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 학부모 되는 길? '핸드북'에게 물어봐!

[해외리포트] 완벽한 미국 학교생활 지침서... 무슨 내용이?

등록 2007.08.29 13:35수정 2007.08.30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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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개학을 하루 앞둔 27일 저녁, 해리슨버그 고등학교.

개학을 하루 앞둔 27일 저녁, 해리슨버그 고등학교. ⓒ 한나영


지난 6월 6일에 시작되었던 미국 고등학교의 긴 여름방학이 드디어 끝났다. 28일이 개학날이었다. 석 달 가까이 되는 긴 여름방학이었다. 너무 긴 게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대신 겨울방학은 아주 짧다. 일주일 혹은 열흘이다.

이번 주 개학을 앞두고 근처 쇼핑몰에서는 개학 준비를 위한 '백투스쿨 세일'이 한창이었다. 하지만 사실상 개학을 알리는 준비 작업은 이미 그 전에 시작되었다. 바로 '피 데이(Fee Day)'를 알리는 학교 우편물이 개학의 전령사였다.

피 데이는 무슨 날인가. 바로 돈을 내는 날이다. 미국 공립학교의 경우 공식적으로 내는 등록금은 없다. 하지만 라커 사용료(5달러), 교과서 대여비(6달러), 학급비(5달러) 등 16달러는 등록을 원하는 학생이라면 무조건 내야 한다. 이 밖에 급식비, 앨범비, 실습비, 워크북값 등은 개인의 선택에 따라 또는 과목에 따라 낼 수도, 안 낼 수도 있다.

그런데 피 데이는 단순히 돈만 내는 날인가? NO! 1년 동안 수강하게 될 개인 시간표도 받고 학교에 제출해야 할 각종 서류도 내면서 등록하는 날이다. 말하자면 새 학년 등록일이 바로 피 데이다.

a 돈도 내고 새 학년 등록도 하는 피 데이(Fee Day).

돈도 내고 새 학년 등록도 하는 피 데이(Fee Day). ⓒ 한나영


피 데이엔 반드시 학부모, 또는 가디언이 참석하여 등록을 하게 되는데 직장에 다니는 학부모들을 위해 등록일 3일 중에 하루는 오후 늦게까지(저녁 7시) 문을 연다. 영어가 서툰 학부모를 위해 통역 자원봉사자도 대기하고 있다.

이렇게 등록을 마친 학부모에게는 학교의 학사일정과 교칙, 필요한 정보가 들어 있는 두툼한 핸드북이 주어진다. <2007-2008 학생/학부모 핸드북>이라는 이 책자는 학생과 학부모가 알아야 할 '모든'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A4 크기로 160페이지나 되는 두툼한 책자인 핸드북. 도대체 이 핸드북에는 어떤 내용이 수록되어 있을까.

핸드북에 무슨 내용이?


a 160페이지나 되는 두툼한 핸드북.

160페이지나 되는 두툼한 핸드북. ⓒ 한나영

핸드북을 펼치면 목차보다 먼저 나와 있는 것이 있다. 바로 '한눈에 보는, 무엇이 새로 바뀌었나?'다. 여기에는 지난해와 달라진 새로운 내용들이 소개되고 있다. 예를 들면, 선택할 수 있는 학과목이 더 다양해졌다는 내용이나 밴드, 미술, 합창 등의 과목에도 아너스클래스(레귤러 클래스보다 한 단계 높은 클래스)가 도입되었다는 내용이 자세히 나와 있다.

또한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늦지 않도록 새로 '경고벨'을 추가했고 온라인 과정을 통해서도 학점을 딸 수 있는 '가상 클래스'와 문제 학생을 위한 '토요학교'가 신설되었다는 내용도 새로운 소식이다.


다음에 이어지는 페이지는 바로 '목차'다. 목차에는 학교 연혁과 철학, 신념 등을 설명하는 일반 정보부터 졸업 요건과 일반 지침, 학칙, 출석, 클럽 활동과 학내 서비스 등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친절한 핸드북 한 권만 숙독하면 학교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이 핸드북에서 기자의 눈길을 끄는 것은 1년 계획이 다 나와 있는 학교 캘린더다. 여기에는 새 학년이 시작되는 이달 8월부터 이번 학년이 끝나는 내년 6월까지의 일정이 상세히 나와 있다. 언제 단축 수업을 하고 일찍 집에 오는지, 공휴일과는 별도로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인 티쳐 워크데이(Teacher Workday)가 언제인지 등을 다 알 수 있다.

학교 1년 계획이 캘린더 안에 자세히

a 학교 1년 계획이 캘린더 안에 자세히.

학교 1년 계획이 캘린더 안에 자세히. ⓒ 한나영


시험과 성적은 이곳에서도 학생과 학부모의 주된 관심사다. 핸드북의 캘린더를 보면 학교에서 치러지는 각종 시험(중간고사, 기말고사, 주에서 시행하는 학력 평가 시험, SAT, AP 시험 등)의 일정이 다 나와 있어 학생들은 미리 준비할 수 있다. 물론 학부모는 자녀들의 시험 결과인 성적표가 몇 월 며칠에 나오는지도 정확히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학내외 행사들도 미리 다 캘린더에 표시되어 있다. 헌혈차가 오는 날은 10월 26일과 내년 5월 30일이다. 그러므로 헌혈을 하고 싶은 학생은 미리 몸을 '만들고' 피를 뽑을 준비를 해야 한다.

이와 같이 학교 행사들이 대단히 주도면밀하게 계획되어 있는데 캘린더에 나와 있는 이런 행사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시간 관리를 하는지 학내 중요 행사 가운데 하나인 뮤지컬의 일정을 한 번 살펴보자.

