집으로 '개조' 시킨다. 시인은 "나의 생은 여관의 삶이었다"라고 자신의 생애를 요약한다.

바다로 흘러가는 물방울이 되는 것이 그의 꿈이었지만 "언제나 풀잎의 낯을 씻는 물 한 방울 되지 못" 했다. 그는 이제 구름장 여관으로 가는 "수증기가 되려" 한다. 그곳은 "내가 마지막으로 머물러야 할 저 여관"이며 "그곳에서의 하룻밤으로 내가 무화(無化)되어야 할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구름장 여관으로 가는 길을 알지 못한다. "그 구름장 여관에서 다시 물방울끼리 모여, 사람 사는 곳의 마당 위로 내리고 싶은데" 가는 길을 모른다는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시 '구름장 여관'은 이전에 그가 썼던 시와 달리 생에 대한 근본적 물음이 내재해 있다. 자신의 체험을 극대화한 이전의 시에다 존재론적인 색채를 입히는 중인 것이다. 시집 <몽유 속을 걷다>의 다른 시편에서 그는 "곡괭이로 시를 쓸 수 있는 세계를 향해 나는 걷고 있는가?(시 '내 뼈의 가지에 한고조')" 라고 묻고 있다.

이런 류의 자기 검열이 그의 시 세계를 어느 시인보다 훨씬 더 정직하고 솔직하게 느끼게 하는 힘일 것이다. 절절한 체험을 바탕에 깔고 그 위에 존재론적인 색채를 가미하면서 그의 시 세계는 점점 더 볼 만한 것으로 되어 가고 있다.

아직도 선풍기나 에어컨을 끄고는 쉽게 잠을 이룰 수 없는 날들이다. 그러나 예민한 몸은 이미 여름이 가을에 서서히 자리를 내주고 있다는 걸 안다. 여름은 뭉게구름의 고향이다. 여름내 창궐하는 뭉게구름을 보며 나 역시 김신용 시인처럼 구름장 여관으로 가는 길을 알고 싶었다. 어쩌면 나는 죽을 때까지 내 존재의 궁극을 알지 못할는지도 모른다.

그럴지라도 난 최승호 시인처럼 "매미 울음이 뚝 그치면/ 다시 구름 높은 가을이 오리라"라고 낙관을 노래하고 싶다. 옷에 밴 습기처럼 불필요한 비관은 영혼의 곰팡이가 되어 생을 좀 먹을 것이기에.
#뭉게구름 #최승호 #김신용 #구름장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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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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