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화가가 그린 그의 초상화.임현철
그의 명함을 살핀다. 전라남도광양교육청 교육장 김채중. 그리고 주소와 사무실, 자택, 핸드폰 번호가 적혀 있다. 명함에 나타난 '전라남도광양교육청 교육장 김채중'. 이것이 그의 삶을 대변하진 못할 것이다.
문득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교육에 대한 열정과 우여곡절, 마음 졸이던 순간, 좌절, 환희의 과정이 빠져 있는 껍데기가 아닐까?'란 생각이 스친다.
명함은 모르는 상대에게 자신의 존재가치를 드러낼 유일한 것이다. 그러나 명함은 때때로 '우월의 상징'으로 비치기도 한다. 이럴 때 명함은 자신의 삶의 질곡을 담지 못하는 '허세의 명함'일 뿐이다.
김채중, 그도 이제 불과 몇 시간 후면 허세의 명함을 벗어던지고 '자연의 명함'을 가져야 할 시간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초상화 한 점이 한쪽에 놓여 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눈다.
"저 그림, 좋은데요?"
"어느 화가가 사진 한 장 달라길래 줬더니 이틀 전에 저렇게 그려 왔다. 미안한데 화가 이름도 모르겠다. 고마울 따름이다."
"사모님의 신랑 정년퇴직에 대한 평은?"
"고생했다, 푹~ 쉬어라. 당신 때문에 대접받고 잘 살았다. 자기는 행복했다 한다."
"애 개개~, 그거 말고요?"
"허~허. (할 수 없지 하는 표정으로) 벌써 구박하는 게 느껴져 '푸대접하지 마라 그랬는데 벌써 푸대접이냐!' 했더니, 어느 강의에서 '퇴직하는 사람들은 서운할 일이 많으니, 남편이 무슨 말하면 옳소, 맞소, 졌소 이 3소만 해라' 그랬다나. 아내도 거기서 배운 3소만 한다는데 모르지…."
젊었을 때 아내 고생시킨 이들은 나이 들어 '대로 주고 말로 받는다' 던데, 행여 구박일까, 걱정이다. 사모님의 '행복했다'는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밖에.
평교사를 존경하는 풍토 되어야
계속해서 전화벨이 울어댄다. 웃음 속에 "직원들하고만 하기로 했으니 오지 마라, 정년퇴직 자리에 와 봐야 만날 사람도 없고 반길 사람도 없다, 고맙다" 등의 이야기가 흘러든다.
"42년의 세월에 아쉬움이 많을 텐데…."
"(잠시 눈시울이 촉촉해지며) 후회 없다. 일을 더 할 수 있는데 나이 들어 못하는 것이 제일 아쉽다. 호적에 늦게 올라 친구들보다 2년 더 근무해 여한은 없다. 돌이켜 보면 이제야 교육에 대해 알 것 같고, 이제는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후배들이 더 잘할 것이다."
"교육에 대한 생각은?"
"교육은 현장이 중요하다. 나는 그러지 못했으나 페스탈로치처럼 죽는 날까지 아이들 옆에서 가르치는 게 바람직하다. 교육 현장에서 직접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존경 받아야 한다. 그러나 사회 풍토는 평교사를 존경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학부모들은 50살 넘은 선생님이 담임을 맡으면 싫어한다. 이게 문제다. 교장이나 교감, 장학사, 교육장보다 평교사를 더 존경하는 풍토가 되어야 한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평생 교단에서 묵묵히 아이들과 마주하며 애쓰는 선생님들이 존경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멀었다. 흔히 '법조계와 교육계가 변하면 다 바뀐다'는 소릴 자주 접하니까. 하지만 후손들이 살아야 할 세상이란 이유만으로도 희망을 버릴 수가 없다.
"현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라"