▶ 뮤지컬 오디션 : 11월 26, 27, 28일 (오후 3시~10시)
▶ 오디션 결과 발표 : 11월 29일
▶ 리허설 : 12월 7일~12월 20일 (오후 3시~6시)
* 겨울방학 : 12월 24일~1월 2일
▶ 리허설 : 1월 3일~2월 1일 (오후 3시~6시) / 2월 4일~2월 13일 (오후 3시~오후 11시)
▶ 무대 세트 설치: 1월-12일, 13일, 20일, 26일, 27일. 2월-2일, 3일, 9일, 10일
▶ 뮤지컬 공연: 2월 14일~2월 17일


학교 캘린더에 표시된 행사 일정은 날짜는 물론 시간까지 정확하게 나와 있어 모든 일정이 예측가능하다.


학부모를 귀찮게(?) 하는 미국 학교

a 학부모를 자주 부르는 미국 학교. 밴드 수업시간에 초청된 어느 유명 강사의 강연을 학부모도 와서 들으라고 호출(?)했다.

학부모를 자주 부르는 미국 학교. 밴드 수업시간에 초청된 어느 유명 강사의 강연을 학부모도 와서 들으라고 호출(?)했다. ⓒ 핸드북


미국의 학교는 학부모를 귀찮게(?) 한다. 학부모를 오라 가라 하는 날이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날이 바로 피 데이와 백투스쿨나이트(Back to School Night), 페어런트 컨퍼런스데이(Parent Conference Day)다. 이런 날엔 공식적으로 학부모의 참석을 요구한다. 이 밖에도 소소하게 학교 참석을 요구하는 날이 많다.

물론 이런 학부모 참석 모임은 모두 야간에 열린다. 직장에 다니는 학부모에 대한 배려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새 학년이 시작되면 학부모가 참석하는 학부모총회가 열린다. 연중행사로는 거의 유일한 공식적인 학부모 모임이다. 하지만 대부분 오전에 열리기 때문에 직장에 다니는 학부모의 참석을 원천 봉쇄하고 있다. 이 점이 미국과 많이 다르다.

그런데 미국의 학교는 왜 이렇게 학부모를 불러대는(?) 것일까. 치맛바람이 우려되지는 않을까. 시교육청이 제공하는 핸드북의 한 페이지를 보면 학부모가 왜 교육에 참여해야 하는 지를 명백히 보여주는 문구가 나와 있다.

학생, 학부모, 학교 : (교육의) 책임 공동체.

학교와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도 교육의 주체임을 분명히 상기시키고 있다. 그런데 교육의 주체인 학부모가 학교 모임에 참석해야 할 날이 이미 1년 전에 나와 있다. 학부모는 학교 캘린더를 보면서 모임에 참석할 날의 계획을 미리 세울 수 있다. 캘린더에 나온 날짜가 바뀌는 법은 거의 없다.

미국 학교 시스템은 이처럼 대단히 주도면밀하게 이루어지는 것 같다. 주먹구구식으로 '그때 가 봐야 아는', '그 때 그 때 달라지는' 학교 행정이 결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우리나라처럼 갑작스러운 관 주도 행사에 학생들이 동원되는 일도 없고 예정에 없던 교사들의 체육대회로 학생들이 느닷없이(?) 집에 일찍 오는 경우도 거의 없다. 모두 다 계획대로, 예정대로 핸드북에 나오는 대로 그대로 지켜지고 있다.

학생들의 행동 표준 지침도 핸드북에 나와 있어

핸드북에는 학부모와 학생에게 주는 학교 측의 정보뿐만 아니라 공립학교 시교육청이 제공하는 정보도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일반적인 공립학교 학생들의 행동 표준 지침도 나와 있다.

여기에는 출석 및 무단결석, 지각에 관한 내용과 학내 무기 및 알콜, 마리화나, 마약 등 소지 금지, 학교 건물 내 금연, 교사 및 직원 존중 등의 내용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이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학생들의 고결한 덕목을 강조하는 항목이다.

"학생들은 정직하게 자신의 학업을 수행하고 다른 사람의 소유물을 존중해야 한다. 학생들이 금해야 할 행동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중략) '부정행위(cheating)'란 학교에서 규정하고 있지 않은 도움을 주거나 받는 행위, 또는 학문적인 성과를 부당하게 이용하거나 주는 행위다. '표절(plagiarism)'이란 다른 사람의 글, 구성, 아이디어나 생각 따위를 그대로 베껴서 자신의 독창적인 성취인 양 표현하는 행위다."

학생들의 학교 내 생활과 행동 규범, 학사 일정 등이 자세히 공개된 핸드북.

a A에서 Z까지 색인이 있는 친절한 핸드북.

A에서 Z까지 색인이 있는 친절한 핸드북. ⓒ 한나영

이 책은 색인까지 갖춘 한 권의 완벽한 학교생활 지침서다. 여기에는 학생이나 학부모가 궁금해 할 만한 내용을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라는 식의 Q&A가 있어 핸드북만 잘 읽으면 학교생활에 대한 모든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다.

만약 그래도 궁금한 게 있으면? 학교로 직접 찾아가면 된다. 핸드북에는 학교 전체를 보여주는 평면도와 교장, 교감 선생님의 사무실, 학과 선생님이 계시는 학과 사무실의 위치와 전화번호까지 다 나와 있다. 그런 만큼 행정실에서 '출입증'만 얻으면 넓은 학교 안을 헤매지 않고 곧장 선생님을 만나러 갈 수 있다.

모든 이에게 주어지는 160페이지짜리 친절한 핸드북. 이 한 권만 읽으면 학교가 다 보인다. 무슨 일이 있는지, 무엇을 준비하고 계획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품격을 갖춘 모범생이 될 수 있는지, 제대로 졸업하려면 무슨 과목을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핸드북 #피데이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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